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약재 이력추적제 입법예고날 경동시장 가보니

  • 입력 2009년 7월 15일 02시 59분


“위조품 많아 아는 업체와 거래”

원산지 파악 어려운 약재 즐비

녹용 인삼 치자 황기가 진열대 한쪽에 무더기로 쌓여 있었다. 약재를 분류한 작은 팻말을 보고서야 약재 구분이 가능했다. 국내산, 북한산, 중국산, 러시아산이라고 표시돼 있기는 했지만 뒤섞여 있어 원산지 구분도 무의미해 보였다.

정부가 한약재 이력추적제를 입법예고한 14일 한약재의 70%가 유통된다는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 경동시장. 하루 종일 강풍과 함께 쏟아진 폭우로 약재를 찾는 손님은 거의 볼 수 없었다. 빗물이 튈 것을 우려한 상인들이 대형 비닐로 약재를 덮는 바람에 더욱 을씨년스럽게 보였다.

수입 한약재를 국산으로 둔갑시켜 한의원에 내다판 업체들이 적발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최근 경기 연천지역에서도 중국에서 식품용으로 수입한 약재를 정품 국산 한약재로 속여 전국 한의원에 내다판 일당이 적발되기도 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청에 따르면 2006∼2008년 부적합 한약재로 판정돼 수입이 금지된 한약재는 1357t에 이른다. 그러나 이렇게 적발된 사례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일각에서는 유통과정에서 원산지 위조와 의약품용 둔갑이 이뤄진다고 보고 있다. 가장 흔한 방식이 이미 수입된 한약재에 위조된 식품용 수입 약재를 섞는 것. 심지어 식품용으로 수입된 농산물을 한약재라며 시장에 내돌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경동시장 한약재 도매상 평화재건의 판매책임자인 윤석구 씨는 “워낙 위조품이 많아서 오랫동안 거래한 판매업체와 믿을 만한 수입업체가 아니면 물건을 받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약재의 경우 의약품으로 쓰이기 때문에 수입 때 반드시 중금속 검사, 곰팡이와 독소 검사를 거쳐야 한다. 또 수입할 때마다 매번 전수조사를 진행한다. 그러나 식품용으로 쓰이는 농산물은 이런 정밀검사 없이 육안검사만으로 통관절차가 끝난다. 그것도 최초 수입하는 시점에만 검사를 받고 그 후로는 검사 없이 수입이 가능하다.

원료 가격도 3∼5배 차이가 있다. 가령 국내산 황기가 600g당 1만5000원인 반면 식품용 수입 황기는 5000원 정도에 수입된다. 이 때문에 농산물로 수입한 뒤 약재로 속여 파는 것. 현재 녹용 오가피 오미자 인삼 작약 황기 등 한약재 546개 품목 가운데 188개가 농산물과 의약품용 한약재 두 가지 방식으로 수입 가능하다.

육안으로는 구분이 불가능하다. 이날 기자가 보건복지가족부 한의약산업과 박상표 과장, 식품의약품안전청 임상우 주무관과 함께 경동시장의 도매상과 소매상 10곳을 긴급 점검한 결과 도매상 일부를 뺀 대다수 소매상에서는 원산지 파악이 어려운 약재를 진열해 팔고 있었다. 대체로 정품 인증을 받은 제품을 취급하고 있었지만, 포장이 안 된 약재들도 함께 팔고 있었다.

소매상 박모 씨(49)도 이 점을 인정했다. 박 씨는 “포장된 한약재는 한의원이나 약방으로 들어가고, 그냥 비닐포대에 쌓여 있는 것은 일반 사람들한테 파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둘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우리는 잘 모른다”고 말했다. 박 씨는 이어 “포장되지 않은 약재들도 나름대로 원산지를 표시하기는 하지만 솔직히 좀 못 미더울 때도 있다”고 얼버무렸다.

평소 오가피 황기 대추 밤과 같은 한약재를 사러 경동시장을 자주 찾는다는 윤모 씨(71·서울 서초구)는 “한의원에 가기에는 경제적 부담이 커서 재료를 사다 집에서 달여 먹는데, 포장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는 모르고 있었다”고 말했다.

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

박보미 인턴기자 서울대 경제학부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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