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놀아야 창의력 샘솟아” 파티같은 경연

  • 입력 2009년 5월 27일 02시 49분


■ 美 ‘국제학생창의력올림피아드’ 참관기

12개국 903개팀 나흘간 경쟁

한국 초등생 Y.N.G팀 3위

1만5000여 명의 학생이 일제히 1분이 넘도록 환호성을 질렀다. “이번에 참여하려고 준비하는 동안 고생한 만큼 소리를 지르자”는 사회자의 말에 따라. 환호가 멈추기를 기다리던 사회자가 “이제 파티를 시작하자”고 소리치자 학생들의 목소리는 더욱 커졌다. 20일 오후 7시 반, 미국 테네시 주 녹스빌 테네시대 톰슨 볼링 아레나. ‘국제 학생 창의력 올림피아드(Destination Imagination·DI) 결승전(Global Finals 2009)’의 막이 올랐다. 이번 대회에는 미국 50개 주 대표팀을 비롯해 우리나라와 중국 등 12개국 903개 팀이 참가했다.

○ 놀러온 아이들 vs 상 타러 온 학생들

19일 오전 7시 인천국제공항. 한국 대표로 출전하는 22개 팀은 커다란 상자를 여러 개 안고 속속 도착했다. 나무로 만든 구조물 등 공연에 쓰일 물품을 담은 상자였다. 김기수 군(용동중 2학년)은 “국내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 결승전에 진출했지만 세계 학생들을 상대로 경쟁하려니 떨린다”며 “준비한 것을 실수하지는 않을지, 즉흥 과제 때 어떤 문제가 나올지 몰라 걱정된다”고 말했다.

14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고 미국 애틀랜타 국제공항에 도착한 뒤 다시 3시간 반을 차로 달려 녹스빌에 도착한 뒤에도 학생들은 피로보다 걱정이 앞서는 표정이었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 주 학생들이 반갑게 인사를 건넸지만 답례는 어색하기만 했다. 카일 몬다 군(14)은 “우리는 여기 놀러 왔다고 생각하는데 한국 학생들은 시험을 치르러 온 표정 같다”며 “내가 DI에 온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외국 친구를 사귈 수 있다는 것인데 한국 친구를 사귀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튿날 화려한 개막식이 열릴 때도 한국 학생들만 유독 표정이 굳어 있었다. 이틀 후 자기 팀 과제가 끝난 뒤 본격적으로 ‘핀 트레이드’가 시작되고 나서야 한국 학생들의 긴장은 풀렸다. 핀 트레이드는 각 팀에서 준비한 배지 형태로 된 핀(Pin)을 서로 교환하는 것으로 DI 대회에서 빼놓을 수 없는 ‘놀이’다.

러스티 매카티 DI 회장은 “창의력은 결국 에너지다. 학생들은 어떻게 놀까 궁리할 때 가장 에너지가 넘친다”며 “스스로 즐겁지 않으면 창의적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 창의력은 잘 어울리는 능력

최근 각 대학이 입학사정관제를 통해 ‘창의력 있는 학생을 뽑겠다’고 밝히면서 ‘과연 창의력 있는 인재란 누구인가’에 대한 물음도 커지고 있다. 이 대회에 동행한 임미라 아주대 교수(교양학부)는 “결국 평가 도구가 가장 문제”라며 “대학과 학생, 학부모가 모두 신뢰할 수 있는 평가 기준을 알아보기 위해 대회에 오게 됐다”고 말했다. DI 심사위원은 미국에서 창의력 교육에 종사하고 있는 교사, 장학사, 대학원생 중에서 지원을 받아 뽑는다. 이 중에는 대학 입학사정관도 포함돼 있다.

도널드 트레핑거 박사는 심사위원들을 상대로 한 강연에서 “사람들은 ‘아이들이 얼마나 창의적인가’를 묻지만 ‘어떻게 하면 매 순간 아이들이 창의적으로 행동하도록 도울 것인가’ 하는 문제가 더 중요하다”며 “창의력은 남들과 잘 어울려 문제를 해결할 줄 아는 조력자가 되는 능력”이라고 밝혔다. 그는 인재를 개발자형(Developer)과 탐사가형(Explorer)으로 나눈 뒤 두 가지 장점을 두루 갖춘 인물이 바로 창조적 인재라고 정의했다. 기존 방식을 응용, 발전시켜 문제를 해결하려는 타입이 개발자형이고, 새로운 방식을 만들려는 유형이 탐사가형이다.

이 대회에 10년째 참가한 팀 매니저 레베카 루버스 씨도 “준비과정에서 모두가 저마다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있고 누구도 혼자서는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 과정을 통해 학생들이 창의력의 의미를 스스로 발견하게 된다”고 말했다. 한국팀 책임자인 황욱 (사)한국창의력교육협회장은 “주입식 교육이 대부분인 우리 교육 여건상 이런 대회에 참여하는 경험 자체가 창의력 교육의 밑거름이 된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 준비과정 자체가 창의력 기르기

한국 팀 중에서는 팀 도전과제 E ‘새로운 각도’ 초등 부문에 출전한 Y.N.G 팀이 150kg을 버텨 3위를 차지했다. 대회 참가 2년 만에 첫 번째 수상이었다. Y.N.G는 윤예진 강신웅 함슬 김민주 김하늘 양(이상 파주 검산초)과 이정행(봉일천초) 윤석인 군(동패초) 등 7명으로 이루어졌다. 팀을 지도한 김도형 검산초 교사는 “처음에 따돌림을 당한 친구도 있었던 것이 사실인데 결국 화해하고 조화를 이루어가는 과정을 아이들이 배운 것 같아서 무엇보다 기쁘다”고 말했다.

김범진(이화여대부속초) 박윤지(당서초) 오주영 임대산 황준오 류형서(이상 목원초) 하윤수 군(경인초)으로 구성된 ‘블루 드래곤’ 팀도 팀 도전과제 C ‘문학의 재구성’에서 즉흥 과제 만점을 받아 르네상스상을 탔다. 박윤지 양의 어머니 김미자 씨(36)는 “도전 과제는 교사나 학부모가 만들어줄 수 있지만 즉흥 과제는 아이들 스스로 해낸 것이라 더욱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전문계고 학생들을 이끌고 대회에 참가한 조창희 대덕전자기계고 교사는 “사실 우리 학생들이 중학교 때 학업 성적이 그렇게 뛰어나다고 할 수 없지만 세계 대회까지 진출했다”며 “누구나 창의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이 알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회가 모두 끝난 뒤 많은 학생에게 물었지만 대답은 모두 “꼭 다시 오고 싶다”는 것이었다. 이유는 예상한 대로였다. “재미있으니까.”

녹스빌=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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