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비 얼마 쓰는지도 모르고 절반 줄인다?

  • 입력 2009년 5월 14일 02시 57분


교과부 “사교육 없는 학교 年1억5000만원씩 지원”…뜯어보니 ‘포장만 화려한 정책’

학생-학부모 설문에 의존…정확한 비용 파악 어려워
“1년뒤 20%-3년뒤 50%감축”…밑도 끝도 없이 목표만 제시

교육과학기술부가 13일 ‘사교육 없는 학교’ 지원사업을 발표했다. 교과부가 구상하는 사교육 없는 학교란 해당 학교의 학생들이 3년 내에 사교육을 절반으로 줄이는 학교다. 올해 전국 초중고교의 3.6% 정도인 400곳을 우선 선정한 뒤 2010년 600곳, 2011년 800곳, 2012년에는 1000곳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올해 7월부터 운영할 400곳은 다음 달까지 선정한다.

교과부는 28일 ‘사교육 경감 종합대책’도 발표한다. 학원 심야 교습 제한, 교육업체의 방과후 학교 참여, 내신 개선안, 특목고 입시 개선안 등 다양한 정책이 제시될 예정이다.

사교육 없는 학교로 지정되면 3년 동안 매년 평균 1억5000만 원을 지원받는다. 교과부는 각 학교가 이 돈으로 정규수업을 내실화하고, 방과후 프로그램을 강화하며, 교육시설을 확충하는 등 공교육의 힘을 키울 것이라고 밝혔다. 이 방안은 새로울 게 없다. 모두 기존에 교과부가 추진하고 있는 것들로 항목마다 이미 시행방안과 예산도 따로 책정돼 있다.

핵심은 역시 ‘사교육비 반 토막 내기’다. 양성광 인재기획분석관은 이날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해당 학교 학생의 사교육비를 조사한 뒤 1년 뒤에는 20%, 2년 뒤에는 40%, 3년 뒤에는 50%를 줄이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학생과 학부모의 학교교육 만족도도 3년 내에 80% 이상이 되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서울시교육청은 3년 안에 사교육비를 80%까지 줄이겠다고 밝혔다. 마치 기업체가 원가절감 목표를 책정하는 식이다.

하지만 학생들의 사교육비를 정확히 조사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서울시교육청은 이 사업을 준비하기 위해 지난달 초 서울의 초중고교 21곳을 대상으로 사교육비를 조사했다. 학생들에게 조사 용지를 나눠주고 학부모와 함께 작성해 제출하도록 했다. 교육 당국이 사교육비를 조사할 수 있는 방법은 현실적으로 이런 설문조사밖에 없다. 노원, 서초, 송파, 양천, 영등포구의 일반계 고등학교 7곳의 월평균 사교육비 총액은 8억2600만 원. 1인당 평균 65만8000원꼴이었다.

교육정책 혼선… “학교가 학원될까 걱정”

학원이 많고 사교육비 지출 수준이 높은 지역이라고 하지만 교과부와 통계청이 발표한 2008년 서울지역 조사 결과(1인당 37만5000원)와 차이가 컸다. 초중고교생을 다 비교해도 1인당 월 사교육비가 교과부 통계보다 2배 가까이 많았다(본보 4월 29일자 A12면 참조). 부모들에게 용지를 나눠주고 사교육비를 적어내게 한 서울시교육청 조사 결과도 실제 사교육 규모를 제대로 반영했는지 의문이다.

교과부가 이런 문제점을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사교육 없는 학교’ ‘사교육 반 토막 내기’ 사업을 서둘러 들고 나온 것은 그만큼 정부가 느끼고 있는 강박증이 크다는 증거다. 강박증의 뿌리는 여러 가지다. 가장 큰 것은 이명박 정부 집권 1년 차에 사교육비가 오히려 늘어났기 때문인 듯하다. 이명박 정부의 교육 정책이 ‘공교육 만족 두 배, 사교육 절반 경감’이었는데 지난해 영어, 수학 월평균 사교육비는 전년도보다 각각 11.8%와 8.8%씩 늘어났다. 사교육비 총규모도 4.3% 증가했다. 현장에서도 체감 사교육 수위가 나날이 높아진다는 아우성이 나오고 있다. 이 대통령이 ‘교육 대통령’으로 기록돼야 한다는 목표까지 세워놓고 있는데 집권 2년 차에도 가시적인 사교육 절감 성과를 내놓지 못하면 영영 어려워진다는 불안감까지 겹쳐 조급증이 강박증으로 바뀌고 있다는 게 교육계의 진단이다.

최근 교육 정책의 혼선을 극명하게 드러낸 학원 심야교습 제한과 함께 사교육 없는 학교는 이 정부 교육 철학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공교육에 대한 원칙을 잡고 문제의 ‘원인’을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결과’로 드러난 사교육만 드잡는 대증(對症)요법에 기울고 있다. 그러다 보니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 곽승준 위원장의 ‘전쟁 구상’과 교과부의 수세적인 처방 사이에서 당정청의 엇박자까지 겹쳐 교육정책이 옆길로 새고 있는 형국이다. 서울의 한 고교 교장은 “정부의 사교육 대책을 보면 학교가 사교육 수요를 흡수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학교가 학원이 될까봐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김희균 기자 foryo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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