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한국 최초’ 키운 新여성 요람 경기여고

  • 입력 2008년 10월 15일 02시 57분


해외에서 귀국한 동문들 경기여고 개교 10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해외에서 귀국한 동문들이 14일 서울 종로구 안국동 윤보선 전 대통령 고택을 방문했다. 경기여고는 15일 개교 100주년을 맞는다. 사진 제공 경기여고
해외에서 귀국한 동문들 경기여고 개교 10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해외에서 귀국한 동문들이 14일 서울 종로구 안국동 윤보선 전 대통령 고택을 방문했다. 경기여고는 15일 개교 100주년을 맞는다. 사진 제공 경기여고
■ 경기여고 오늘 100주년 기념식

최초 女개업의… 최초 女기자… 최초 女대법관

1910∼20년대 해외진출로 국제화 앞장

전체 女장관의 21%-女의원의 13% 배출

‘대한민국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은 여성을 찾으려면 경기여고 동문을 먼저 살피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경기여고가 배출한 인재 중에 출중하고 진취적인 명사들이 많다는 이야기다.

전통의 명문 경기여고가 15일로 개교 100주년을 맞았다. 1908년 순종 황제의 칙령에 따라 최초의 여자공교육기관인 한성고등여학교로 출발한 뒤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 경기공립고등여학교, 경기공립여자중학교 등으로 교명이 바뀌다 1952년부터 지금의 이름을 이어오고 있다. 학교 위치도 서울 종로구 도렴동에서 시작해 재동, 정동으로 옮겨 다니다 1988년 서울 강남구 개포동에 자리잡았다.

▽‘최초 기록’ 산실=1911년 제1회 졸업생 31명이 배출된 이래 올해까지 3만7000여 명의 인재들이 경기여고를 거쳐 갔다.

개교 초기에 유독 명문가와 부유한 집안의 자제들이 많이 입학했던 연유로 경기여고를 현모양처 양성 기관으로 만들고자 하는 이들도 많았다. 한성고등여학교의 설립 목표 역시 ‘여성에게 필요한’ 교육이었다.

하지만 초창기 경기여고 졸업생들은 여성이라는 사회적 억압을 넘어 남다른 도전 정신을 발휘했다.

1회 졸업생 대부분이 ‘안방마님’을 거부하고 사회로 진출하면서 손정규 방순경 씨 등은 일본 유학까지 떠나는 신여성의 표본이 됐다. 이 때문에 각 분야에서 줄줄이 ‘최초’의 기록을 깨는 동문들이 이어졌다.

최초의 여성 개업의사인 허영숙(3회), 최초의 여기자인 이각경(3회) 매일신보 기자, 최초의 여성 아나운서인 마현경(16회) 씨 등이 대표적이다.

광복 당시 국내에 2명뿐이던 여성 이공계 박사도 경기여고 출신인 김삼순(18회·생물학) 홍임식(26회·수학) 박사였다. 역대 대한민국학술원 회원 중 3명뿐인 여성 박사 역시 고황경(14회) 전 서울여대 명예총장, 김삼순 전 서울대 교수, 김영중(52회·약학) 서울대 약대 교수 등 모두 이 학교 출신이다.

이성남(54회) 민주당 의원은 첫 여성 금융통화위원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백명현(55회) 서울대 화학부 교수는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한국과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각계를 움직이는 힘=경기여고 동문들의 인맥은 법조계에서 특히 쟁쟁하다. 최초의 여성 사법고시 수석, 고등법원 부장판사, 법원장 등의 기록을 가진 이영애(55회) 자유선진당 의원이 대표적이다.

2004년 최초의 여성 대법관이 된 김영란(63회) 대법관을 비롯해 전수안(59회) 대법관, 첫 여성 법무부 장관을 지낸 강금실(63회) 변호사 등도 유명하다.

특히 ‘63회 삼인방’이라 불리는 강 전 장관, 김영란 대법관, 조배숙 의원 등은 고교 시절부터 우열을 가리기 힘들 만큼 실력을 겨루다 1975년 나란히 서울대 법대에 진학해 화제가 됐다.

전문 실력을 바탕으로 정관계에 입성한 이도 많다. 경기여고가 배출한 장관은 5명, 국회의원은 20명이다. 이는 광복 이후 전체 여성 의원 중 13%, 여성 장관 중 21%에 달한다고 한다.

장영신(43회) 애경그룹 회장과 현정은(60회) 현대그룹 회장, 이미경(65회) CJ엔터테인먼트 부회장 등은 결단력 있는 경영으로 유명하다.

▽국제화와 리더십의 산실=초창기 경기여고 출신들이 ‘인텔리’라는 이미지를 구축한 데에는 거침없는 해외 진출이 한몫을 했다.

남자들도 쉽게 유학을 떠나지 못하던 1910, 20년대에 고황경 박사처럼 과감하게 미국 등지로 떠나는 동문이 많았다. 일본 도쿄여의전의 경우 한국인 졸업생 가운데 경성여고보 출신이 20%나 될 정도였다.

경기여고 출신들의 조직력도 유명하다. 대한가정학회 역대 회장 29명 중 15명이 이 학교 출신이다.

경기여고 동창회는 14일 서울 그랜드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개교 100주년 기념 전야제 행사를 가진 데 이어 15일 개포동 교정에서 기념식과 축제 등으로 100주년을 성대하게 기념할 예정이다.

김희균 기자 foryou@donga.com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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