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심평원, 의원후원금 10만원씩 할당

  • 입력 2009년 1월 5일 02시 57분


작년 12월 임직원에게 공문… “지지 않는 의원에게도 후원금 보냈다”

대부분 복지委의원 상대…연말정산때 환급 받아

심평원 “자율적으로 권유한 정도… 로비 아니다”

보건복지가족부 산하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이 임직원을 동원해 국회 관련 상임위원회 소속 의원들에게 정치후원금을 납부하는 방식으로 ‘후원금 로비’에 나섰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4일 동아일보가 입수한 관련 문건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심평원은 직원들에게 정치후원금을 ‘자율 납부’해 달라며 직원 1인당 연 10만 원씩을 의원들에게 후원하라고 독려하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이 문건에는 특정 부서 직원 20여 명의 이름과 후원할 국회의원의 이름을 1 대 1로 지정해 놓은 표와 후원회 계좌번호, 납부요령 등이 적혀 있다.

문건에는 연말정산용 영수증을 일괄적으로 발급받기 위해 온라인 입금 명세서를 제출하라는 지시도 포함돼 있다.

직원들에게 10만 원 이내에서 정치 후원금을 내라고 하는 것은 ‘조세특례제한법’ 규정에 따라 연 10만 원 이내의 정치후원금은 연말 세액공제를 통해 전액 환급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심평원의 한 직원은 “자율납부라지만 후원을 거부했을 때 받을지도 모르는 불이익이 우려돼 지지하지도 않는 의원의 계좌로 후원금 10만 원을 보냈다”며 “연말정산 때 국고에서 모두 환급받기 때문에 개인적인 손해는 없지만 결국 국민 세금을 정치 후원금으로 사용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후원금을 받은 의원들은 대부분 심평원의 업무를 감독하는 국회 복지위 소속이란 사실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피감기관 직원들의 후원금을 받는 의원들이 해당 기관을 제대로 감시 감독할 수 있겠느냐는 것.

실제로 이번 문건에는 온라인으로 입금할 때 후원자 이름 옆에 소속기관인 ‘심평원’ 이름도 기입하라는 내용이 지침에 포함돼 있다.

임직원을 동원한 산하기관의 정치후원금 ‘우회 납부’는 일종의 ‘보험 들기’라는 지적이다. 특히 새 정부 출범 후 통폐합이나 조직축소설이 흘러나오는 산하기관이나 공기업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에 대해 심평원은 “정치 후원금을 내면 전액 소득 공제 혜택을 받으니까 자율적으로 내도록 기획예산팀 차원에서 권유한 정도”라며 “원하는 정치인에 후원하도록 하고 원하는 정치인이 없는 경우 복지위 의원으로 하도록 한 것이지 복지위에 대한 로비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10월에도 대한주택공사와의 통폐합 논의가 나오고 있는 한국토지공사가 국회 국토해양위원회 소속 의원들에게 같은 방식으로 후원금 로비에 나섰다는 사실이 밝혀진 바 있다. 심평원도 업무 중복 등의 이유로 국민건강보험공단과의 통폐합설이 끊이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해당 상임위 의원들은 이 같은 지적에 대해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다.

복지위의 한 의원은 “나중에 환급받을 수 있는 돈을 이왕이면 아는 의원실에 내려는 것 아니겠느냐”며 “우리 상임위에만 국한된 문제라고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종철(법학) 연세대 교수는 “후원금 납부를 상부에서 지시하는 것은 정치활동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고, 이해관계에 있는 해당기관은 정치후원금을 내지 못하게 한 정치자금법의 기본정신에도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심지연(정치외교학) 경남대 교수는 “개인적인 정치 후원금도 산하기관이나 공기업 소속 직원이 내는 부분을 파악해 상한선을 만드는 것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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