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샘도 마다 않은 50대 선생님, 산골 제자들에 자신감 심어줘

  • 입력 2008년 9월 8일 02시 55분


환경부가 주최한 생물자원보전 프로그램에 제자들을 참가시키기 위해 상경한 강원 정선군 여량고 이재춘 선생님(가운데)이 정선으로 돌아가기 전 서울역 앞에서 제자들과 함께 활짝 웃고 있다. 사진 제공 커런트코리아
환경부가 주최한 생물자원보전 프로그램에 제자들을 참가시키기 위해 상경한 강원 정선군 여량고 이재춘 선생님(가운데)이 정선으로 돌아가기 전 서울역 앞에서 제자들과 함께 활짝 웃고 있다. 사진 제공 커런트코리아
전교생 48명 정선 여량고 환경부 공모전 본선 진출

“아이고, 38년 동안 평교사로 교단을 지켜온 평범한 사람일 뿐입니다.”

강원 정선군 여량고 이재춘(58) 선생님은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7일 오후 2시 서울역 앞에서 만난 그는 인천 강화도로 갯벌체험을 갔던 제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도착한 승합차에서 쏟아져 나온 학생들 중 한 명이 이 교사에게 안기며 말했다.

“선생님, 잘 주무셨어요? 만날 산만 보다가 오늘 갯벌을 처음 봤는데 정말 ‘짱’이에요.”

이 교사는 6일 정선 아우라지에 사는 제자 5명을 자가용에 태우고 서울에 왔다. 환경부가 주최한 생물자원보전 청소년리더 프로그램에 참가할 아이들을 데려다 준 그는 서울역 부근의 한 모텔에서 홀로 잠을 잤다. 주말부부인 이 교사는 가족과의 달콤한 주말도 반납했다.

이번 프로그램은 전국 중고교생을 대상으로 생물보전 아이디어 공모를 받아 본선팀을 추린 뒤 활동내용을 평가해 6개 팀에 환경부장관상이 수여된다. 대학입시에 가산점이 붙는 활동이다 보니 서울 등 대도시 학생의 관심이 높다. 100여 개 팀이 경합을 벌였던 이번 공모전에서 전교생 48명의 산골학교가 최종 본선에 오른 것은 여량고가 유일하다.

이 교사가 정선군 북면의 여량고에 부임한 것은 3년 전. 그는 “FM라디오 주파수조차 잡히지 않고 TV도 잘 나오지 않는 산골 아이들에게 더 큰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이를 위해 이 교사는 ‘환경교육 연구학교’ 신청을 냈다. 외부의 관심과 지원을 받으면 제자들에게 더 많은 기회가 올 거라는 기대에서였다.

올해 7월 말, 환경교육에 관심이 많던 2학년생 5명이 ‘생물보전 프로그램’ 포스터를 보고 이 교사를 찾았다. 그는 “작년에 준비했던 선배들이 있으니 알아보라”는 말만 해줬다. 목표에 다가가는 방법도 스스로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제자들 몰래 이 교사도 바빠졌다. 관계 부서에 수십 통의 전화를 걸어 아이디어 선정 기준과 신청서 작성요령 등을 문의했다. 마감 일주일 전부터는 방과 후 제자들을 관사에 불러 밤새도록 신청서를 다듬었다.

그렇게 탄생한 아이디어가 ‘버들치의 생애’. 정선의 자랑인 버들치가 무분별한 제초제 사용으로 소멸위기에 놓이자 이 문제를 해결하자는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

평소 엄한 편이라 ‘악명’이 높던 이 교사는 1일 제자들을 불러 “너희들 됐더라”며 비로소 웃었다. 그는 “특별한 재주가 없더라도 ‘하고 싶다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 주고 싶었다”고 했다.

신광영 기자 n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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