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 잎 날리던 백록담, 새 풀옷 입었네

  • 입력 2009년 10월 14일 02시 57분


코멘트
■ 생태복원 작업 10년 결실
18kg 흙포대 깔고 나무말뚝 박아
고산식물 씨앗-모종 곳곳에 심어
“자생식물 살수있게 토양 안정돼”

일반인 출입이 통제된 한라산국립공원 백록담 남벽 정상. 12일 찾은 남벽은 겨울 맞을 채비가 한창이다. 백록담 분화구 사면에서 한국 특산종인 구상나무는 여전히 위용을 뽐내고 산개버찌나무, 좀고채목, 털진달래는 빨갛게 옷을 갈아입었다.

○ 한라산 정상에 새 생명

남벽 풀숲에 한라구절초가 단아한 자태를 뽐내며 하얀 꽃을 피웠다. 섬매발톱나무는 엄지손톱 크기의 올망졸망한 분홍 열매를 달았다. 이에 질세라 눈개쑥부쟁이가 연한 자줏빛 꽃을 화사하게 드러내며 가을 햇볕을 받았다. 바늘엉겅퀴는 계곡에서 솟구치는 바람에도 아랑곳없이 보랏빛 꽃을 피웠다. 이들 모두 한라산 특산식물이거나 희귀식물들이다.

가을 백록담을 만끽한 구름떡쑥은 서서히 하얀 꽃잎을 잃어갔다. 노란 꽃을 피운 곰취는 시들었다. 멸종위기 식물인 시로미, 눈향나무 등도 차가운 바람에 화사한 빛이 사라졌다. 이번 겨울을 버티고 나면 내년 봄 새로운 생명을 피울 것이다.

이들이 보금자리를 튼 밑바닥에는 고산초지 식물인 김의털, 검정겨이삭이 단단히 뿌리내렸다. 푹신한 풀밭을 걷는 느낌이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메뚜기 등이 뛰어올랐다. 무당벌레는 돌양지꽃 주변을 엉금엉금 기어갔다. 한눈에 보아도 식물 생태계가 자리 잡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등산객 발길 등으로 식물 생태계가 완전히 무너진 곳에 복구 작업을 마무리한 지 10년 만에 원래 모습을 찾은 것.

제주도환경자원연구원 고정군 박사(식물학)는 “토양이 안정화 단계에 접어들면서 자생 식물이 안심하고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며 “백록담과 정상 주변에 서식하는 특산식물의 변화상을 정기적으로 모니터링하겠다”고 말했다.

○ 파괴된 생태계가 복구 작업으로 회생

백록담 남벽과 서벽 지질은 연한 회색의 한라산 조면암. 동쪽 정상의 현무암보다 토양 응집력이 낮아 조그만 힘에도 쉽게 무너지는 특징을 보인다. 여기에 등산객이 몰리면서 훼손이 빨라졌다. 정상부 훼손면적은 4만320m²(약 1만2190평)에 이르렀다. 국립공원 측은 자연휴식년제를 도입해 1994년부터 남벽 정상 출입을 금지하고 2000년까지 복구 작업을 했다. 흙이 담긴 18kg짜리 녹화마대를 훼손지마다 깔았다. 호우와 강풍에 씻겨나가는 것을 막고자 30cm가량의 나무말뚝을 박았다.

문제는 식물이 뿌리내리는 것. 흙을 잡아주는 능력이 뛰어난 김의털, 검정겨이삭 등을 활용했다. 국립공원 직원들이 매년 가을마다 해발 1500m 이상 고지대에서 종자를 채집한 뒤 정성스레 말렸다가 이듬해 봄에 뿌렸다. 초지식물이 뿌리를 내리자 특산식물, 희귀식물 종자를 심었다. 국립공원 직원 신용만 씨는 “씨앗을 뿌리는 것으로는 확신이 서지 않아 나중에는 녹화마대 사이사이에 어린 김의털 등을 심었다”며 “여러 차례 시행착오 끝에 백록담에 적합한 복구 방식을 찾았다”고 설명했다.

남벽 복구공사 이후 2001∼2002년 백록담 순환로 등에 녹화마대 공법이 적용됐다. 정상부 전체 복구공사 면적은 3만2040m²(약 9690평)로 전체 훼손면적의 79.5%에 이른다. 국립공원 측은 이후 복구공사를 중단했다. 나머지 지역은 자연회복이 가능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김대준 한라산국립공원 보호관리부장은 “백록담 동릉을 유일하게 개방해 분화구 조망이 가능하지만 등산객 발길로 암반이 무너질 우려가 있다”며 “훼손을 예방하기 위해 정상 데크 시설 등 친환경 보호대책을 다양하게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제주=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