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치-피살된 엄영선씨, 예멘에 왜 갔나

  • 입력 2009년 6월 17일 03시 00분


英 WEC 선교훈련대학 졸업

“선교 위한 봉사라 단정못해”

예멘에서 살해된 한국인 엄영선 씨(34·여)가 기독교 선교활동의 일종인 ‘MK(Missionary Kid) 사역’을 염두에 두고 예멘에 봉사활동을 갔던 것으로 확인됐다. ‘MK 사역’은 선교사 자녀들의 교육을 담당하는 활동으로 엄 씨의 피랍 이후 일부 외신이 엄 씨의 신분을 한국인 여교사라고 보도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엄 씨가 2001년부터 교인으로 활동해온 경기 수원시 형제교회는 지난해 10월 그가 예멘으로 출국하기 전 ‘엄영선 자매가 10월 10일 Y국에 MK 사역을 위해 파송된다’고 공지하면서 엄 씨를 위한 예배를 가졌다.

또 엄 씨는 2005년 2월 13일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모든 훈련을 마치면 터키로 가서 MK 사역을 하고 싶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이 블로그는 현재 폐쇄된 상태다.

엄 씨는 영국에 있는 국제선교회(WEC·Worldwide Evangelization for Christ)의 선교훈련대학을 2006년 7월 졸업했으며 이후 선교사 수련 과정을 밟았다. WEC는 1918년 영국에서 시작된 국제선교단체로 아프리카와 중동 등 주로 기독교가 전파되지 않은 지역에 2000명 이상의 선교사를 파견해 왔다. 1997년 창립된 WEC 한국지부는 지난해까지 46개국에 418명의 선교사를 파견했으며 이는 한국 선교단체 중 7번째로 많은 수다. WEC 한국본부 관계자는 “엄 씨가 선교훈련대학을 졸업한 것은 맞지만 WEC 한국본부가 엄 씨를 예멘에 공식적으로 파송한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형제교회 청년부 간사로 활동해 왔으며 엄 씨와 메일을 주고받은 신모 씨(41)도 엄 씨가 형제교회에서 정식으로 파견한 선교사가 아니라고 설명하면서 “지난해 10월 교회에서 (엄 씨의 예멘행에 대해) 파송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큰 의미를 부여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엄 씨는 예멘에 체류 중인 3월 25일 신 씨에게 보낸 메일에서 한국에 알려지지 않은 유대인 작가의 책을 추천하면서 “그들의 신앙과 우리의 하나님을 많이 생각하게 된다”고 썼다.

일부에서는 한국 기독교의 위험 지역 선교 활동이 잇따른 피해를 낳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으나 선교 전문가들은 엄 씨의 봉사활동을 선교를 위한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고 단순히 MK 사역을 했다는 것만으로 현지에서 종교적 반감을 키웠을 가능성도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이상국 서강대 동아연구소 교수는 “엄 씨가 능통한 영어실력을 갖추고 네덜란드 봉사단체와 함께 활동한 대목은 한국 젊은이들의 적극적인 세계 진출 사례로 평가해야 옳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이날 문태영 외교통상부 대변인 명의로 성명을 내고 엄 씨 피살에 대해 “분노와 경악을 금할 수 없으며 엄중히 규탄한다”며 “희생자에 대한 애도와 함께 유가족에게 심심한 조의와 위로의 뜻을 표한다”고 말했다. 엄 씨의 시신은 이 날 사고 지역인 사다에서 예멘 수도인 사나로 옮겨졌다. 엄 씨의 아버지와 여동생은 이날 밤 외교부 직원과 함께 예멘으로 떠났다.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MK 사역

선교사 자녀(Missionary Kids)들의 교육을 지원함으로써 안정적인 선교를 돕는 활동을 말한다. 해외에 파견된 선교사 자녀들의 타국 문화 적응을 돕는 한편 모국에 돌아올 때를 대비해 적절한 교육을 제공하는 것이다. 따라서 MK사역자들도 선교사들과 함께 생활하며 후방 선교를 담당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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