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소송 ‘손해배상 잣대’ 깐깐해지나

  • 입력 2009년 8월 21일 02시 58분


‘수도권 매립지 침출수로 어장 피해’ 어민, 항소심서 패소
“원인다양… 가해자 무해입증 책임없어” 1심 판결 뒤집어

어민들이 쓰레기매립지에서 나온 오폐수 때문에 피해를 봤다며 낸 소송 항소심에서 법원이 어민들의 손을 들어준 1심을 뒤집고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이번 판결은 환경오염으로 인한 손해배상 여부를 판단하는 데 더욱 엄격한 잣대를 적용한 것으로, 최근 늘고 있는 환경오염 피해 소송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서울고법 민사8부(부장판사 김창보)는 강모 씨(74) 등 김포·강화지역 어민 275명이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항소심에서 일부 배상 판결을 내렸던 원심을 깨고 원고 패소 판결했다고 20일 밝혔다.

김포·강화지역의 어장을 둘러싼 환경피해 분쟁은 199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정부는 연근해 어업이 이뤄지던 경기 김포시 대곶면 대명리, 인천 강화군 길상면 초지리 동검리 인근에 수도권에서 반입되는 쓰레기를 처리하기 위한 매립지를 지었다. 매립지 건설 이후 어획량이 줄고 어장이 황폐해지자 어민들은 “매립지에서 발생하는 침출수를 정화한 침출처리수의 배출로 인근 해역의 수질이 오염됐다”며 인천지법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1심 재판부는 2007년 10월 전문감정인의 감정결과를 바탕으로 어민들의 주장을 일부 받아들여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는 202명에게 손해액의 50%인 총 184억 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1심은 판결의 근거로 환경피해 소송에서 자주 인용되는 1999년 6월 대법원 판례를 들었다. ‘환경을 오염시킨 가해자 측에서 무해하다는 것을 입증하지 못하는 한 책임을 면할 수 없다’는 것이 판례의 요지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공해와 그로 인한 피해 사이의 인과관계를 훨씬 엄격하게 본 뒤 가해자의 입증책임 자체를 논할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재판부는 “어획량의 차이는 다양한 원인이 있을 수 있고 공사가 배출한 침출처리수로 인한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며 “신뢰성이 떨어지는 감정내용 등 여러 사정을 종합해 볼 때 공사 측이 유해물질을 배출해 어민들에게 손해를 끼쳤다는 사실 자체가 입증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또 “침출처리수가 어장에 미친 영향은 극히 미미하고 육상에서 배출되는 모든 오폐수는 정화처리 과정을 거쳐 종국에는 바다로 방류될 수밖에 없다”며 “침출처리수는 관련 법령이 정하는 규제기준보다 훨씬 낮은 수준에서 배출되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어민들이 입은 다소의 피해는 참을 수 있는 한도의 범위에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판결은 최근 비행장 소음 등의 공해소송에서 정부의 배상책임을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추세와 다른 것이다. 법원 관계자는 “환경분쟁을 보는 시각은 재판부의 철학과 판단 기준에 따라 다를 수 있다”고 말해 대법원에서 어떤 결론을 내릴지 주목된다.

이종식 기자 bel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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