多産 호남, 알고보니 ‘多문화의 힘’

  • 입력 2009년 8월 20일 03시 03분


국제결혼 많은 전남-전북, 기초단체 출산율 1∼4위 차지

■ 2008 출산통계 분석

전북 진안군에는 한국 남성과 외국 여성이 결혼해 꾸린 다문화가정이 약 210가구가 있다. 이들 가정에서 지난달까지 태어난 아이는 257명. 이달 들어서도 5명이 더 태어났다.

다문화가정의 자녀 수는 대부분 두서넛이지만 지난해에는 쌍둥이를 출산해 다섯까지 둔 가정도 나타났다. 진안군의 한 공무원은 “‘오랜만에 아기 울음소리가 들려 기쁘다’는 말은 진안에선 이제 구문(舊聞)”이라며 “요즘은 다문화가정의 아이들이 커서 엄마와 함께 노래자랑에 나와 1등을 하는 모습도 적잖게 볼 수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전국 지방자치단체 인구정책 경진대회에서 1등을 한 전남 강진군에도 약 170가구의 다문화가정이 있다. 강진군의 전체 인구가 약 4만2000명인 것을 감안하면 매우 적은 수다. 하지만 이들 가정은 ‘젊은 강진’을 만드는 데 상당한 기여를 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강진군 관계자는 “다문화가정은 아이를 많이 낳는 편이어서 자녀를 3명 정도 둔 가정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다문화가정이 저출산으로 고민하는 한국의 ‘출생지도’를 바꾸고 있다. 다문화가정이 많은 시군구에서는 합계출산율(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아이 수)이 급증하는 추세가 뚜렷해지고 있다. 이는 19일 통계청이 발표한 ‘2008년 출생통계 결과’에서도 확인된다.



○ 다산(多産)하는 호남의 다문화가정

지난해 강진군의 합계출산율은 2.21명으로 전국 평균(1.19명)의 약 2배에 이른다. 강진에 사는 여성이 한국의 보통 여성보다 두 배가량 아이를 많이 낳는 셈이다. 자녀를 많이 낳는 편인 미국(2.12명) 프랑스(1.998명) 영국(1.90명) 등 주요 선진국보다도 많은 수치다.

강진군은 셋째를 낳으면 총 720만 원의 양육비는 물론 건강보험료까지 지원하는 출산장려책을 갖추고 있지만 출산율이 처음부터 이렇게 높았던 것은 아니다. 2005년만 해도 1.52명 수준이었지만 외국 여성의 유입으로 지난해에는 전국 232개 시군구 가운데 출산율 1위의 지자체로 올라섰다.

진안군의 출산율은 강진군에 이어 2위를 차지했지만 출산율 증가 속도는 훨씬 빠르다. 2005년 1.03명에서 작년에는 1.90명으로 4년 새 0.87명이나 늘었다. 같은 기간 전국 평균 출산율 증가폭 0.11명보다 8배 많은 것은 물론 강진군(0.69명)까지 앞질렀다.

호남권에서 출산율이 높은 곳은 강진군과 진안군만이 아니다. 전남 영암군(1.898명)과 전북 임실군(1.88명)도 각각 3, 4위를 차지했다. 통계청 관계자는 “다문화가정이 늘고 있는 지역의 경우 출산율이 높은 경향이 두드러진다”고 설명했다.

2008년 혼인통계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전남의 전체 혼인 가운데 한국 남자와 외국 여자의 결혼 비중은 13.8%, 전북은 13.4%로 전국 1, 2위였다. 호남지역에서 치러지는 결혼 100건 중 13건 이상이 국제결혼인 셈이다.

반면 부산 서구(0.79명), 광주 동구(0.80명), 서울 강남구(0.82명), 대구 서구(0.83명) 등은 출산율이 가장 낮은 지역으로 꼽혔다. 대도시 중심권역은 미혼 남녀가 많아 전통적으로 출산율이 낮다는 게 통계청의 설명이다.

○ 20대 초반 여성 출산율 의외의 증가

다문화가정이 바꿔놓는 출생 통계는 여성의 연령별 출산율에서도 나타난다. 지금까지 한국에서는 여성의 결혼 연령이 늦어지면서 30세 미만의 출산율은 감소하는 대신 30세 이상의 출산율이 증가하는 추세였다.

그러나 지난해에는 20대 여성의 출산율에서 미묘한 변화가 감지됐다. 25∼29세의 여성 1000명당 출생아는 2006년 89.4명에서 2008년 85.6명으로 기존의 감소 추세가 이어졌지만 20∼24세는 17.6명에서 18.2명으로 오히려 늘어난 것. 통계청 관계자는 “20대 전체 출산율은 황금돼지해 때문에 ‘출산 붐’이 일었던 2007년보다는 모두 감소했지만 2006년과 비교했을 때 20대 초반의 출산율이 증가한 것이 특징”이라며 “다문화가정을 이루는 외국 출신 젊은 여성들이 아이를 많이 낳은 것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한편 지난해 전체 출생아 수는 46만6000명으로 전년보다 2만7000명 줄어 2005년 이후 3년 만에 감소세를 보였다. 하지만 통계청은 2007년 황금돼지해 요인을 빼면 출생아 수가 늘어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전체 출생아가 줄었는데도 미혼모가 낳은 아이는 8400명으로 1년 전보다 600명가량 늘었다.

차지완 기자 cha@donga.com

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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