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논술通 테마筒]성장과 분배

  • 입력 2008년 6월 9일 03시 01분


성장 치중 땐 빈익빈부익부 vs 분배 우선땐 발전속도 둔화

경제 ‘파이 키우며 나누기’ 묘책은 없을까

1. 경제 발전에서 소외된 이웃들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에 나오는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한국 소설이 거둔 중요한 결실로 평가된다. 이 소설은 산업화, 근대화로 치닫던 1970년대 도시 빈민의 궁핍한 생활이나 자본주의의 모순에서 비롯된 노동자의 현실적 패배를 보여준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난장이’ 일가(一家)의 삶은 산업화의 화려한 불빛에 가려진 도시 빈민의 궁핍한 삶, 노동자들의 저임금, 열악한 근로 환경, 폭력과 저항의 모습을 섬뜩하면서도 아름답게 형상화하고 있다.

이 소설의 시간적 배경으로부터 30여 년이 지난 지금, 한국은 국민 소득 2만 달러, 국내총생산(GDP) 규모 세계 14위에 이르는 비약적인 경제발전을 이뤘다. 한 해 해외 유학·연수비용만 10조 원에 이를 정도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결식아동 수가 15만1375명(1999년 기준)에 달한다. 비약적인 경제 성장과 함께 한국 사회의 양극화는 더욱 심화된 것이다.


한국의 지니계수
연도1986198719881989199019911992199319941995
지니계수0.3070.3060.3020.3040.2090.2870.2840.2810.2840.284
연도1996199719981999200020012002200320042005
지니계수0.2910.2830.3160.3200.3170.3190.3120.3160.3100.310
* ‘지니계수’는 소득분배의 불균형을 나타내는 수치다. 0에서 1 사이의 값을 갖는데 그 값이 1에 가까울수록 그 사회의 불평등 정도가 심하다는 의미다. 보통 0.4를 넘으면 상당히 불평등한 소득 분배 상태로 본다.

2. 경제 성장의 목적

경제 성장의 목적은 국민 모두가 고루 잘 사는 것이다. 후진국이나 개발도상국의 경우 경제 성장을 이루는 초기 과정에서 잘사는 사람과 못사는 사람들의 소득 격차가 벌어질 수 있다. 그러나 한 나라가 아무리 큰 경제 성장을 이룩해도 경제 성장의 열매가 국민에게 고루 분배되지 못하면 오히려 사회적 갈등과 혼란만 키울 수 있다. 온 국민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얻은 결과가 특정 계층이나 소수의 사람들에게 독점되면서 분배 과정에서 소외된 사람들은 심한 박탈감과 적대감을 갖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1960,70년대에 수출 주도형 경제 성장 방식을 택했다. 경제 성장에 필요한 자본·기술·인재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저임금 정책을 실시했고, 노동자들은 열악한 근로 환경 속에서 자신을 희생했다. 그 결과 계층간·산업간·지역간 빈부 격차가 심화됐다. 자본주의 경제 체제는 개인의 자유로운 경제 활동이 보장되고, 개인의 능력과 노력에 따라 어느 정도의 빈부 격차가 존재한다. 그러나 소득 분배의 불평등이 지나쳐서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하면 사회 경제적으로 정의롭지 못한 사회가 된다.

3. 성장이 우선일까, 분배가 우선일까?

경제 성장이 우선이냐, 분배가 우선이냐는 한 국가의 경제 정책을 결정하는 핵심 문제다. 성장 우선론자들은 경제 성장이 먼저 이뤄져야 분배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빵의 크기를 키운 다음에 분배해야 각자에게 돌아갈 몫이 커진다는 것이다. 이들은 경제 성장이 계속되면 소득이 고소득 계층으로부터 저소득 계층으로 확산되어 분배 문제가 자연스럽게 해결된다고 믿는다.

또 성장보다 분배를 앞세우면 사회 구성원의 성취 동기가 떨어져서 결과적으로 경제 발전에 저해가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경우 성장 우선 정책이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심화시켜 사회의 분열과 혼란을 가져올 우려가 있다. 인간의 욕구에는 끝이 없기 때문이다.

분배 우선론자들은 경제 성장의 원동력이 오랜 기간 유지되고 지속되려면 고른 분배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경제 성장을 해도 분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노동자들의 근로 의욕이 떨어지고 경제적 효율성도 낮아진다고 믿는 것이다. 이들은 일단 성장이 되면 자연스럽게 분배가 이뤄지는 성장 우선론을 ‘대책 없는 낙관론에 불과하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사회주의 국가들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분배 중심의 경제 정책은 경제 성장을 둔화시켜 국민 전체를 빈곤으로 내몰았다.

4. 성장과 분배의 조화-‘터널 효과(Tunnel Effect)’

성장이 우선이냐, 분배가 우선이냐 하는 논쟁에서 자주 인용되는 것이 앨버트 허시먼의 ‘터널 효과’다. 터널 효과란 분배의 형평성을 무시한 채 성장만 지속적으로 추구하다 보면 결국에는 효율성이 떨어져 성장이 저해됨을 비유한 것이다. 즉, 경제가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복지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효율성(성장)과 형평성(분배)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것이다.

후진국에서 선진국에 이르는 과정을 2차로 일방통행의 긴 터널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가정하자. 초기에는 두 차로 중 어느 하나가 움직이면 다른 차로에서 기다리는 사람(성장 초기에 성장의 혜택을 받지 못한 계층)도 자기가 있는 차로가 곧 움직일 것이라는 기대(성장혜택을 곧 받으리라는 기대)에 부푼다. 그러나 계속 다른 차로만 움직이고 자기 차로의 정체가 계속되면 불만이 쌓이기 시작한다. 마침내 차량 소통을 규제하는 교통순경(정부, 정부정책)까지 불신하게 되고, 불만에 찬 운전자들은 교통법규를 무시하여(위법, 탈법행위) 터널 속은 더욱 혼잡해지고 정체가 심해진다.

이처럼 경제 발전 초기에는 소득 불평등에 대한 허용 정도가 높다가 경제가 발전함에 따라 점점 낮아진다. 이를 분배 개선으로 충족시키지 못하면 경제적 불안에서 비롯된 사회적·정치적 불안으로 경제 성장의 원동력마저 잃게 된다. 이는 결국 국가의 경제 성장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결국 성장과 분배는 이분법적 사고방식으로 접근할 문제가 아닌 것이다. 성장과 분배의 어느 한 축이 중심이 될 것이 아니라 ‘성장 촉진형 재분배 정책’, ‘경쟁력을 제고한 재분배 정책’ 등이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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