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단 창고화재, 불법창고 양산한 규제 탓?

  • 입력 2008년 12월 9일 03시 00분


물류량은 넘치는데 그린벨트 묶여 창고 신축 못해

자금난 시달리는 중소업체들 축사 불법 개조해 사용

“난개발 아닌 수준서 물류단지 개발할 필요” 분석도

8일 경기 하남시 풍산동 일대 그린벨트 구역.

축사나 화훼시설로 보이는 비닐하우스 수백 동이 검은 천을 둘러쓴 채 쭉 늘어서 있었다. 하지만 천을 걷어내 보니 안에는 옷, 가구, 포장물 등 공산품이 잔뜩 쌓여 있었다.

이곳에는 그린벨트 규제로 농업용 창고만 세울 수 있어 이 비닐하우스들은 모두 불법 건축물이다. 게다가 비닐과 목재로 만들어진 하우스 외부에는 전기선이 지나가 화재 위험이 높아 보였다.

그러나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모두 이에 대해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수도권의 높은 땅값과 그린벨트 규제로 물류시설이 턱없이 부족한 현실을 감안해서다.

이는 최근 경기 이천시에서 잇따라 발생한 대형 물류창고 화재의 한 원인이 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 물류시설 부족으로 공사 파행

이천경찰서는 최근 7명이 사망한 서이천물류센터 화재 당시 복도와 사무실에 설치된 비상벨 31개와 스프링클러 185개가 모두 작동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11개월 전 40명이 숨진 이천시 코리아2000 냉동창고 참사 때에도 시공업체가 방화문과 스프링클러, 비상벨의 자동 작동장치를 일부러 꺼놓은 것으로 드러났다. 공사 도중 안전장치가 오작동하면 작업속도가 늦어질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업계에서는 물류시설에 대한 수요가 크게 늘면서 창고 개발업체가 무리한 공사를 강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경제발전으로 물동량은 급증했지만, 정부의 융통성 없는 그린벨트 규제로 물류시설을 충분히 짓지 못한 것.

업체 관계자는 “대기업들이 수도권 일대 물류시설을 확보하려고 혈안이 돼 있다”며 “불법 공사로 내는 벌금에 비해 공기를 단축해 얻는 수익이 더 커 공사를 서둘러 진행한다”고 귀띔했다.

○ 그린벨트 규제 재검토 필요

물류창고 문제에서 대기업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자금력이 딸리는 중소 업체들은 마땅히 갈 곳이 없어 그린벨트 내 축사를 창고로 불법 개조해 사용하는 실정이다.

하남시 초일동에서 만난 가구업체 사장은 “이천은 임대료가 비싼 데다 대형 물류창고 위주여서 330m2(약 100평)의 소규모 공간조차 확보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며 “어쩔 수 없이 이곳의 불법창고를 쓰고 있다”고 털어놨다. 실제로 중소기업중앙회가 하남시와 남양주시 지역 중소기업 107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88.8%의 업체가 공장이나 물류창고를 그린벨트 구역에서 운영 중이며 △88.2%는 ‘이행강제금을 내더라도 불법시설을 계속 이용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중소기업들의 불법 물류창고 지대는 하남시, 시흥시, 광명시, 남양주시 등으로 계속 확대되고 있다. 하남시에 따르면 그린벨트 내 축사 4120개 가운데 약 95%인 3699개가 불법 물류창고로 이용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그린벨트 규제를 재검토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인하대 물류전문대학원 하헌구 교수는 “수도권의 대형 물류시설이 매우 부족하다”며 “접근성이 높은 고속도로 인근 그린벨트는 난개발이 되지 않는 수준에서 적절히 풀어서 물류단지로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 영상취재 : 정영준 동아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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