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5학년’ 다시 쏟아진다

  • 입력 2009년 2월 4일 03시 01분


취업 못해 졸업 미루는 대학생 급증… ‘외환위기때 눈물’ 되풀이

1과목 신청하고 6년째 다니는 경우도 속출

《졸업식을 20일가량 앞둔 연세대 영문과 A(24·여) 씨. 취업에 실패한 그는 졸업을 미루고 ‘국제 언론의 이해’라는 3학점짜리 과목을 수강 신청했다. 졸업학점(126학점)을 모두 채웠지만 재학생 신분을 유지하기 위해 ‘졸업연기제’를 이용한 것. 졸업을 연기한 대가로 학교에 낸 등록금은 60만 원이다.

A 씨는 평균 학점 3.75, 토익 945점, 미국과 독일 대학 연수에 인턴 경력까지 있지만 입사지원서를 낸 15개 기업에서 모두 고배를 마셨다.

A 씨는 “해외연수를 포함해 5년간 쉬지 않고 취업 준비를 했는데 6년차 대학생이 될 줄은 생각조차 못했다”며 “한 학기 더 다닌다고 취직이 될지 모르겠다”면서 한숨지었다.》

졸업에 필요한 학점을 모두 이수하고도 대학을 계속 다니는 ‘신(新) NG(No Graduation)족’이 크게 늘고 있다. 10여 년 전 외환위기로 고용시장이 얼어붙자 당시 대학가에는 해외연수를 떠나거나 각종 자격증을 따기 위해 휴학하는 관행이 확산되면서 이른바 ‘5년차 대학생’이 쏟아졌다. 이제는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른 극심한 경기침체로 ‘6년차 대학생’까지 생겨나는 것이다.

동아일보가 전국의 주요 대학 30여 곳을 조사한 결과 추가학점 신청으로 졸업을 미룰 수 있는 ‘졸업연기제’를 운영하는 학교는 연세대 등 10여 곳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올해 졸업연기신청자 집계가 끝난 건국대 등 5개 대학의 졸업연기자 수는 1416명으로 지난해 790명에 비해 79% 증가했다. 졸업생 대비 졸업연기자의 비율도 지난해 5.91%에서 올해 10.79%로 두 배 가까이 상승했다.

건국대는 지난해 말과 올해 초 졸업 연기를 신청한 학생 수가 277명으로 지난해의 146명에 비해 89.3% 증가했다. 연세대는 이미 800명을 넘어섰다.

지방대의 상황도 심각하다. 부경대는 신청자가 242명에서 655명으로 2.7배 늘었고, 아주대는 108명에서 151명으로 39.8% 증가했다.

졸업연기제는 휴학을 하거나 필수 과목을 일부러 수강하지 않는 등 편법으로 졸업을 기피하는 NG족이 늘어나자 각 대학이 궁여지책으로 도입한 제도. 이 제도를 이용하면 학생들은 최소 등록금의 6분의 1(50만∼60만 원)만 내고 재학생 신분을 유지할 수 있다. 1학점짜리 한 과목을 신청하는 학생도 상당수다.

졸업을 미루는 대학생의 증가로 4학년 재적 인원과 26세 이상 대학생 비율이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 교육통계연보에 따르면 4학년 학생 비율은 1997년 18.8%에서 매년 상승해 2008년 4월 현재 23.1%로 높아졌다. 26세 이상 학생 비율은 같은 기간 5.2%에서 6.7%로 상승했다. 대학생 15명 가운데 1명은 사회 진출이 또래보다 현격하게 늦은 ‘올드 보이’인 셈이다.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