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그 사무치는 문학공간… 작가, 서울의 그늘에 깃들다

  • 입력 2008년 3월 28일 03시 02분


■ ‘홍대앞’ ‘노량진’ 등 실제 지명 배경 글쓰기 다시 각광

문학의 현장을 답사하는 ‘문학기행’이 하나의 글쓰기 장르로 굳어질 만큼 1980년대까지 문학의 공간은 전국을 아울렀다. 그만큼 폭넓고 구체적이었던 문학의 공간은 1990년대 이후 개인의 내면에 천착하면서 달라졌다. 집 안에서, 혹은 이름 없는 카페에서 소설 속 사람들은 만나고 헤어졌다. ‘공간이 없어졌다’는 말도 나왔다.

그 공간이 다시 나타났다. 최근 작가들이 구체적인 지명을 배경으로 삼으면서 문학적 의미를 입힌 것. 흥미롭게도 대부분 서울의 곳곳이다.

지난해 말 나온 ‘21세기 전망’ 동인지에 실린 함성호(45) 씨의 시 ‘홍대 앞 금요일’은 음악이 흐르는 골목, 어울리는 젊은 남녀 같은 ‘홍대 앞 금요일’ 저녁의 풍경을 포착했다. 지난해 가을 출간된 김영하(40) 씨의 장편 ‘퀴즈쇼’는 홍대 앞을 배경으로 20대 백수 청년의 모습을 그린 작품. 작가들이 묘사한 홍대 앞이라는 공간은 문화 소비 지대이자 젊음이 떠도는 곳이라는 의미가 부여됐다.

김애란(28) 씨는 지난해 출간한 소설집 ‘침이 고인다’에 실린 단편 ‘자오선을 지나갈 때’에서 재수 학원이 북적이는 노량진의 풍경을 파고든다. 변두리 노량진처럼 주인공인 재수생 ‘나’ 역시 변두리의 청춘이다.

이런 새로운 경향은 ‘서울의 재발견’이라고 부를 만하다. 작가들이 보여주는 서울은 그야말로 곳곳이 저마다의 독특한 개성을 갖고 있다. 평론가 이광호 씨는 “1990년대까지 문학에서 서울은 다른 곳과 구별되는 대도시로만 부각됐을 뿐 구석구석이 묘사되지는 않았다”면서 “그러나 2000년대 이후 서울은 다양한 특징을 갖춘 거대한 나라로 세밀하게 분석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정이현(36) 씨가 지난해 낸 소설집 ‘오늘의 거짓말’에 실린 단편 ‘삼풍백화점’은 강남 중산층의 공간이지만 삶의 고독이 숨겨진 삼풍백화점과 서초동 일대를 배경으로 한다. 백가흠(34) 씨는 단편 ‘매일 기다려’에서 노숙자들이 있는 서울역 앞을 무대로 가족의 해체가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를 일깨운다. 윤대녕(46) 씨는 인사동에 실제로 있는 카페까지 단편 ‘낙타주머니’에 그대로 등장시키면서, 옛 것과 새 것이 공존하는 공간으로서의 인사동을 묘사한다.

1990년대의 내면에 대한 침잠에서 벗어나 현실에 눈을 돌리면서 2000년대 이후 작가들의 주요 거주지이자 활동지인 서울 구석구석이 문학 공간으로 새롭게 발견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이다. 평론가 강유정 씨는 “전에는 서울이란 곳이 고향에서 올라온 낯선 도시로만 여겨졌는데, 최근 작가들은 ‘내추럴 본(natural born) 도시인’으로 서울을 대한다”면서 “그 작가들의 시선으로 서울이라는 공간이 문학에서 새로운 의미를 갖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