[단독]2012년부턴 법조경력 5년 넘어야 판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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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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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법원 사법개안… 경력법관제 대폭 확대

재판연구관 3년 지내도 임용
영미식 예비판사제도 부활
형사단독 문제점 오랜 논란
사법역사 60여년만에 대수술

22일 법원과 검찰에선 이렇다 할 움직임이 없었다. 보수단체 회원 1000여 명이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법원 청사 앞에서 항의집회를 연 것을 빼고는 법조계 바깥의 논란도 일단 잦아들었다. 그러나 대법원은 내부적으로 바삐 움직였다.

우선 25일엔 형사단독 판사를 경력 10년 이상의 판사가 맡도록 하는 방안을 내놓기로 했다. 다음 주 중반쯤엔 이용훈 대법원장이 직접 국민에게 최근 시국사건 무죄판결 사태에 대한 견해를 밝히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 2월 초에는 경력법관제도를 대폭 확대하는 방안을 확정할 예정이다.

대법원이 이 같은 개혁안을 마련한 것은 최근의 무죄판결 사태 때문은 아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연구 검토해온 것들이다. 재판 경험이 부족한 단독 판사가 사회적으로 파장이 큰 형사사건을 혼자 심판하는 문제는 오랜 숙제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해 신영철 대법관이 형사 단독사건 재판에 개입했다는 논란이 불거지면서 대법원은 단독 판사 제도와 법관선발 제도 등의 변화를 골자로 한 사법부 개혁안을 준비해 왔다.

○ 10년 이상 판사에게 형사단독 맡긴다

최근 논란을 빚은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의 국회 폭력사건,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시국선언 사건, MBC ‘PD수첩’의 광우병 위험성 과장보도 사건 등에 대한 무죄 판결은 모두 형사단독 판사들이 내렸다.

현재의 법원 인사제도에 따르면 판사 경력 5년 이상이면 형사단독 재판부를 맡을 수 있다. 이르면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판사가 인신을 구속하고 형벌을 내리는 중차대한 재판을 홀로 담당하게 된다. 단독판사들의 비중이 커진 것은 1990년대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형사재판 건수가 폭증한 데 비해 판사 수가 부족하게 되자 궁여지책으로 합의부(부장판사 1명과 평판사 2명으로 구성된 재판부)가 맡는 사건의 상당 부분을 단독판사가 맡도록 사건 배당 기준을 고친 데 따른 것이다.

이후 판결 시비가 불거질 때마다 형사단독 판사 제도에 대한 개선안이 모색됐고, 지난해 신 대법관의 재판 개입 논란으로 비로소 이 제도는 수술대에 올랐다. 일각에서는 판사 경력 15년이 넘는 부장판사들에게 단독재판을 맡겨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당장 형사단독 판사의 연차를 높이면 합의부 재판장을 맡는 판사가 부족해져 절충안으로 10년차 이상 경력자가 형사단독 재판을 맡는 것으로 정리된 것으로 알려졌다. 법원행정처 고위 관계자는 “제도가 바뀌어도 당장 모든 형사단독 재판부를 한꺼번에 10년차 이상 판사로 채우기는 어렵다”며 “과도기에는 검사나 변호사를 하다 판사로 임용된 법조인 경력 10년 이상의 판사들을 형사단독 재판부에 배치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 ‘사법 60년’ 만에 경력법관 대폭 확대

판사 선발 방식의 변화도 사법부 개혁안의 핵심 중 하나다. 그동안 상당수 일반 국민은 ‘소년등과’한 20, 30대 젊은 판사에게 재판을 맡기는 것에 불안감을 나타내왔다. 사법 불신의 상당 부분도 여기에서 비롯됐다. 그래서 2005년부터 대법원은 검사나 변호사 경력을 지닌 이른바 ‘경력 법관’ 선발을 조금씩 늘려왔지만 매년 20여 명에 그쳤다. 대법원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제도 출범을 계기로 법관 선발 방식을 전면적으로 바꾸기로 하고 구체적인 방안을 검토해왔다.

대법원은 당초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조인력양성제도 소위원회에 “로스쿨 졸업 후 최소 5년 이상 검사·변호사 경력을 가진 법조인에 한해 판사를 선발하겠다”고 보고했다. 이와 더불어 일부 성적 우수자를 졸업 직후 재판연구관으로 뽑아 5년 이상 근무시킨 뒤 일부를 판사로 선발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1998∼2007년 시행했던 예비판사 제도를 부활하는 셈이다. 그러나 로스쿨 측이 재판연구관 기간이 너무 길다고 반발하자, 대법원은 최근 재판연구관 기간을 3년으로 단축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지금까지는 사법시험 합격 후 최소 2년이면 판사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새 판사임용제도가 정착되면 로스쿨 입학부터 판사가 되기까지 6∼8년이 걸리며, 20대의 나이에 판사로 임용되는 사례는 거의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로스쿨 졸업생이 처음 배출되는 2012년은 한시적으로 현행 사법시험 합격자와 로스쿨 졸업생이 함께 법조인이 되는 해다. 대법원은 2012년 사법시험 합격자는 재판연구관(예비판사) 기간을 거쳐 정식 판사로 임용할 방침이다. 이 같은 판사 임용방식은 영미법 계통의 국가에서 흔한 이른바 경력법관제가 전면 실시되는 것으로, 국내에 근대 사법제도가 도입된 지 60여 년 만에 판사 임용제도가 180도 달라지는 셈이다.

대법원은 이러한 사법부 개혁안을 종합해 2월 초 열리는 대법원장 직속기관인 사법정책자문위원회에 안건으로 올려 확정할 방침이다. 자문위는 개혁안의 타당성과 실현 가능성 등을 검토한 뒤 그 결과를 대법원장에게 보고한다. 이는 국회에 법안 형태로 제출돼 입법 절차를 밟게 되며, 국회 심의과정에서 수정될 수도 있다. 정치권과 법조계 일각에서는 대법원의 복안과 달리 부장판사급에게 형사단독 재판을 맡기고, 검사나 변호사 경력이 10년이 넘는 법조인을 판사로 임용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종식 기자 bel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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