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피망 썰고 크림수프 만들고… 오늘은 나도 꼬마요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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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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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포구, 어린이 대상 ‘해피쿠킹스쿨’
지역 기업체 후원 받아
직접 요리하며 점심 해결
“배고팠지만 더 맛있어요”

19일 서울 마포구 용강동 중부여성발전센터에서 열린 ‘해피쿠킹스쿨’에 참여한 지역아동센터 어린이들이 자원봉사자와 함께 요리를 하고 있다. 사진 제공 마포구
19일 서울 마포구 용강동 중부여성발전센터에서 열린 ‘해피쿠킹스쿨’에 참여한 지역아동센터 어린이들이 자원봉사자와 함께 요리를 하고 있다. 사진 제공 마포구
어린이용 안전칼을 쥐고 피망을 자르는 고사리손은 조금 떨렸지만 눈망울은 여느 요리사보다 빛났다. 자기 주먹보다 더 큰 피망이었지만 노랑, 빨강 피망은 조금씩 조각이 났다. 아이들은 ‘해냈다’는 표정이었다. 자신감을 갖고 연이어 양파 썰기에 도전했지만 금세 ‘맵다’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19일 서울 마포구 용강동 중부여성발전센터 조리실습실은 ‘해피쿠킹스쿨’에 참여한 어린이 조리사 30여 명의 재잘거리는 목소리와 재료를 볶는 프라이팬에서 나는 고소한 냄새로 가득 찼다.

○ 오늘은 내가 요리사

행사에 참여한 아이들은 마포구 내 지역아동센터(구 방과 후 공부방)인 ‘옥토’에 다니는 초등학생이나 그 동생들이다. 대부분이 기초생활수급자 가정이나 한부모 가정 어린이들로 방학 중 점심을 챙겨먹기 쉽지 않은 형편이다. 이 점을 감안해 마포구와 중부여성발전센터, 마포구 내 본사를 둔 효성그룹이 공동으로 특별 요리를 직접 만들어 먹어볼 기회를 마련한 것이다.

이날 만든 요리는 총 세 가지. ‘파히타(얇은 전병에 볶은 고기와 야채 등을 싸먹는 멕시코 요리)’와 크림수프, 장조림이다. 파히타와 수프는 점심 별미로, 장조림은 넉넉히 들려 보내 집에서 밑반찬으로 먹을 수 있도록 신경 썼다.

키가 작아 조리대가 제대로 보이지 않던 막내 오형은 양(5)은 아예 의자 위로 올라왔다. 서툰 솜씨로 채소와 버섯을 손질하던 오 양은 햄을 썰 차례가 되자 칼은 아예 내려놓고 언니들이 자르는 햄을 집어 먹기 바쁘다. 다른 조리대에선 요리 재료를 집어 먹으면 친구들에게 핀잔을 듣기 일쑤였지만 귀여움을 독차지한 형은이는 예외.

반면 맞은편 조리대에 서 있던 ‘왕언니’ 배지현 양(12·신석초 5년)은 “피망은 채썰고 토마토는 다지라”는 요리강사의 각종 주문을 훌륭히 소화해 냈다. 손질한 재료를 쟁반에 보기 좋게 담고 간간이 동생들이 다치지 않도록 돌보는 여유까지 보였다.

어른들이 40분 정도면 만들 수 있는 세 가지 요리를 아이들이 만드는 데 걸린 시간은 2시간 남짓. 직접 만든 요리가 담긴 접시를 손에 들고 와 아동센터 교사와 기자 손에 꼭 쥐여준 조현진 양(10·신사초 3년)은 “2시간 동안 고생해서 만드느라 배가 고팠는데 내가 만들어서 그런지 더 맛있다”며 웃었다.

○ 선생님이 사비 털어 야외학습

옥토를 비롯한 각 지역아동센터에서는 방학 중 점심 해결이 어려운 아이들에게 점심식사와 각종 학습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활동량이 많은 어린이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박물관 관람 같은 야외 학습도 1주일에 한 번 정도는 필요하다는 것이 아동센터 관계자들의 말. 그러나 예산이나 인력 등이 부족해 힘에 부치는 상황이다. 옥토는 시설장과 센터장이 교사를 겸하며 총 29명의 아이들을 돌본다. 두 사람의 월급을 합치면 70만 원이다.

정부가 국가에 등록된 아동센터에 월 300만 원의 보조금을 주고 있지만 턱없이 모자란다. 그나마 설립한 지 1년이 안 되면 정부 지원금도 없다. 홍정민 옥토 시설장은 “전기요금이나 난방비 등 시설 운영비만 100만 원 이상 나간다”며 “구청과 기업 후원 등으로 운영을 계속하고는 있지만 기업 후원 프로그램에 ‘당첨’되지 않으면 야외학습을 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야외학습 비용을 사비로 마련한 적도 적지 않다. 이번 행사도 마포구 내 기업인 효성에서 720만 원을 기탁해 성사될 수 있었다.

서울시는 “중앙정부와 공동으로 운영비를 지원하고 독서교사, 영어교사 등 필요한 인력을 파견하는 사업도 계속하고 있다”며 “다만 현장 인력이나 돈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만큼 지역아동센터의 부담을 줄일 방안을 계속 찾아나가겠다”고 밝혔다.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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