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깃꼬깃 2000원의 ‘행복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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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0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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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마포구 성산2동 주민들 ‘소액기부 바이러스’

아이부터 경로당 노인까지 ‘1주민 1행복계좌’ 운동
1년에 1억원 목표 훌쩍… 학생 131명 학원비 등 지원

요즘처럼 물가가 비싼 시대에 2000원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담배 한 갑을 사기도 힘들다. 기껏해야 과자 두 봉지 정도 살 수 있다. 어찌 생각하면 얼마 안 되는 적은 돈이다. 하지만 서울 마포구 성산2동 주민들에겐 무엇보다도 특별한 액수다. 요즘 이곳 주민 3000여 명이 단체로 2000원어치 ‘소액기부 바이러스’에 전염됐기 때문이다.

○ 2000원씩 십시일반

성산2동은 전체 인구 4만2000명 중 1560명이 기초생활수급자인 동네다. 65세 이상 노인은 3550명으로 마포구 관내 동 가운데 가장 많다. 지체장애인이나 시각장애인 등 장애인구도 1800명에 이른다. 어떤 식으로든 지원이 필요한 저소득층이 동 전체 인구의 30%에 이르는 셈. 너나 할 것 없이 형편이 어렵긴 마찬가지지만 주민들은 지난해 4월 자발적으로 ‘1주민 1행복계좌’ 갖기 운동을 시작했다. 지역 특성상 정부나 시, 구 차원에서 돕는 법정 구호 대상자 말고도 도움이 필요한 주민들이 많다는 판단에서다.

행복계좌를 만드는 방법은 어렵지 않다. 2000원의 여유가 있다면 계좌를 만들어 적립하면 된다. 참여하는 주민 한 명당 계좌 한 개씩을 기본으로 정했지만 형편이 되는 일부 주민들 중에는 5계좌에서 많게는 100계좌까지 만들기도 했다. 기부사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주민들이 큰마음 먹고 처음 세웠던 목표는 1억 원. 처음엔 이를 두고 말도 많았다. ‘한 계좌에 2000원씩 해서 언제 그 돈을 모으겠느냐’는 우려부터 ‘욕심 내지 말고 현실적으로 1000만 원만 하자’는 제안도 있었다. 하지만 기우(杞憂)였다. 경로당과 학교, 종교단체 등 지역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한 덕에 시작 1년 만에 기금 목표는 1억 원을 초과 달성했다. 초등학생이 아껴 모은 간식비부터 경로당 어르신들의 쌈짓돈까지 행복계좌에 속속 모이고 있다. 올해 10월 기준 총후원금은 1억4998만2600원. 연간 목표치였던 5만 개 계좌도 3000개 가까이 초과 달성했다.

○ 교육비 지원해 가난 대물림 막아야

그렇다면 이렇게 모은 소중한 기부금은 어떻게 활용될까. 주민들이 기부금 조성에 앞서 가장 투자하고자 했던 부분은 다름 아닌 ‘교육’. 교육 격차로 인해 아이들에게까지 가난이 대물림되는 일은 막아야 된다는 데 주민들은 의견을 모았다. 지난해 8월부터 지급되기 시작한 행복기금은 관내 형편이 어려운 학생 131명의 장학금 및 학원비, 교복값 등에 골고루 쓰였다. 그간 학원비가 부담돼 남들은 서너 개도 다닌다는 학원에 발도 못 들여 본 초등학교 6학년 김승현(가명·12) 군은 행복기금 덕에 올해 5월 영어학원에 처음 등록했다. 그동안 막연한 공포의 대상이었던 영어에 자신감도 붙었다. 최근 본 영어인증시험(펠트 주니어)에선 기대 밖의 고득점을 받았다. 행복기금 일부는 관내 아동 200명이 책을 빌려 읽을 수 있게 지원해 주는 ‘아동의 꿈에 물주기 사업’에도 들어간다. 책값이 부족해 마음껏 책을 사 읽지 못하는 악순환을 막기 위해 도서대여비의 절반 이상을 내준다.

주민들은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아이들에게 교육 혜택을 선물하기 위해 행복계좌와 함께 ‘1학원 1아동 결연’ 운동도 함께 진행 중이다. 직접 동네 학원장들을 설득해 저소득 아동 및 장애 아동들이 무상으로 학원을 다닐 수 있도록 한 것. 지금까지 32개 학원에서 관내 학생 120명을 후원하기로 했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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