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이슈&이슈]유권자의 선택

  • 입력 2007년 12월 3일 03시 03분


코멘트
허풍과 비전 사이

인간이 신이 아닌 한, 죄를 짓지 않고 사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인류에겐 죄를 규정하거나 벌하는 수많은 개념이 있어 왔다.

과거 중국에는 ‘묵형(墨刑)’이란 게 있었다. 죄인의 얼굴에 먹물을 들이는 가혹한 형벌이다. 얼굴에 한번 새겨진 먹물은 평생 지워지지 않았다. 죽을 때까지 죄인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아야 하는 셈이다. 묵형이란 단어 속에는 ‘사람은 결코 변하지 않으므로 그 사람이 지은 죄도 씻길 수 없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한편 ‘업보(業報)’라는 개념도 있다. 업보는 포인트 점수 쌓기와 비슷하다. 좋은 일을 하면 점수가 누적되고, 나쁜 일을 하면 점수가 깎인다. 누군가에게 해를 끼쳤다면 가슴만 치고 있으면 안 된다. 올곧은 일을 많이 해서 맺힌 업을 풀어주어야 한다. 결국 업보란 ‘누구나 마땅한 죗값을 치르고 반성하면 새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생각을 밑바닥에 깔고 있다.

지금의 대통령 선거판을 살펴보자. 우리는 어떤 방법으로 대통령감을 고르는가? 정책선거는 실종된 채 인기투표로 성격이 변질되어가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각 대선 후보 캠프는 상대 후보를 비난하는 네거티브(negative) 전략을 세우느라 바쁘다.

근거 없는 비방은 당연히 선거판에서 사라져야 한다. 그러나 문제는 어떤 후보가 ‘죄’를 지었을 때 발생한다. 유권자들은 어떤 판단을 해야 할까. ‘결코 회복될 수 없는 잘못’이라면, 유권자들은 마음속으로 후보에게 ‘묵형’을 내릴 것이다. 반면 ‘용서받을 수 있는 잘못’이라면 그가 거듭나 ‘포인트 점수’를 쌓을 기회를 줄 수도 있다.

진지하게 따져야 할 대목은 후보가 내세우는 미래다. 지도자의 미래 비전은 나라의 운명을 바꾼다. 그러나 후보의 과거도 미래 못지않게 중요하다. 우리가 역사를 통해 미래를 내다보는 지혜를 얻을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후보의 과거를 보면 그의 미래를 가늠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허풍과 비전을 가리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비전은 자기 충족적(self-fulfillment) 예언과 비슷하다. 스스로 될 수 있다고 믿기에 자기가 그렇게 바뀐다는 뜻이다. 반면 허풍은 사람들의 절실한 소망에 잔뜩 바람을 불어넣어 판단을 흐려 놓는다. 예컨대 “부자가 되고 싶다”와 “부자가 될 수 있다”는 다르다.

그렇다면 후보 가운데 허풍쟁이는 누구일까?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철학박사 timas@joongdong.org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