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성적 공개로 ‘수업 노하우’ 교류 늘듯… 학교 서열화 우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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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0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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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적 오른 학교 베테랑 교사에게 들어보니

최근 5년간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학생들의 성적이 크게 오른 서울시내 3개 학교 교사들은 23일 동아일보에서 열린 좌담회에서
“학생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열정적으로 운영한 것이 성공 비결”이라고 입을 모았다. 왼쪽부터 영등포고 박재철 교사, 영신여고
이기웅 교사, 선린인터넷고 장광영 교사. 전영한 기자
최근 5년간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학생들의 성적이 크게 오른 서울시내 3개 학교 교사들은 23일 동아일보에서 열린 좌담회에서 “학생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열정적으로 운영한 것이 성공 비결”이라고 입을 모았다. 왼쪽부터 영등포고 박재철 교사, 영신여고 이기웅 교사, 선린인터넷고 장광영 교사. 전영한 기자
《동아일보가 입체 분석한 2005∼200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에서 전문계고인 용산구 선린인터넷고는 2005학년도 202위에서 2009학년도 61위로 올라 서울 시내에서 가장 상승폭이 큰 학교였다. 사립학교인 노원구 영신여고는 같은 기간 90위에서 40위로 올라 상위권 학교로 발돋움했다. 동작구 영등포고는 하위권인 199위에서 중위권인 107위로 오른 공립학교였다. 5년 동안 이들 학교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궁금증을 풀기 위해 세 학교의 교사들을 초청했다. 교사들은 우선 수능 성적이 학교별, 지역별로 공개된 데 대해 그동안 알 수 없었던 소속 학교의 수준을 알게 된 것은 놀라운 일이라고 했다. 교사들은 성적 공개가 학교 서열화가 아닌 각 학교의 학력 신장 비결 공개로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영신여고 이기웅 교사=서로 몰랐던 다른 학교의 성적을 알 수 있게 된 건 큰 변화다. 성적이 오른 학교는 저마다 노하우를 갖고 있을 거다. 이전에는 어느 학교가 좋은 성적을 올렸는지 알 수 없었는데 앞으로는 우리 학교가 알려줄 수 있는 부분은 이야기해주고 다른 학교의 좋은 점은 배울 수 있을 것 같다.

▽선린인터넷고 장광영 교사=성적 공개가 학교에 대한 평가를 지나치게 학력 위주로 흐르게 한다는 우려는 있다. 인성개발이나 취미개발 등 학교가 해야 할 다양한 일이 있는데 성적이 공개될수록 이런 것은 점차 경시되고 수능이나 시험에만 매달리게 될 수 있다. 자율형사립고 등을 늘린다지만 결국 교육의 초점이 대학 진학에 맞춰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이 교사=교육적으로 옳은 말씀이지만 학생과 학부모가 원하는 것은 결국 진학이다. 설령 비교육적이더라도 진학에 힘을 쏟을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아이들을 사교육 시장에 빼앗기지 않으면서 학교에서 성적이 향상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좌담에 참여한 학교들은 수능에서 언어, 수리, 외국어 영역의 성적이 골고루 오른 것은 물론이고 학생들 사이의 편차도 줄어드는 추세를 보였다. 비결을 묻자 교사의 열정, 자율성, 학교 여건 등 다양한 답이 쏟아졌다.

▽이 교사=수리와 외국어가 5년 새 7∼8점씩 올랐다. 우리학교 방과후수업의 특징인 ‘등급별 클리닉수업’이 효과를 거둔 것으로 본다. 모의고사 등급대로 반을 세분해서 1년에 1등급씩 올리는 것을 목표로 100분간 수업을 하고 100분간 학습 클리닉을 한다. 교사들이 직접 만든 콘텐츠로 모든 학년이 매일 20분씩 영어듣기를 하기 때문에 외국어 영역 듣기평가 점수가 눈에 띄게 오른다. 학교가 있는 중계동이 학원 밀집지역인데도 방과후수업 참여율이 50%를 넘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장 교사=우리는 특별전형과 일반전형으로 나눠 학생을 뽑는데 일반전형으로 들어온 학생들은 중학교 내신 20% 이내로 우수한 편이다. 하지만 전문계고이다 보니 국어 영어 수학의 수업 시간이 일반계고의 절반밖에 안되고 기초학력이 부족한 학생도 많다. 그래서 과목별로 기초학력을 키울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많이 운영한다. 전문계고 중에서는 이례적으로 수학경시대회, 영어경시대회를 열고 독서인증제도 실시한다. 모의고사나 학력평가에서 영역별로 1등급을 받으면 2만 원, 2등급을 받으면 1만 원씩 장학금을 적립했다가 졸업할 때 현금으로 주는 것도 동기부여가 되는 것 같다.

▽영등포고 박재철 교사=요즘은 모든 학교가 학력 향상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다만 환경적인 요인들도 고민해야 한다. 영등포고의 경우 역사가 50년이 넘다 보니 8년 전에 대대적인 학교 공사가 이뤄졌다. 공사 때문에 교육 여건이 열악하니까 우수 학생들이 대거 전학을 떠나 성적이 나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공사를 마친 이후에 점차 성적이 오르고 있다.

교사들은 지역 간 학력 격차나 공사립의 분위기 차이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풀어냈다. 서울의 많은 공립학교에서 재직한 박 교사는 한 반에 1등급이 10명씩 있는 학교가 있는가 하면 어떤 학교는 한 명도 찾아보기 힘들 만큼 학교 간 차이가 심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박 교사=수능 공개 결과를 보면 특수목적고의 성적이 월등히 좋지 않나. 그런데 잘 들여다보면 외국어고가 특별한 교육 비법을 갖고 있다기보다는 입학생들의 성적이 워낙 좋으니까 졸업생들의 결과도 좋은 것이다. 또 ‘어떤 학교에서 이런 학습 프로그램을 운영해서 성적이 올랐으니 다른 학교도 해봐라’는 식으로 일반화하면 모든 학교가 잘될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프로그램도 지역과 학생 특성을 감안해서 운영해야 하고, 특히 뒤처진 지역에 대한 투자가 절실하다.

▽이 교사=박 교사의 의견에 기본적으로 동감하지만 학교의 노력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점도 강조하고 싶다. 우리 학교가 있는 노원구만 해도 평준화니까 어차피 각 고교 입학생들의 성적은 비슷하다. 그런데 학년이 올라갈수록 학력 격차가 심해져서 성적 공개를 꺼리는 학교들이 생긴다. 입학생 효과, 지역 효과도 있지만 교사가 얼마나 열정을 갖느냐, 교장이 얼마나 리더십을 발휘하느냐에 따라 공교육 효과가 갈리는 것도 사실이다.

▽장 교사=대부분 공립학교에 비해 사립학교가 특화된 프로그램을 많이 운영하고 자율적인 학교 운영도 가능하다 보니까 학부모들이 사립을 선호하는 경향이 커지는 것 같다. 공립도 적극적인 학교 운영이 필요하다고 본다. 우리 학교는 공립이지만 오히려 사립보다 자유롭고 파격적인 학교 분위기를 만들어서 좋은 성과를 보고 있다. 학교 컴퓨터실을 개방해서 아이들에게 ‘PC방에 가지 말고 차라리 학교에서 게임을 하라’고 했고, 두발이나 복장도 심하게 규제하지 않는다. 학생들이 자유롭게 동아리활동을 하는 것도 장려한다. 아이들이 학교를 좋아하고 학교에서 뭔가 해보려고 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게 중요한 것 같다.

교사들은 수능이나 학업성취도 성적이 계속 공개되는 상황에서 본격적인 고교선택제의 서막이 오르는 것에 대해 일선 학교들이 무척 긴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교사=학교에서 잘 가르쳐야 한다는 분위기가 강해지면서 교사들 절반 정도는 오후 10시까지 남는다. 누가 남으라고 하지 않는데도 스스로 남아서 아이들을 지도하는 분위기다. 그렇지만 인센티브가 있는 것은 아니다.

▽장 교사=교육 당국은 계속 새로운 사업을 만들어내는데 물론 학력 신장에 도움이 되는 것들이다. 그런데 새로 생기는 건 많은데 없어지는 것은 하나도 없다.(웃음) 교사들의 업무가 너무 과중해지는 것도 문제다.

▽박 교사=수준별 수업이 늘어나면서 우리도 수업을 상중하로 나눠 하고 있는데 ‘하’등급 학생 중에는 정말 기초가 너무 부족한 학생이 많다. 이 아이들을 제대로 끌어올리려면 일대일 학습밖에는 해결 방법이 없을 정도다. 하지만 지금 여건에서는 불가능하지 않나. 공교육이 크려면 교원 수나 예산이 늘어나야 한다.

정리=김희균 기자 foryou@donga.com
남윤서 기자 bar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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