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쉰들러’ 동상 세운다

  • Array
  • 입력 2009년 11월 30일 03시 00분


코멘트

6·25때 고아 1059명 피란시킨 故블레이즈델 군목
시민들 성금 모아 내달 17일 광주 충현원에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12월 15일 서울은 텅 비어 있었다. 중공군과 북한군의 서울 진격이 임박해지자 시민들과 군인 대부분이 후방으로 철수했기 때문. 당시 미국 제5공군 사령부 군목으로 서울 고아수용센터에서 일하던 러셀 블레이즈델 대령(사진)과 어린 고아들은 서울에 남게 됐다. 블레이즈델 대령은 고아 일부를 미군 트럭에 실어 대구로 피란 보냈다. 그는 나머지 고아들을 한국 선적 선박에 태워 제주도로 보내기로 결정하고 차량 한 대로 4일에 걸쳐 고아 1059명을 인천항으로 옮겼다.

하지만 블레이즈델 대령은 인천항에 있던 배가 100여 명밖에 태울 수 없고 그마저도 다른 사람들이 이미 자리를 차지했다는 것을 알고 절망한다. 고아들의 피란을 위해 동분서주하던 그는 서울에서 공군장교인 T C 로저스 대령을 우연히 만나게 된다. 블레이즈델 대령의 간곡한 부탁에 로저스 대령은 하루 안에 김포공항으로 고아들을 모두 데려오면 제주도로 이송해주겠다고 약속했다.

6·25전쟁 당시 서울에 남아 있던 고아 1059명을 제주도로 피란시켜 한국판 ‘쉰들러리스트’의 주인공으로 불리는 러셀 블레이즈델 대령을 기리는 동상. 제막식은 다음 달 17일 광주 충현원서 열린다. 사진 제공 충현원
6·25전쟁 당시 서울에 남아 있던 고아 1059명을 제주도로 피란시켜 한국판 ‘쉰들러리스트’의 주인공으로 불리는 러셀 블레이즈델 대령을 기리는 동상. 제막식은 다음 달 17일 광주 충현원서 열린다. 사진 제공 충현원
인천항으로 되돌아온 그는 고아들을 태우고 갈 방법이 없어 낙담하다 미 해병대로부터 트럭 35대를 지원받아 약속시간에 맞춰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곧바로 고아 1059명은 화물수송기 16대에 나눠 타고 12월 20일 제주도로 피란했다.

6·25전쟁 당시 고아들을 피란시킨 ‘한국판 쉰들러리스트’의 주인공 블레이즈델 대령이 펼친 ‘고아 수송 작전’ 이야기다. 그는 전쟁이 끝난 뒤 미국으로 돌아가 목사로 활동했다. 그러던 중 2005년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미군과 한국 아이들의 사랑전시회’에서 유혜량 충현원 원장(59·여·목사)을 만나게 된다. 그 자리에서 그는 6·25전쟁 당시 광주 남구 양림동 충현원도 ‘고아들을 돌봤다’는 것을 알게 된다. 2007년 5월 97세로 사망한 그는 생전 회고록을 통해 “전쟁 상황에서 함께 생명 존중을 실천한 충현원을 돕고 싶다”고 했다. 그의 가족들은 지난해 5월 충현원에서 1주기 추모식과 회고록 출판 기념회를 열었다.

블레이즈델 대령의 도움으로 생명을 건진 고아들은 이 자리에서 그의 생명존중, 약자 배려 정신을 기리는 동상 건립을 결의했다. 이후 각계각층이 1년여 동안 동상 건립 모금운동에 참여해 현재 8000만 원을 모았다. 충현원은 다음 달 17일 블레이즈델 대령 동상 제막식을 갖는다. 동상은 190cm 실물 크기의 구리 재질로 블레이즈델 대령이 고아 2명을 데리고 있는 모습이다. 제막식에는 블레이즈델 대령의 아들, 손자 등 6명이 참석한다.

유 원장은 “블레이즈델 대령 동상 건립은 생명존중이라는 의미를 다시 깨닫게 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광주=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