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학생 기초과학 실력 부족… 방치땐 기업도 한계직면”

  • 입력 2009년 3월 18일 03시 00분


16일 이화여대에서의 첫 강의를 마치고 자신의 연구실에서 기초과학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는 조지 스무트 교수. 그는 알코올램프 등 각종 실험도구 무늬가 있는 넥타이를 착용해 눈길을 끌었다. 사진 제공 이화여대
16일 이화여대에서의 첫 강의를 마치고 자신의 연구실에서 기초과학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는 조지 스무트 교수. 그는 알코올램프 등 각종 실험도구 무늬가 있는 넥타이를 착용해 눈길을 끌었다. 사진 제공 이화여대
16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포스코관에서 ‘2006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조지 스무트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물리학과 교수가 첫 강의를 하고 있다. 사진 제공 이화여대
16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포스코관에서 ‘2006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조지 스무트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물리학과 교수가 첫 강의를 하고 있다. 사진 제공 이화여대
이대서 첫 강의 노벨물리학상 수상 스무트 교수 ‘쓴소리’

《16일 오후 1시. 서울 서대문구 대현동 이화여대 내 포스코관 464호. 70여 명의 학생이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우주의 탄생’에 관한 영어 강의를 듣고 있었다. 이날 강의를 맡은 사람은 2006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조지 스무트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물리학과 교수(64). 그의 ‘우주론’ 강의는 한국에서의 첫 수업이었다. 스무트 교수는 교육과학기술부가 시행 중인 세계 수준의 연구중심대학 육성사업(WCU) 프로그램으로 이화여대 석좌교수로 임용돼 이달 1일 입국했다. 스무트 교수는 ‘빅뱅 우주론’의 한계를 극복해 물리학 연구에 새 장을 연 과학자로 평가받는다. 그는 위성을 통해 우주 전체에 퍼져 있는 빛에 미세한 온도 차가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확인했고, 이를 통해 우주 생성의 원리를 밝힌 이론을 제시한 공로로 노벨상을 받았다.》

“시험때만 써먹는 지식은 살아있는 지식 못돼

수학실력 뛰어나지만 창의력은 美에 뒤져

美서는 기초과학 전공해도 99% 이상 취업

기업은 당장 써먹을 인재보다 미래를 봐야”

스무트 교수는 2009년부터 5년간 매년 한 학기씩 이화여대에서 강의한다. 그는 안창림 이화여대 물리학과 교수 등 국내 연구진과 함께 ‘극한 우주기술을 이용한 우주창조 원리의 규명’을 주제로 공동 프로젝트를 수행할 계획이다. 그는 이화여대 초대 초기우주과학기술연구소장을 맡았다.

스무트 교수는 자신의 연구실에서 진행된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과학 교육의 문제점, 기초과학의 중요성 등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정열적으로 설명했다.

○ “한국 학생, 열정적이지만 기초과학 부족”

첫 수업을 마친 그는 한국 학생들에 대해 “열정이 강하고 수학을 잘한다”고 평했다. 스무트 교수의 넥타이에는 한국 학생들의 과학에 대한 흥미를 유발하려는 듯 시험관, 알코올램프, 비커 등 각종 실험도구 문양이 새겨져 있어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그는 금세 한국 학생들의 기초과학 수준에 우려를 표했다.

“고교 때 물리 과목을 공부한 학생이 적다는 얘길 듣고 놀랐어요. 미국 학생들은 과학에 대한 관심이 많아요. 한국에 오기 전까지는 한국 학생들의 기초과학 실력이 미국 학생보다 높다고 생각했는데 와서 보니 그렇지 않더군요. 창의력 등에서 미국에 뒤지는 것 같습니다.”

그는 한국 학생들의 기초과학 실력 부족은 단순히 학교 성적의 문제가 아니라 응용과학, 나아가 사회 발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사회가 기초과학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면 결국 휴대전화 등 산업적으로 유용한 응용과학을 향상시킬 수 있는 인재들이 나올 수 없습니다. 기초과학이 안 돼 있는데 그 다음 단계인 응용과학, 나아가 산업이 어떻게 발전하겠습니까?”

○ “기초과학 외면하면 한국 기업 한계”

스무트 교수는 한국 기업 역시 기초과학 인재를 뽑아 육성하지 않으면 장기적으로 발전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기업이 물리, 화학 등 기초과학 관련 학과 출신들을 당장 써먹을 데가 없다고 채용하지 않으면 그 후유증은 결국 기업이 받는다는 것.

“미국에선 기초과학을 전공해도 99% 이상이 고용됩니다. 실리콘밸리에 있는 유수 회사들은 응용과학자뿐 아니라 기초과학 전공자도 많이 뽑습니다. 기초과학 전공자의 비판적 사고와 문제해결 능력을 인정하는 겁니다. 한국의 기업들은 지금의 경제 사이클을 보면 깨닫게 될 것입니다. 미국의 현재 상황을 보시죠. 혁신 없이 10년 전 상품을 팔아먹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실패한 기업들이 보여줍니다.”

그는 미국 캘리포니아 지역 과학교사들이 수업의 질을 높이기 위해 재교육 과정을 밟을 경우 미국 기업들이 참석 교사에게 100달러씩 기부하는 예를 들기도 했다.

“기술은 2년 주기로 바뀌는데 현재 당장 써먹을 수 있는 인재만 뽑는다면 기업은 곧 한계에 부닥치게 될 겁니다. 한국 기업이 혁신하려면 창조적인 생각을 하는 기초과학자가 필요합니다.” .

○ “과학은 창의력의 토대”

스무트 교수는 기초과학을 강조하는 이유에 대해 “기초과학을 통해 학생들의 논리력이 향상되고 비판적 사고가 형성되면서 창의력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과학 공부가 과학에 머물지 않고 인문학적 사회과학적 사고에 도움을 준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천체물리학은 우주만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논리적 사고를 싹트게 합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도 배우게 됩니다. 최근 이슈인 환경 문제, 에너지 문제의 경우도 물리학을 알면 더 치밀하게 에너지를 관리하고 대처하는 방법을 알게 됩니다. 경제도 같습니다. 투자를 할 때 수학을 잘 알면 좋은 투자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기초과학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그에게 “한국 학생들에게 과학은 지루하고 어려운 기피 대상”이라고 말하자 스무트 교수는 과학 교육이 시험용이 아닌 ‘과학과 학생의 관계’를 만들어 주는 방법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시험 볼 때만 써먹을 수 있는 지식은 살아있는 지식이 아닙니다. 과학수업에서 얻은 지식이 나의 일상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합니다. 한국 학생들이 흥미를 가질 만한 이슈를 기초과학 이론과 연결시켜 설명하면 학생들은 과학에 흥미를 갖게 될 겁니다. 이처럼 재미를 통해 더 어려운 주제를 다루는 식으로 발전시켜야 합니다.”

스무트 교수는 “국내 중고교 수학 과학 분야의 교육자료를 개발하고 중고교 과학교사를 과학전문가로 키우는 ‘글로벌 교사 아카데미(Global Teacher's Academy)’ 지부를 이화여대에 세울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 조지 스무트 교수는 ▼

우주의 기원 규명하는 빅뱅실험으로 2006년 노벨물리학상 공동수상

▶전공=천체물리 및 우주론 ▶1966년 매사추세츠공대(MIT) 학사 ▶1970년 MIT 박사 ▶1971년∼현재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천체과학연구소 연구원 ▶1994년∼현재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물리학과 교수 ▶2006년 노벨물리학상 수상 ▶2009년 이화여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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