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스터디/영화, 생각의 보물창고]해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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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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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 아닌가요? ‘지진해일이 곧 도시를 덮칠 것이라는 과학적 증거를 한 천재과학자가 밝혀낸다. 이 과학자는 천재지변의 위험성을 경고하지만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마침내 지진해일이 몰아닥친다.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는 대재앙이 일어난다….’

그렇습니다. 영화 ‘해운대’는 이렇듯 미국 할리우드 재난영화에서 우리가 수없이 보아온 설정을 담고 있습니다. ‘지진해일’이란 단어만 ‘빙하기’로 싹 바꾸면, ‘해운대’의 내용은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의 2004년 작 ‘투모로우(The Day After Tomorrow)’와도 흡사하지요. 게다가 ‘해운대’에서 거대한 지진해일이 부산 해운대를 덮쳐오는 순간은 조지 클루니 주연의 2000년 작 ‘퍼펙트 스톰(The Perfect Storm)’을 떠올리게 하는 낯익은 장면이지요. 이렇게 작품 속에 들어 있는 ‘판에 박힌 듯한 익숙한 표현’들을 프랑스말로 ‘클리셰(Clich´e)’라고 한답니다.

하지만 참 이상해요. ‘해운대’는 이렇듯 뻔한 스토리를 담고 있으면서도, 보고 나면 왠지 신선한 충격을 받게 되니까요. 익숙한 듯한데 뭔가 새로운 것 같기도 한, 그런 느낌 말이에요.

한번 생각해 보세요. 이 영화가 할리우드 재난블록버스터와 결정적으로 차별화되는 지점은 어디일까요? 재난을 당한 사람들이 맞게 되는 죽음, 바로 그것을 바라보는 이 영화의 근원적인 ‘태도(attitude)’에 있답니다.》

[1] 스토리라인

2004년, 원양어선을 타고 인도양으로 고기잡이를 나갔던 만식(설경구). 예기치 못한 지진해일에 배가 휩쓸리면서 동승했던 연희 아버지가 목숨을 잃고 맙니다. 2009년, 자기 탓에 연희 아버지가 죽고 말았다는 죄책감에 시달려온 만식은 연희(하지원)를 흠모하지만 그 마음을 숨길 수밖에 없지요. 한편 만식의 동생이자 해양구조대원인 형식(이민기)은 서울에서 부산 해운대로 놀러온 삼수생 희미(강예원)를 구조하면서 그녀와 사귀게 됩니다.

이때 저명한 지질학자인 김휘 박사(박중훈)가 해운대 해저지각에서 심상치 않은 기미를 포착합니다. 김 박사는 “조만간 일본 쓰시마 섬이 내려앉으면서 초대형 지진해일이 해운대를 휩쓸 것”이라고 경고하지만, 사람들은 코웃음만 칠 뿐입니다.

올 것이 오고야 맙니다. 김 박사의 예고대로 어마어마한 크기의 지진해일이 시속 800km의 속도로 해운대를 덮칩니다. 김 박사는 이혼한 전처 유진(엄정화)과 딸을 구하기 위해 쑥대밭으로 변해가는 해운대로 달려갑니다. 아! 이들의 운명은 과연 어떻게 될까요?

[2] 생각 키우기

자, 우리가 보아온 할리우드 재난영화들을 떠올려 볼까요. 엄청난 재앙이 닥치고 사람들은 이내 생사의 갈림길에 섭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연의 일치가 꼭 있지요. 착한 사람은 살아남고 나쁜 사람은 반드시 죽는단 설정 말이에요. 영화 ‘투모로우’를 보세요. 지구에 빙하기가 닥치리라는 예측을 가장 먼저 한 주인공 잭 홀 박사는 위기에 빠진 아들까지 멋지게 구출해내면서 살아남잖아요. 지구멸망을 다룬 할리우드 최신작 ‘2012’도 다르지 않아요. 주인공 일행은 대재앙 속에서도 살아남지만, ‘남이야 죽든 말든 나와 내 자식의 목숨만 부지하면 된다’는 이기적인 생각을 가진 한 부자(富者)는 결국 목숨을 잃고 말아요.

얼마나 비현실적인 설정인가요. 천재지변이 착한 사람은 비켜가고 나쁜 사람만 ‘골라서’ 덮치다니요. 게다가 이 세상에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을 구분하기가 칼로 무 자르듯 쉬운 것도 아니잖아요.

할리우드 재난영화들이 이런 말도 안 되는 결말을 고집하는 이유가 있어요. 관객들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려는 처사이지요. ‘착한 사람은 살고 악한 사람은 죽는다’는 권선징악(勸善懲惡)의 교훈을 영화에 담아야만 관객들이 ‘그래, 역시 평소 착하게 살아야 해’라는 간단명료하고도 ‘착한’ 결론을 얻게 되는 것이지요. 만약, 악당은 끝까지 살아남고 착한 주인공은 억울하게 죽는 이야기를 재난영화에 담는다고 생각해 보세요. 관객들이 얼마나 혼란스럽고 때론 화가 치밀어 오르겠어요.

‘해운대’가 할리우드 영화와 다른 지점은 바로 이곳입니다. ‘해운대’의 키워드는 권선징악이 아니에요. 바로 ‘인명재천(人命在天·사람의 목숨은 하늘에 달려 있다)’이라는 동양적 운명론이지요. 사람의 목숨은 ‘선하다고 오래 살고 악하다고 빨리 죽는’ 논리적 인과관계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고 이 영화는 말합니다. 목숨은 사람의 힘으로 어쩔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란 얘기죠.

‘해운대’를 보세요. 해양구조대원인 형식은 평소 착하게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결국 한 남자의 생명을 살린 뒤 자신을 희생합니다. 반면 형식이 구조한 남자는 어떤 인물인가요. ‘세상 모든 것은 돈으로 살 수 있다’고 믿는 악질적인 인간입니다. 보세요. 착한 사람은 죽고, 나쁜 사람은 살았어요. 지진해일을 예측한 김 박사도 마찬가지예요. 할리우드 재난영화에선 재앙을 예견하고 정부에 알리는 착한 과학자는 죽는 법이 없잖아요. 하지만 ‘해운대’는 달라요. 동분서주하던 김 박사도 결국엔 전처와 함께 장엄한 죽음을 맞습니다. 영화에서 주인공인 만식과 연희가 나누는 사랑을 시기하고 방해하는 동춘(김인권)은 또 어떤가요. 그는 비겁한 겁쟁이에 불과하지만 지진해일을 맞아 죽기는커녕 뜻하지 않게 여러 사람의 목숨을 구해주면서 영웅이 됩니다.

그렇습니다. 운명은 이렇듯 논리적이지 않습니다. 인과관계로 산뜻하게 설명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운명은 얄궂다’는 말도 있는 게 아닐까요.

우린 운명을 알 수 없습니다. 언제 죽을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만큼 인간은 나약하고, 신에 의지해 살아가야만 하는 불완전한 존재입니다. 이런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지금 이 순간을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입니다.

▶ 자세한 설명은 ezstudy.co.kr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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