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WCU로 간다]<3>순천대

  • 입력 2009년 4월 28일 02시 55분


순천대는 정보기술(IT)과 나노기술(NT), 인쇄기술(PT)을 융합한 인쇄전자공학을 기반으로 세계적인 수준의 연구중심대학으로 발돋움할 계획이다. 인쇄전자공학과 곽준섭, 손기선, 조규진 교수(왼쪽부터)가 제작 중인 무선인식 전자태그(RFID)를 놓고 토의 중이다. 사진 제공 순천대
순천대는 정보기술(IT)과 나노기술(NT), 인쇄기술(PT)을 융합한 인쇄전자공학을 기반으로 세계적인 수준의 연구중심대학으로 발돋움할 계획이다. 인쇄전자공학과 곽준섭, 손기선, 조규진 교수(왼쪽부터)가 제작 중인 무선인식 전자태그(RFID)를 놓고 토의 중이다. 사진 제공 순천대
《“지금까지는 실리콘을 기반으로 전자칩을 만들어 왔지만 앞으로는 인쇄만 하면 칩이 만들어지는 시대가 열릴 것입니다.” 22일 전남 순천시에 있는 국립 순천대 산학협력단 건물 연구실에서 만난 조영제 씨(27)는 초박막트랜지스터액정표시장치(TFT-LCD)에 들어가는 핵심 부품을 인쇄전자공학을 이용해 만들고 있다며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인쇄된 전자칩은 실리콘칩과 달리 구부러지는 특성이 있다. 제조 단가도 낮아 차세대 전자산업의 총아로 떠오르고 있다. 휘어지는 전자종이, 고효율의 태양전지, 초저가의 휴대전화 등 활용 분야는 무궁무진하다. 순천대는 인쇄전자공학 기술을 기반으로 교육과학기술부의 세계 수준 연구중심대학(WCU) 육성 사업에 선정됐다. 올 1월 대학원에 ‘인쇄전자공학과’를 개설하고 해외 석학들과 협의해 교육과정 구성도 마쳤다. 정식 개강은 6월이지만 이미 해외 석학들과 교류하며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인쇄만 하면 칩이 척척… 전자산업 패러다임 바꾼다

IT-나노기술 결합 인쇄전자공학과 첫 개설

세계적 석학들과 협업 첨단 반도체기술 연구

“전자종이-태양전지 분야 등 기술혁명 이끌것”

○ 전자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꿀 기술

조규진 인쇄전자공학과 교수는 회색으로 회로도가 그려진 명함 크기의 투명 필름을 내밀었다. “이건 그림(설계도)처럼 보이지만 제품입니다. 실제로 작동하는 무선인식 전자태그(RFID)지요.”

인쇄전자공학은 전자부품을 인쇄 방식으로 만드는 것을 연구하는 분야다. 조 교수는 표명호 교수와 함께 지난해 6월 세계에서 처음으로 100% 인쇄 방식의 RFID를 개발해 시연했다. 현재 시중에 나와 있는 RFID는 실리콘을 기반으로 만들어 제조 단가가 상대적으로 비싸다. 조 교수는 “인쇄 방식의 RFID가 상용화되면 제조 단가가 크게 낮아져 지금처럼 고가의 제품뿐만 아니라 물이나 껌같이 가격이 싼 제품에도 RFID가 부착돼 실질적으로 바코드를 대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존 반도체는 모두 실리콘을 기반으로 만들기 때문에 제조 공정이 상대적으로 복잡하다. 가격이 비싼 이유다. 인쇄전자공학을 이용하면 20번 이상이 필요한 반도체 공정을 4, 5번으로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순천대 산학협력단 건물 1층에 있는 롤러 방식의 인쇄기에서 조 교수가 개발한 RFID가 ‘인쇄’되고 있다.

인쇄전자공학이 전자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꿀 기술로 평가받는 데는 전자부품을 만드는 소재가 바뀌는 것도 중요한 이유다. 실리콘이 아닌 새로운 소재(‘잉크’라고 불린다)가 필요한데 순천대는 이 분야에서도 높은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전자산업의 주요 소재를 발굴하는 연구까지 함께 진행하는 ‘거대 기술’인 셈이다.

인쇄전자공학은 한국의 주력 산업인 반도체와 평판디스플레이 산업에도 미치는 효과가 크다. 가격 경쟁이 치열한 분야여서 저가의 제조 공법을 제공할 인쇄전자공학 기술의 효용이 크기 때문이다.

전자 칩을 투명 필름이나 섬유, 종이에 입히는 방식으로 만들기 때문에 휘어지는 특성을 활용하면 더욱 다양한 신제품 개발이 가능하다. 휘어지는 디스플레이나 휴대전화, 입는 개인용 컴퓨터(PC) 개발이 가능하다. 또 발광다이오드(LED)를 이용해 벽지처럼 생긴 면(面) 조명을 개발하는 것이 가능하다.

○ 해외 석학들과의 협업은 이미 시작

순천대 대학원 인쇄전자공학과는 신입생을 뽑아 6월에 정식으로 문을 열지만 해외 석학과의 협업은 이미 진행 중이다. 순천대 WCU 사업단에는 순천대 교수 4명과 미국과 일본의 석학 4명이 참여한다.

WCU 사업단 단장은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비빅 서브라마니언 교수가 맡았다. 지난 10여 년간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전자·컴퓨터공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세계적으로 인쇄전자 분야의 연구와 교육을 선도하고 있는 인물이다. 6월부터 순천대에 상주하며 본격적으로 연구와 학생지도를 수행할 계획이지만 이에 앞서 교육과정 편성과 공동 세미나 등을 위해 이미 4차례나 한국을 다녀갔다. 다른 3명의 외국 교수들도 마찬가지. 국내 교수들도 학생들과 함께 외국을 오가고 있다.

조 교수는 “1년 동안 고심하던 새로운 반도체의 디자인 문제를 서브라마니언 교수의 도움을 받아 쉽게 해결했다”며 “서로가 각자의 분야에서 쌓아온 경험을 공유해 연구개발 속도가 탄력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해외 석학들에게 도움만 받는 것은 아니다. 순천대는 세계 최초로 인쇄 방식의 RFID를 개발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인쇄’ 기술이 세계적이다. 미국의 유명 대학 교수가 한반도의 남쪽 끝에 있는 순천까지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찾는 이유다. 그만큼 협업을 통해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실제로 서브라마니언 교수는 자신이 지도하는 박사과정 학생뿐만 아니라 동료 교수까지 추가로 파견하는 열성을 보이며 적극적으로 공동 연구에 나서고 있다.

좋은 특성을 가진 소재를 탐색하는 기술을 보유한 손기선 교수는 “우연하게도 인쇄전자공학과에 참여한 국내외 교수 9명 모두가 40대 초반의 젊은 교수들”이라며 “앞으로 관련 분야의 성장과 더불어 순천대가 세계적인 네트워크를 구축할 절호의 기회”라고 말했다.

○ 대학원과 연계할 학부 과정 개설 추진

세계적으로 인쇄전자공학 관련 전공이나 학과가 대학의 정식 프로그램으로 개설된 곳은 아직 없다는 것이 순천대의 설명이다. 인쇄전자공학은 정보기술(IT)과 나노기술(NT), 인쇄기술(PT)이 융합돼야 하는 학문이기에 학과를 구성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순천대 교수들은 새로 생기는 학과에 인쇄와 전기화학, 재료금속, 광전자재료 분야의 지식을, 외국의 석학들은 주로 나노기술을 제공한다. 새로운 소재를 활용해 전자부품을 만들려면 필름에 뿌리는 잉크를 분자 단위까지 제어하는 기술이 필요한데 여기에 나노기술이 필수적이다.

순천대는 올해 초 외국의 석학들과 함께 세계에서 처음 시도하는 학과의 교육 과정을 짰다. 여러 학문 분야의 지식이 필요하다는 판단 아래 학습 시간 확보를 위해 여름방학 없이 운영하는 1년 4학기제를 채택했다.

WCU 사업으로 대학원에 인쇄전자공학 전공이 생긴 만큼 이와 연계할 학부 과정 개설도 추진 중이다. 순천대가 대학 특성화를 위해 추진 중인 ‘광양 글로벌 캠퍼스’에 들어서는 IT융합공학과가 바로 그 학과다.

순천대는 WCU 사업을 통해 연구나 교육 목적의 학문적 성과뿐만 아니라 바로 상용화할 수 있는 원천기술 확보를 노리고 있다.

LED 전문가로 면 조명등 개발을 맡고 있는 곽준섭 교수는 “세계적으로 앞서 있는 인쇄 RFID 기술과 소재 탐색 기술을 활용해 1년 이내에 인쇄전자칩과 LED 조명 분야에서 독자적인 원천 기술을 확보할 것”이라고 말했다.

순천=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장만채 순천대 총장▼

“대학 특성화만이 살길

광양캠퍼스 소수 정예화

연구중심대학으로 육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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