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감없어 허탕… 실업급여 대상조차 안돼 더 허탈”

  • 입력 2009년 1월 16일 02시 58분


새벽 인력시장 “오늘도 공치나…”건설 불황이 깊어지면서 건설 현장에서 일용직으로 일하는 근로자들이 일자리를 구하기가 훨씬 어려워졌다. 특히 이렇다 할 기술이 없는 중장년층은 새벽 인력시장에서 아예 소외되고 있다. 15일 오전 5시 서울 지하철 7호선 남구로역 앞의 새벽 인력시장에서 중장년층 일용직 근로자들이 일거리를 기다리고 있다. 이훈구  기자
새벽 인력시장 “오늘도 공치나…”
건설 불황이 깊어지면서 건설 현장에서 일용직으로 일하는 근로자들이 일자리를 구하기가 훨씬 어려워졌다. 특히 이렇다 할 기술이 없는 중장년층은 새벽 인력시장에서 아예 소외되고 있다. 15일 오전 5시 서울 지하철 7호선 남구로역 앞의 새벽 인력시장에서 중장년층 일용직 근로자들이 일거리를 기다리고 있다. 이훈구 기자
■ 고용보험 사각지대에 선 사람들

일용직- 기준일수 못채워 10명중 7, 8명은 지원 못받아

자영업- “실업급여 없어 전단지 알바-우유배달로 생계”

실직자-“갑자기 자르더니 고용보험료도 떼먹어” 분통

이선이(40) 상담사의 입에선 단내가 났고 목소리는 쇳소리가 섞여 나왔다. 끊임없이 밀려드는 실업급여 신청자들을 상대로 하루 종일 쉬지 않고 상담을 했기 때문이다.

8일 230여 명의 실업급여 신청자가 서울 남부종합고용지원센터에 몰렸다. 그는 “이곳을 찾는 사람은 누구나 안타까운 사연이 있지만 그중 가장 마음에 걸리는 것은 일용직 노동자들”이라고 했다.

건설경기 침체로 현장에서 일감을 구하지 못한 일용직 노동자들은 실업급여라도 받으려고 이곳에 온다. 하지만 이들 중 70∼80%는 빈손으로 돌아가야 한다. 기준일수(최근 18개월간 180일) 이상 일을 해야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는데 업주들이 고용보험료 부담을 꺼려 근로일수를 일부러 적게 신고했기 때문이다.

본보 취재팀은 고용보험에 가입돼 있어도 고용주의 외면이나 제도의 허점 때문에 실업급여조차 받지 못하는 사례가 매우 많다는 사실을 전국의 고용지원센터 창구에서 거듭 확인했다.

건강 문제로 부득이하게 일손을 놔야 하는 근로자나 폐업 위기에 몰린 영세 자영업자들도 역시 사회안전망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 고용보험료 내고도 혜택 못받아

12일 울산종합고용지원센터에서 만난 김진홍(46) 씨는 취재팀에 자신의 억울한 사연을 들어달라고 하소연했다. 그는 지난해 말 이 지역의 한 중소기업에서 해고된 뒤 실업급여를 신청하러 이곳을 찾았다.

김 씨에 따르면 당시 회사의 급여명세서에는 분명 ‘고용보험료’ 항목이 있었고 이에 따라 돈도 일정액 떼어 갔는데 정작 센터에서는 자신이 실업급여 대상이 아니라며 실업급여 지급을 거절했다. 고용주가 당국에 고용보험 신고를 아예 안 했다는 사실을 이날 비로소 알게 됐다.

그는 “해고할 때도 미리 통보해주지 않고 갑자기 나가라고 하더니 고용보험료까지 떼먹었다”며 “검찰은 이런 악덕 고용주를 안 잡아가고 뭐하는지 모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요즘 같은 불황기에 상대적으로 ‘약자’일 수밖에 없는 비정규직 근로자들은 이처럼 업주의 횡포로 실업급여조차 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특히 나이가 많고 각종 정보에 차단된 근로자들은 이런 제도가 있는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 회사 측이 애써 챙겨주지 않으면 당연한 권리마저 박탈당하기 십상이다.

잦은 이직과 건강 악화 등 불가피한 사정 때문에 급여 자격에 필요한 기준일수를 못 채우는 사례도 많다.

취재팀이 식당 주방에서 일하던 김서곤(56) 씨의 이야기를 접한 것은 서울의 한 고용지원센터에서였다. 그는 2007년 4월 위암수술을 받은 후 1년 동안은 아파서 일을 하지 못했다.

의사는 최소 몇 년은 푹 쉬면서 건강관리를 하라고 했지만 ‘쉴 여유’가 없었다. 그 뒤 몇 달 동안 매일같이 지원센터로 일자리를 알아보러 나왔지만 김 씨는 번번이 허탕을 치고 있다.

모아놓은 돈도, 일자리도 없는 김 씨는 실업급여조차 받지 못한다. 최근 1년 반 동안 일을 한 적이 있어야 한다는 자격요건 때문. 기초생활수급자인 그는 요즘 한 달에 38만 원으로 살고 있다.

○ 폐업 몰린 자영업자도 위기

경기침체로 폐업 위기에 몰린 영세 자영업자들도 사정이 딱하기는 마찬가지다. 자영업자들은 실업급여 수급대상이 아니라서 가게를 접고 나면 새로운 일자리를 구할 때까지 수입이 끊긴다.

이런 사정은 음식점이나 옷가게 주인만의 얘기가 아니다. 골프장 캐디, 학습지교사, 레미콘차량 운전사, 보험설계사 등 ‘특수고용 근로자’도 자영업자에 해당돼 산재보험을 제외한 3대 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최근 일감이 줄어들자 실업급여를 알아보러 경남 창원종합고용지원센터를 찾은 배관공 박동덕(51) 씨는 수급 대상이 아니라는 말을 듣고 허탈하게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박 씨는 “요즘엔 일 나가는 날이 한 달에 닷새밖에 안 되지만 우리 같은 자영업자는 고용보험에 가입이 안 돼 있어 실업급여를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오늘 처음 알았다”고 말했다. ‘본업’에서 돈을 거의 못 버는 그의 가족은 박 씨가 장당 30원씩 받으면서 하는 전단 배포 아르바이트와 부인의 우유 배달로 근근이 생계를 꾸리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 방하남 선임연구위원은 “일용직 근로자나 600만여 명에 이르는 자영업자는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에서조차 벗어나 있어 대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 기사의 취재에는 본보 대학생 인턴기자 정현태(26·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 4년) 최정수(25·고려대 식품자원경제학과 4년) 홍연경(22·연세대 신문방송학과 4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이서현 기자 baltika7@donga.com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 고용지원센터에 가면

3월부터 年 200만원 직업훈련비 지원

노동부가 운영하는 전국 82곳의 고용지원센터는 실업급여 지급뿐 아니라 직장 알선과 취업 교육 등을 책임지는 종합 취업 정보기관이다.

실업급여는 고용보험 가입 대상자 중 불가피한 이유로 퇴직했거나 비자발적으로 이직하는 경우 받을 수 있다. 최근 1년 반 동안 최소 6개월 이상 임금 근로자로 일했어야 한다. 기간은 90∼240일로 월 86만4000∼120만 원을 받을 수 있다. 직장 알선과 취업 교육은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더라도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취업 교육은 총 16개의 과정으로 이뤄진다. 고용지원센터는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작성 요령, 면접 기술 등을 알려주는 성취 프로그램 △구직자의 자신감 회복과 원만한 인간관계 형성을 돕는 취업 희망 프로그램 △진로를 정하지 못한 15∼29세의 청년층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청년층 직업지도 프로그램 △55세 이상 노년층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성실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고 있다.

구직자에게 능력에 맞는 적절한 업체를 소개해 주는 역할도 고용지원센터의 몫이다.

올 3월부터는 ‘직업능력개발 계좌’도 도입된다. 고용보험 가입 여부와 상관없이 고용지원센터 상담원과의 상담을 통해 직업 훈련이 필요하다고 인정된 실직자에게 연간 200만 원의 교육지원비를 제공하는 제도다.

정세진 기자 mint4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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