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전입 초등5학년이 ‘피크’

  • 입력 2009년 6월 4일 02시 59분


2001∼2007년 전출입 198만명 조사… 대입이후 썰물처럼 빠져

“와서 보니 이 학교에서 저학년을 다닌 애들은 절반도 안 되더라고요.”

주부 김모 씨(40)는 올해 초 초등학교 5학년생 딸(11)을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있는 학교로 전학시키면서 이 동네에 원룸 오피스텔을 얻었다. 먼 거리에서 대치동의 논술, 영어, 수학 학원에 다니느라 녹초가 된 딸을 위해 이사를 결심한 것. 결혼 후 줄곧 살던 동대문구의 아파트에는 남편 혼자 남아 있다. 아이가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는 이렇게 지낼 계획이다.

2000년대 들어 서울 강남구 인구 가운데 가장 많이 늘어난 연령은 11세였다. 김 씨의 딸처럼 초등 고학년 때 강남으로 전학 온 학생이 많아서다. 반면 18세 이상 20대 초반의 강남구 인구는 같은 기간 오히려 줄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동아일보와 통계청이 2001∼2007년 강남구의 전·출입자 198만1315명의 이동 경로를 컴퓨터활용보도(CAR)와 지리정보시스템(GIS) 기법으로 분석한 결과 이른바 ‘강남 유학’의 실상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 초등학생은 밀물, 대학생은 썰물

2001∼2007년 강남구의 순증 인구(전입 인구에서 전출 인구를 뺀 것)는 3세 이하에서 마이너스지만 4세부터 플러스로 돌아섰고 초등 5학년 나이인 11세 때 4615명으로 정점을 이뤘다. 그러나 고교 3학년 나이인 18세부터는 마이너스로 돌아서 대학 신입생 연령인 19세에선 전출자가 전입자보다 1681명 많았다.

특히 초등학생부터 고교생 연령인 7∼18세의 순증 인구 2만5045명 가운데 74%(1만8545명)는 10∼14세였다. 강남 유학이 주로 초등학교 고학년과 중학생 때 이뤄진다는 뜻이다.

학부모들도 ‘유학생’ 자녀와 함께 움직였다. 초등 고학년, 중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의 연령대인 36∼45세는 강남구 순증 인구가 많았으나 46세 이상에서는 강남구로 들어간 인구보다 빠져나간 인구가 많았다.

이런 강남 쏠림 현상에는 학원이 밀집해 있는 지역 특성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서울의 25개 구 가운데 학원이 가장 많은 곳은 강남구(1840개)였다. 교육 환경이 좋은 편에 속하는 서울 서초구와 송파구, 대구 수성구, 대전 서구 등에서도 비슷한 형태의 인구이동이 나타났다.



○ 2003년부터 중학교 입학 위한 전학이 가장 많아

분석 결과 강남구로 유학하는 학생의 연령은 점점 낮아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2001년 강남구 전입자 중에는 15세가 가장 많았지만 2003년부터는 12세가 제일 많았다. 2000년대 초반까지는 강남구의 고등학교에 입학하려는 중학교 3학년생의 전학이 많았지만 2003년부터는 이 지역 중학교에 다니려는 초등 6학년생의 전학이 주류(主流)가 된 것이다. 이 지역 초등 고학년 학생 수도 빠르게 불어났다. 대치초교 관계자는 “2004년에 5개 학급 신입생을 받았는데 지금 6학년은 11개 학급”이라며 “늘어난 학급만큼의 학생들이 중학교 진학을 앞두고 전학을 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이한 건 강남구 안에서도 ‘교육 1번지’로 불리는 대치동에서는 중학교 3학년 때인 15세부터 ‘탈강남’ 현상이 나타난다는 점이다. 대치동에서 학원을 운영하는 김모 씨는 “이 지역에서는 중학교만 마치고 유학을 떠나는 학생이 적지 않은 데다, 대학입시를 고려해 고교 내신등급을 잘 받으려고 다른 곳으로 전학을 가는 학생도 많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 유학 온 학생들 때문에 전·월세 늘어

강남 유학은 이 지역 주민들의 주택 소유방식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통계청이 5년 단위로 실시하는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강남구의 가구주 가운데 자기 집에 거주하는 사람의 비율은 1995년 48.3%에서 2005년 37.4%로 줄었다. 반면 전·월세로 사는 사람의 비율은 49.4%에서 60.5%로 급증했다. 서울 전체의 자가(自家) 소유 비율이 1995년 39.7%에서 2005년 44.6%로 증가한 것과 정반대의 현상이다. 대치동 G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자녀 교육 때문에 다른 지역에서 이사 오는 사람들은 주로 전세나 월세로 집을 얻는다”면서 “이 지역에 거주하는 원인이 한시적이라는 게 가장 큰 이유”라고 말했다.

교육 여건이 인구 이동과 주거 등에 큰 영향을 미치는 만큼 교육정책을 짤 때 이런 점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는 게 교육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양정호 성균관대 교수(교육학)는 “강남 쏠림 현상을 풀기 위해서는 다른 지역에 자립형사립고 등을 적절히 분산 배치함으로써 학생과 학부모들이 매력을 느낄 만한 교육 여건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권혜진 기자 hjkwon@donga.com

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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