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인문계? 자연계? 해마다 이맘때면 高1은 고민중

  • 입력 2008년 5월 27일 02시 57분


섣불리 결정했단 후회… 적성검사, 선호도 등 종합적 접근을

《인문계고 1학년생 김모(17) 군은 요즘 진로를 놓고 부모와 갈등을 빚고 있다. 인문계열과 자연계열 중 어느 쪽을 선택할지를 묻는 학교의 가정통신문이 발단이 됐다. 부모는 ‘수학을 잘하니 자연계열이 좋겠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김 군은 장래 희망인 외교관이 되려면 인문계열로 가야한다고 말해 의견이 충돌했다.

김 군의 어머니 황모(43·서울 은평구 불광동) 씨는 “아이의 의견을 존중하는 쪽으로 접근을 보긴 했지만 어느 계열을 선택하는 게 옳은지 확신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대부분 고교가 교과서 주문 등을 이유로 1학년 1학기 중간고사를 마치고 계열 선택을 묻는 가정통신문을 발송한다.

김 군 가족처럼 인문계열과 자연계열 중 어느 쪽을 선택할지를 놓고 고민에 빠진 가정이 한두 곳이 아니다. 》

○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

대학생 권모(24·여) 씨는 고교 때 충동적으로 계열을 결정했다 두고두고 후회하고 있는 경우다. 권 씨는 대학에서 어학계열을 전공하고 싶었지만 의·약대에 가라며 자연계열 진학을 권하는 학교 측과 부모의 설득에 마음이 약해졌다. 고민을 거듭하던 권 씨는 동전 던지기로 판단을 내려 자연계열에 진학했다고 한다.

그는 명문대 화학과에 합격했지만 전공에 흥미가 없어 인문대나 경영대의 강의를 기웃거리며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다 요즘 전공과 무관하게 행정고시를 준비하고 있다. 권 씨는 “인문·자연계열 공부의 차이에 대한 배경지식이나 적성, 흥미에 대한 고민 없이 너무 즉흥적으로 계열을 선택했던 게 후회스럽다”고 말했다.

권 씨처럼 ‘잘못된 선택’을 했던 학생 가운데 대학입시 교차지원(자연계 수능을 치르고 인문계로 진학하거나 그 반대로 하는 것)이나 대학에서 전과(轉科) 등을 통해 계열을 바꾸느라 귀중한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는 사례가 많다.

2006년 한국고용정보원이 2005년 4년제 대학 졸업자를 상대로 출신 고교의 계열과 대학 졸업 시 전공계열을 조사해 비교한 결과 고교 인문계 출신 학생의 12.9%는 대학에서 자연계열 전공(공학계열 4.6%, 자연계열 5.7%, 의약계열 2.6%)을 공부해 졸업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교 자연계 출신 학생의 13.8%도 인문계열(인문계열 3.9%, 사회계열 9.9%)을 졸업했다. 인문·자연계열 학생 모두 고교 전공계열과 대학 졸업 시 전공이 일치하지 않는 비율이 13% 안팎이었다.

○ 적성·흥미 고려하지 않은 선택 많아

대부분 인문계고는 외부 기관에 위탁해 실시한 진로적성검사결과, 학생·학부모 대상 계열선호 조사결과, 중간·모의고사 성적 등을 종합한 자료를 기초로 상담을 거쳐 1학년 1학기가 끝나기 전에 학생의 계열을 나눈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적성이나 흥미, 장래희망 등을 고려해 계열을 선택하기보다 ‘나는 과학을 싫어하니까 인문계가 좋겠다’거나 ‘수학을 잘해서 자연계로 간다’며 진로를 결정하는 학생이 예상외로 많다.

심지어 ‘형은 인문계로 갔으니 너는 자연계로 가라’거나 ‘엄마, 아빠 모두 자연계 출신이니까 너는 인문계가 좋겠다’며 막무가내로 자녀의 계열을 결정하는 학부모도 있다. 일부 여고에서는 ‘자연계는 의·약대 진학할 공부 잘하는 애들이나 가는 반’이라는 편견으로 인해 자연계열에 소질이 많은 학생들조차 자의반 타의반으로 인문계열을 택하기도 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계열 결정을 후회하고 뒤늦게 말을 바꿔 타려는 사례도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서울 A고의 경우 1학년 2학기에 계열을 바꿔달라고 요구하는 학생이 한 반(40명)에 평균 두세 명이나 된다. 이 학교 1학년 부장교사는 “2, 3학년생 중에도 내신상의 불이익을 감수하고라도 계열을 바꾸겠다는 학생이 매년 한 학년에 서너 명은 나온다”며 “대부분 자연계열에 적응하지 못해 인문계열로 옮기는 학생”이라고 말했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이영대 박사는 “평소에 진로나 적성 탐색을 게을리 하면 계열 선택을 앞두고 당황하거나 즉흥적으로 결정하기 쉽다”며 “중학교 때 진로적성검사 등을 받아 자신의 적성과 흥미를 파악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정열 기자 passi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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