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청소년들의 자서전 제작 ‘희망 비행’ 날개를 달아주다

  • 입력 2009년 8월 22일 02시 58분


21일 서울 마포구 성산동 마포청소년수련관에서 ‘얘너나’ 팀원들이 연출자 청소년의 지시에 따라 연극을 연습하고 있다. 김재명 기자
21일 서울 마포구 성산동 마포청소년수련관에서 ‘얘너나’ 팀원들이 연출자 청소년의 지시에 따라 연극을 연습하고 있다. 김재명 기자
올 4월 결성 프로젝트팀 ‘얘너나’
‘문제아’들에게 소통 창구 선물

“저 에미나인 뭐야?…아, 사투리 못하겠어. 연출자, 역할 바꿔줘!”

21일 오후 서울 마포청소년수련관 2층 열린공연나루. ‘건방진’ 배우들이 연극 연습에 한창이다. 10대의 앳된 연출자는 “욕 부분을 조금 더 강하게 말해주셨음 좋겠는데…. 저기, 좀 쉴까요?” 하며 연방 배우들의 눈치를 봤다. 양다솜 씨(21·여)는 “연출, 우리 빨리 해야 돼” 하고 휴식 제의를 일축했다.

양 씨는 비행청소년들의 자서전을 만들어주는 프로젝트팀 ‘얘너나’의 일원이다. 평소 대안운동에 관심을 가져온 이들이 뭉쳐 올 4월 결성한 얘너나는 2005년 출간된 수필 ‘얘들아 너희가 나쁜 게 아니야’에서 그 이름을 땄다. 이날은 팀원들이 지난 두 달간 함께한 보호관찰대상 청소년 12명과 마지막 만남을 갖는 날이다.

팀원들은 연극을 기획했다. 청소년들이 연출자가 되고 얘너나 팀원들이 연기를 했다. 팀원 가운데 맏형인 한운장 연세대 청년문화원 연구원(26)은 “항상 누군가의 지시를 받기만 하는 아이들이 직접 기획하고 지시도 하는 기회를 갖게 하고자 했다”며 “못된 배우가 되어 그동안 당한 걸 갚아줄 생각”이라고 웃었다.

고등학생에서 대학생, 활동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얘너나 팀원 6명은 매주 금요일 12명의 청소년을 만나 각종 문화활동을 진행해왔다. 올 5월 S중학교 2학년생 ‘문제아’ 27명을 받은 이후 두 번째다. 이들은 비행청소년들이 그동안 어디서도 온전히 털어놓지 못했던 자신의 속내를 이야기할 수 있는 창구를 마련하고자 한다. 글뿐 아니라 영상과 손수제작물(UCC)도 만든다. 성균관대 1학년 윤이삭 씨(19)는 “인터넷 덧글 외에는 써본 게 거의 없는 아이들이라 다양한 소통 수단을 이용해 마음속 말을 이끌어내고 있다”고 말했다.

제주도에서 올라온 대안교육운동가 장재연 씨(34·여)는 “그동안 웃지 못할 일도 많았다”며 과거를 회상했다. 장 씨는 “5월 초 S중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첫 수업을 했을 때 아이들은 준비해온 프로그램을 하나도 따라주지 않고 보란 듯이 우리 앞에서 싸우기도 했다”며 “가출한 아이를 설득하기 위해 전 팀원이 한강시민공원에 가 밤을 새운 적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8주간 노력을 기울이자 어느새 아이들은 수업에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자신의 집안 이야기를 먼저 할 정도로 달라졌다”고 덧붙였다.

팀원들은 넉 달간 50여 명의 청소년으로부터 방대한 ‘속내’를 수집했다. 곧 이를 바탕으로 책과 기록영화를 제작할 예정이다. 양 씨는 “얼마 전 보호관찰대상인 폭주족 아이가 나에게 자신의 손으로 직접 자기 이야기를 담은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다고 방법을 물었다”며 “하고픈 말이 많은데 어떻게 털어놓아야 할지 모르는 아이들이다. 그들의 말과 글이 되어주고 싶다”고 작지만 큰 꿈을 밝혔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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