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me TOWN]엄마가 나서서 아이의 게으름을 고쳐라 (상)

  • 입력 2009년 3월 30일 02시 58분


게으르면 못간다, 특목고도 민사고도

게으른 아이는 민사고에 갈 수 없다. 특목고에도 못 간다. 이것만큼은 불변의 진리다.

많은 어머니가 “우리 아이는 일요일에는 하루 종일 빈둥거려요. 씻지도 않고 TV만 보고 컴퓨터 게임만 해요”라고 하소연을 한다. 우리는 그때마다 정색을 하며 말한다.

“따끔하게 혼내셔야 해요. 필요하다면 회초리를 드세요.”

우리의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보자.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린 시절에는 높은 꿈을 품었을 것이다. 대통령, 의사, 변호사, 과학자, 예술가…. 그 시절 우리의 꿈은 아무튼 성공한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꿈의 성공 여부는 불과 20년이면 판가름이 난다. 일부는 꿈에 가까이 가 있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그 차이는 무엇일까? 꿈에 가까이 간 사람들은 노력했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노력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노력이라는 추상적인 단어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자기 관리, 실천, 시간 관리라고 할 수 있다. 노력의 반대말은 게으름, 불성실이다.

영재에 대해 말할 때 많은 사람이 ‘머리가 좋은 아이’로만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영재성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고 생각한다. 천부적인 두뇌도 영재지만, 성실함·지구력·참을성·승부욕 등도 영재의 자질 중 하나다. 아무리 머리가 좋아도 성실하지 않거나 승부욕이 없는 아이는 자신의 게으름과 안일함에 빠져 영재성을 잃어버린다.

‘이방인’을 쓴 작가 알베르 카뮈는 일찍이 게으름에 대해 일침을 가했다.

“성공하지 못한 사람의 공통점은 게으름이다. 게으름은 인간을 패배하게 하는 주범이다. 성공하려거든 먼저 게으름을 극복하라.”

게으름의 문제는 범인류적으로 나타나서 뛰어난 학생들에게도 어김없이 찾아오고야 만다. 실제로 초등학교 시절 뛰어난 두뇌를 자랑하던 아이가 중학교에 들어가서 하염없이 추락하는 모습을 많이 봤다. 그런 아이는 선생님들에게 꾸지람을 듣고서야 겨우 숙제를 하고, 부모 몰래 학원을 빠지다가 결국엔 그만두거나 퇴원 조치를 당한다.

어느 날 한 어머니가 제발 아이를 받아달라고 사정을 해왔다. 그러나 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

“아이가 너무 불성실해서 다른 학생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주고 있어요. 학원 생활을 성실하게 해낼 의지가 없는 아이는 받아 줄 수가 없습니다.”

한쪽에는 잠자는 시간과 밥 먹는 시간을 줄여 가면서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이 있는 반면, 다른 한쪽에는 아무것도 하기 싫은 얼굴로 무기력하게 앉아 있는 아이들이 있다. 이 차이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단순히 천성이라고 치부하는 것은 너무 무책임하다. 사실 모든 인간의 본질은 성실보다는 게으름에 가깝다.

내 아이에게서 게으름을 발견했을 때, 나는 어머니로서 어떤 행동을 취했을까? 호되게 꾸짖어 움직이게 만들기보다 그저 뒤치다꺼리를 해준 것은 아닐까? 그저 입으로 잔소리를 했을 뿐, 아이의 생활 습관을 근본적으로 바꿀 결단을 내리지 않은 것은 아닐까?

아이가 무의미한 컴퓨터 게임을 2시간째 반복하고 있을 경우, 엄마가 할 수 있는 것은 “게임을 그만 해”라는 잔소리만이 아니다. 다가가서 컴퓨터의 전원을 뽑아버릴 수도 있다. 컴퓨터를 안방으로 옮겨 버리거나, 아예 문 밖으로 던져 버릴 수도 있다. 말로써 아이를 다스리기 힘들 때라면 이런 거친 방법도 써야 한다. 이것은 무턱대고 다그치거나 잔소리를 하는 것과는 구별되는 일이다.

나를 비롯한 선생님들은 아이들과 친구처럼 가까운 사이지만 게으름, 불성실함에 있어서는 용서가 없다. 회초리가 동원되고 눈물이 쏙 빠지는 꾸지람도 한다. 아직까지 자기 기준이 분명하게 서지 않은 아이들은 어른들의 다그침 없이는 좀처럼 게으름을 버리기 힘들다. 숙제를 산더미처럼 쌓아 두고도 놀러 가자는 친구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는 것이 아이들이다.

박교선 영재사관학원 입시총괄원장

※ ‘누가 뭐래도 우리는 민사고 특목고 간다’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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