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방촌에서의 하루

  • 입력 2009년 8월 3일 15시 22분


더위에 시달리는 쪽방촌 . 원대연 기자
더위에 시달리는 쪽방촌 . 원대연 기자
더위에 시달리는 쪽방촌 원대연 기자
더위에 시달리는 쪽방촌 원대연 기자
지난달 30일 낮 영등포구 영등포동 426-90 번지. 폭 2m의 골목을 두고 양쪽으로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2층 구조로 된 쪽방들이 100m 이상 쭉 이어졌다. 골목에 들어서자 바람이 통하지 않아 숨이 턱 막혔다. 골목을 지나는 동안 열려진 문틈 사이로 3.3㎡(1평)도 채 안 되는 공간에 누워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골목 안에는 집 앞 그늘에 앉아 부채질을 하는 노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박모 할머니(72)는 "집이 너무 더워 이렇게 나와 있지. 우리는 수족이야 놀리니 더울 때 나와서 식히기라도 하지. 아파서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은 방에서 나오지도 못하고 집 안에서 죽는 사람도 많아"라고 말했다.

오후 1시. 골목 안으로 더 들어가니 진명월 할머니(84)가 쪽방 2층에서 비좁은 계단을 손으로 짚으며 올라가고 있었다. 경사는 60도가 넘을 정도로 가팔랐다. 진 할머니를 따라 계단을 올라가자 쪽방이 한눈에 들어온다. 천장이 낮아서 고개를 숙이고 방으로 들어갔다.

"여기는 지옥이라우. 못 죽어 살지" 폭염 속 독거노인과 쪽방에서 하루

벽에 선풍기가 걸려있었지만 돌아가지 않았다. "아무리 더워도 선풍기는 전기 값이 많이 나와서 안틀어. 방 값 20만 원과 수도세, 밥값을 빼면 남는 게 없어." 진 할머니는 5만 5010원이 청구된 7월 전기 요금 청구서를 보여줬다. 노인 혼자 사는 가구는 낮은 소득수준으로 인해 거주지 냉방 시설이 취약하다. 보건복지부가족부에 따르면 독거노인의 경우, 여름철 냉방기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 경우가 17.3%, 냉방기 시설이 불량한 경우가 42%에 달한다.

쪽방에 들어 온 지 2분도 되지 않아 얼굴에 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10분 정도 되자 얼굴이 땀범벅이 됐다.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있는데 허벅지에 땀이 차 수시로 자세를 고쳐야 했다. 안에서 자는 것은 불가능할 것 같았다.

쪽방은 대부분 슬레이트 지붕으로 돼 있어 방을 더 덥게 만든다. "지붕만 바꾸면 집이 시원해지는데 돈이 없어. 설사 돈이 있어도 그런 공사를 하면 집이 무너질 수도 있어 못 해. 그래도 2층은 창문이라도 있어 다행이야." 쪽방 1층은 간격 없이 다닥다닥 붙어있어 창문 자체가 없는 경우가 많다.

진 할머니는 기자를 위해 벽에 매달린 선풍기를 틀어줬다. 하지만 뜨거운 바람이 나와 더 덥게 느껴졌다. 이날 오후 영등포구 최고 기온은 31.8도(오후 3시 17분 기준)였다. 쪽방 안 온도는 30~31도 정도였다. 온도계 온도는 방안이 바깥보다 더 낮았지만 체감 온도는 방안이 더 높다. 기상청 관계자는 "밖에는 공기가 통하지만 실내는 공기가 정체된 데다 방이 6.6㎡ 이하로 좁을 경우 체감되는 온도는 바깥 기온보다 5도 정도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이날 오후 진 할머니 쪽방의 체감온도는 35도 이상이었던 셈이다.

오후 3시가 넘자 진 할머니도 괴로운 듯 냉장고에 얼린 물수건을 머리 위에 얹었다. 할머니는 1년 전 백내장 수술을 한 후 덥기만 하면 눈이 아프고 눈 주위가 부어올라 아파했다. 진 할머니는 "아침 6시에서 9시, 저녁 5시에서 9시 사이 폐지를 주워 팔기 때문에 낮에 조금이라도 눈을 붙여야 일을 한다. 집에서 자자니 너무 덥고, 밖에 나가서도 잘 수도 없어 너무 힘들다"고 말했다.

가스 레인지 못 켜 밥도 못 해 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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