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는 문화다]<상>‘자출’ 직접 해보니

  • 입력 2009년 4월 21일 02시 57분


행인-버스 사이로 “죄송합니다” 입에 달고 달린 1시간

# 첫날, 용산~세종로 5㎞
지하도에 울퉁불퉁 인도
아이고, 다리 엉덩이야…버스출근보다 20분 더 걸려

# 둘째 날, 송파~강남 12㎞
한강둔치 씽씽 달렸지만 도로에선 無보험 운행
보관소 없어 지하에 ‘주차’

“아저씨! 인도로 다니면 어떡해요.”

날카로운 목소리가 땀으로 흠뻑 젖은 등을 때렸다. 자전거를 타고 가다 한 여성과 부딪힐 뻔했다. 페달을 밟는 동안 연방 “죄송합니다”를 입에 달고 다녔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자전거 출퇴근. 어떤 불편함이 있고 문제점이 뭔지를 파악하기 위해 기자가 직접 해봤다. 이틀간 자전거를 탔다. 평소 자전거라면 자신 있었지만 회사로 가는 길은 낯설고 멀게만 느껴졌다.

○ 첫날: 차량-보행자 갑자기 출현해 내내 긴장

기자의 집은 서울 용산구 이촌1동. 한강대교 북단∼한강로∼신용산역∼삼각지역∼숙대입구역∼서울역∼숭례문∼서울광장∼종로구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까지 거리는 약 5km. 버스나 지하철 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출퇴근 시간대에 40분 정도 걸린다. 16일 오전 8시 반 자전거에 몸을 실었다. 한강로에는 자전거 전용도로가 없다. 할 수 없이 인도로 들어갔다. 출근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부딪치지 않기 위해 브레이크를 자주 밟으며 곡예운전을 했다.

도로변 가게에 들렀다 급하게 나오는 사람들과 충돌할 뻔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보행자를 피해 최대한 천천히 달렸다. 요철이 심한 인도는 엉덩이를 괴롭혔다. 도로보다 높은 보도블록에 올라갈 때마다 자전거가 덜컥거려 이가 부딪치는 소리까지 들었다. 골목길에서 나오는 차량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삼각지 부근의 미군부대 주변 도로에 접어들자 자전거 표지가 있는 전용도로가 나타났다. 어찌나 반갑던지. 하지만 신나는 질주도 잠시였다. 100m 정도 지나자 인도와 구분이 없어져 보행자와 다시 섞였다. 숙대입구 전철역 사거리에서는 난감한 일이 벌어졌다. 횡단보도가 보이지 않아 15kg에 가까운 자전거를 낑낑 메고 지하도로 내려갔다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세종로부터는 자동차의 진행 방향에 맞춰 차도를 이용했다. 버스와 택시 때문에 자주 멈춰 섰다. 뒤에서 따라오던 차량의 ‘빵빵’대는 경적소리에 깜짝 놀랄 때가 많았다. 1시간 정도 걸려 오전 9시 반경 회사에 도착했을 땐 긴장이 풀리며 피로가 몰려왔다. 주변에 자전거 보관소가 없어 회사 지하주차장에 자전거를 세웠다. 흠뻑 젖은 몸으로 사무실 책상 앞에 앉았다. 1시간이 10시간처럼 길게 느껴졌다. 휴∼.



○ 둘째 날: 안전하고 빠른 한강 자전거 전용도로

다음 날은 2년째 자전거로 출퇴근하고 있는 남우종 씨(34·회사원)의 출근길에 동행했다. 남 씨의 집은 서울 송파구 방이2동 올림픽공원 부근. 방이2동 주민센터∼몽촌토성역∼잠실교회∼성내역∼장미맨션∼한강둔치∼탄천∼청담2교∼청담동 삼익아파트∼경기고 사거리∼리베라호텔∼청담동 엠넷미디어 건물까지 거리는 약 12km. 남 씨는 “자전거로 가든 대중교통이나 자가용을 이용하든 시간은 별반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송파구는 전용도로가 비교적 잘 갖춰져 있기 때문에 어린이와 노인들도 자전거를 이용하고 있었다. 오전 7시경 출발해 한강 둔치에는 5분 만에 도착했다. 자전거 마니아들이 ‘고속도로’라고 부르는 한강 둔치에는 이미 전용도로를 이용해 자전거로 출근하는 사람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상하행이 철저하게 구분된 전용도로를 따라 가는 길은 상쾌했다. 보행자나 차량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

탄천을 지나 한강을 벗어나자 전용도로가 끊겼다. 차로에 진입한 남 씨는 경력자답게 수신호로 자신의 진행방향을 차량에 알렸다. 남 씨는 “안전한 인도로 가고 싶긴 하지만 출근 인파 때문에 힘들다”고 말했다. 어느새 남 씨의 직장에 도착해 시계를 보니 오전 7시 40분. 남 씨의 빌딩 주변에도 보관소가 없어 지하주차장에 자전거를 세워뒀다.

○ 미비한 관련 법규와 전시행정용 전용도로

잠깐이나마 겪어본 자전거 출퇴근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의 불만이 이해가 됐다. 우선 자전거 전용도로가 제대로 설치돼 있지 않고 자전거 관련 법규가 미비한 점이 지적된다. 도로교통법 2조 16항에 따르면 자전거는 자동차로 취급된다. 인도에서 타다 보행자와 사고가 나면 자전거는 자동차로 분류돼 처벌을 받는다. 도로에서도 사고가 나면 ‘차량 대 차량 사고’로 인정된다. 보험 처리도 안 된다.

도로교통공단 채범석 책임연구원은 “관련 법규 보완과 동선에 맞는 전용도로망 신설이 시급하다”며 “교통 약자인 자전거 운전자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과 자전거 보험 신설이 필수”라고 말했다.

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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