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차마 네 모습은 못보겠구나”

  • 입력 2008년 6월 10일 03시 00분


7일 저녁 김영백 씨(오른쪽)와 예비역 전경을 자식으로 둔 한 어머니(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대기 중인 의경들에게 격려의 말을 건네고 있다. 어머니의 옆에 서 있는 경찰이 들고 있는 것은 김 씨가 건넨 간식거리. 신진우 기자
7일 저녁 김영백 씨(오른쪽)와 예비역 전경을 자식으로 둔 한 어머니(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대기 중인 의경들에게 격려의 말을 건네고 있다. 어머니의 옆에 서 있는 경찰이 들고 있는 것은 김 씨가 건넨 간식거리. 신진우 기자
의경아들 둔 김영백씨, 매일밤 시위현장서 부상경찰 보살펴

“국민들이 이렇게 공권력을 무시하면서 나중에 필요할 때 무슨 면목으로 자신을 보호해 달라고 요청할 수 있겠습니까.”

지난해 12월 입대해 서울지방경찰청 산하 기동대에서 의경으로 복무 중인 아들을 둔 김영백(50) 씨는 9일 가슴속에 담아뒀던 말을 터뜨렸다.

5∼8일 있었던 ‘72시간 릴레이 집회’와 10일 ‘촛불 대행진’을 앞두고 그는 지난달 31일 회사에 휴가를 냈다.

다른 전·의경 부모들과 함께 시위 현장 부근에서 시민들에게 ‘평화집회’를 호소하며 아들을 조금이라도 지켜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는 매일 저녁 주머니를 털어 초콜릿, 과자 등 간식거리를 사서 촛불시위 현장으로 간다. 김 씨는 “새벽까지 이어지는 집회에 전·의경들이 거의 탈진 상태다. 피곤함은 달래 주지 못해도 배고픔이라도 달래주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6일 오후부터 7일 새벽까지 거리에서 꼬박 밤을 새웠다. 7일 새벽 서울 종로구 신문로 새문안교회 부근에서 전경과 시위대가 격렬하게 몸싸움을 벌이는 현장도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

시위대와 경찰이 충돌했다는 얘기를 전해 듣고 정신없이 현장으로 달려갔을 때는 경찰과 시위대가 뒤엉켜 아수라장이었다. 일부 전경은 다쳐서 대열 뒤로 실려 왔다.

김 씨는 “‘내 아들도 저렇게 될지 모르겠구나’라는 생각에 눈앞이 캄캄했다”고 말했다.

119에 전화해 구급차를 불렀지만 차가 부족해 오기 힘들다는 말을 듣고는 “국가가 국가에 봉사하는 젊은이들을 버린다”는 생각에 분노가 치밀어 오르기도 했다.

선두에 있다가 시위대에 밟힌 한 전경이 뒤로 실려 왔다. 호흡도 불규칙하고 눈도 풀려 거의 실신 상태였다. 김 씨가 담요를 덮어 주려고 하자 그가 갑자기 “내 후임 살려 달라. 나 없으면 깔려 죽을 것”이라고 소리쳤다.

그는 “너무 안타깝고 억울한 마음에 ‘한 대 맞으면 한 대 때려야 하는 게 정상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더라”라고 털어놨다.

그는 “평화시위라는 것이 왜 보는 사람한테 공포감을 줘야 하나. 전·의경들도 대열 안에선 무섭다고 말 못하지만 부모랑 있을 땐 ‘가끔씩 공포감에 오금이 저린다’고 말한다”고 흥분했다.

시위대와 크게 충돌하지 않았는데도 극도로 흥분한 상태에서 두려움 때문에 실신하는 마음 약한 전경도 봤다. 집회 현장에서 어린 초등학생들까지 전·의경을 앞에 두고 욕설과 모욕적인 말을 하는 것도 수없이 봤다.

그는 “아들이 갑자기 ‘시위대에게서 부모님을 모욕하는 말을 들었다’며 미안해하더라”라고 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그럴 때면 화도 나지만 오히려 나 때문에 아들이 더 힘들어할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고 말했다.

그는 “아들이 지금 어디에서 근무하는지 알지만 시위 현장을 본 뒤에는 아들을 직접 볼 자신이 없어 갈 엄두가 안 난다”며 눈물을 보였다.

그는 “한 전경의 어머니가 너무 분한 나머지 우리도 불법 집회 반대하는 집회라도 한번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제안했지만, 다른 부모들이 ‘우리가 집회하면 아들들 잘 시간이 줄어든다’며 말린 일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하고 싶은 말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사람들”이라는 말을 남기고 초콜릿이 가득 실린 차를 타고 집회 현장으로 갔다.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 영상취재 : 정영준 동아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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