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문화재 ‘수’놓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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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2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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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 의지해 전통자수 30년 외길 이정희씨

자수는 세상에 나가는 날개
바느질 한 땀서 희망 찾아
日 개인전 통해 세계에 알릴것

전통자수공예가 이정희 씨가 2일 전북 정읍시에 있는 작업실 바닥에 앉아 자수틀을 놓고 각양각색의 실로 수를 놓고 있다. 작업실에는 십장생, 용포, 모란꽃 자수 등 30여 개의 작품이 빼곡히 결려 있었다. 정읍=김윤종 기자
전통자수공예가 이정희 씨가 2일 전북 정읍시에 있는 작업실 바닥에 앉아 자수틀을 놓고 각양각색의 실로 수를 놓고 있다. 작업실에는 십장생, 용포, 모란꽃 자수 등 30여 개의 작품이 빼곡히 결려 있었다. 정읍=김윤종 기자
선녀가 되고 싶었던 소녀는 하늘을 날기는커녕 땅 위에서조차 제대로 걸을 수 없었다. 하지만 절망하지 않았다. 움직일 수 있는 두 손으로 바늘과 실을 잡고 자신을 옭아맨 장애를 30년간 극복해왔다.

2일 전북 정읍시 수성동의 한 상가건물 3층에 위치한 66m²(20평)의 작은 작업실에서 전통자수공예가 이정희 씨(47·여)를 만났다. 이 씨는 휠체어에 의존해야 겨우 움직일 수 있는 1급 지체장애인. 하지만 이 씨는 자신이 만든 자수공예작품을 들고 세계로 나아가는 중이다. 이 씨는 15일부터 24일까지 일본 고베(神戶)대에서 개인전을 연다.

○ 전통자수로 꿈을 이루다


이 씨는 올해로 꼭 30년 동안 자수공예의 외길을 걸어왔다. 이 씨는 3세 때 갑자기 소아마비를 앓아 다리를 쓰지 못하게 된 후 6세 때부터 정읍에서 외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이 씨는 휠체어를 끌어줄 사람이 없어 학교에도 전혀 다니지 못했다. 17세 때 외할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이 씨는 친척 언니 손에 이끌려 전남 장성군 삼계면 사창리 한 시골마을을 방문해 전통자수를 접하게 됐다. 이 씨는 “친척 언니가 자수공예를 하는 선배를 소개시켜줬다”며 “한복을 입고 하얀 학을 수놓고 있는 모습이 마치 선녀처럼 보였다”고 말했다.

이 씨 부모가 “몸이 아픈 딸을 보낼 수 없다”고 반대하자 이 씨는 몰래 도망쳤다. 이후 자수공예를 도제식으로 배워나갔다. 다리를 쓸 수 없으므로 기어서 움직였다. 꽃잎 하나를 새기는 데도 바늘에 수십 번 찔렸다. 이 씨는 외로움과 고통을 자수공부로 풀었다. 이 씨는 수년간 여러 자수공예 작업실을 거치며 하루 10시간 이상 자수를 연습했다. 26세에는 2년 동안 중요무형문화재 한상수 씨(74)에게서 자수를 배우기도 했다.

○ “바느질 한 땀에서 찾은 희망”

이 씨는 자신만의 자수공예를 완성하기 위해 휠체어에 몸을 싣고 국립중앙박물관, 대학박물관, 풍물시장 등 전국을 누비며 전통문양 자료를 찾았다. 고서를 찾아 한국미에 대해서도 연구했고 높이 185cm, 너비 5m의 병풍에 3년에 걸쳐 자수를 했다.

이 씨의 노력은 성과를 거두기 시작했다. 이 씨는 1996년 전북 전통공예대전에 출품해 특선을 수상한 후 대한민국장애인미술대전 대상 등 총 40회 이상의 공예작품전에 입상했다. 작품이 2004년 청와대에 기증되기도 했다. 올해 4월에는 문화체육관광부에 선발돼 일본에서 전통자수공예품 전시를 하게 됐다. 이 씨는 전통자수 중에서도 궁수(宮繡)를 현대적 감각에 맞게 재현했다는 평을 듣고 있다. 이 씨는 충남 천안시 나사렛대 등에서 장애인에게 자수공예를 가르치는 일도 병행하고 있다.

이 씨에게는 두 가지 큰 꿈이 있다. 자신의 작품을 통해 한국 전통자수의 아름다움을 세계에 뽐내는 것과 전통자수 공예분야 인간문화재(중요무형문화재)가 되는 것.

“하나의 점에 불과한 한 번의 바느질은 보잘것없어 보이지만 그것이 모여 만들어진 그림은 아름다운 작품이 되듯 장애인들도 좌절하지 말고 하루에 한 점씩 해나가면 희망을 찾을 수 있어요.”

정읍=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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