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권대봉]관치가 대학 성장 막는다

  • 입력 2007년 10월 17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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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2007 세계 대학총장 포럼에 참가한 총장들이 이구동성으로 강조하는 것은 “정부가 대학에 대한 간섭을 줄이되 사회적 책임은 무겁게 하자”는 것이다. 포럼을 끝내며 채택한 ‘서울선언’의 4개 조항에 ‘대학자율화’가 포함된 것을 보면 다원화 사회에서 획일적인 관치통제교육 정책으로는 결코 대학이 그 사명을 다할 수 없음을 천명한 것이다.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데이비드 리브론 미국 라이스대 총장은 정부의 재정지원은 필요하지만 지원을 구실로 통제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이장무 서울대 총장은 정부의 지나친 간섭은 대학의 연구 의욕을 저하시킨다고 경고했다. 개빈 브라운 호주 시드니대 총장은 정부가 큰 그림을 제시하고 세부 정책은 대학에 맡겨야 한다고 충고했다. 구구절절 옳은 말이다.

정부가 대학행정에 지나치게 참견하는 것을 자제하고 재정지원을 풍부하게 해 대학의 자율적 역량 강화를 돕는 것이야말로 창의적 인재를 육성하기 위한 바람직한 방향일 것이다. 한국 정부는 연구중심 대학 등 그럴듯한 슬로건을 많이 만들어 냈지만 대학의 자율적 성장을 돕기보다는 압력을 행사하는 쪽이었다.

오늘날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은 과거의 백성이라는 통치 대상에서 고객이라는 섬김의 대상으로 바뀌고 있다. 정부의 고객인 국민을 교육하는 대학도 이제는 정부의 압력 대상에서 돕기 대상으로 바뀔 때가 되었다. 그러기 위해서 정부는 통제적인 대학정책을 다시 점검할 필요가 있다.

통제행정이 실패한 것은 이미 사회주의 국가들의 몰락을 통해 입증됐다. 그런데도 아직 우리 정부는 관치통제의 교육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대학의 학생선발권과 교육과정 편성권을 정부가 침해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 기본이념을 퇴색시키는 것이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등급제로 실시하고, 천차만별 수준인 고등학교 내신 성적의 획일적 반영을 요구하며, 거기에다 시시콜콜 대입 논술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한국을 제외하고는 찾아보기 어렵다.

더구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사립대를 정부가 통제하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외국의 사립대는 정부로부터 재정지원을 받지만, 학생 선발은 물론 교육과정 편성, 등록금 책정 등 대학 행정에 관한 자율권을 갖고 있다. 국공립대의 경우도 국리민복 차원에서 최소한의 간섭을 할 뿐이다. 미국의 주정부는 주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주립대에 일정 성적 이상의 학생과 신입생들의 일정 비율 이상을 자기 주 출신으로 선발할 것만 요구할 뿐이고 다른 것은 모두 자율에 맡기고 있다.

정부가 대학을 돕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우선 대학에 건학 이념을 구현할 수 있는 교육과정을 편성할 권리를 주고, 그 교육과정을 충실히 이수할 학생을 선발할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다. 그래야 외국의 대학들과 당당하게 경쟁할 수 있다. 손발을 자유자재로 쓰는 자율적인 외국 대학과 손발이 정부에 의해 묶인 타율적인 국내 대학이 경쟁하면 어느 쪽이 유리할지는 자명하다.

현 정부는 대학에 대한 재정지원을 당근으로, 대학 통제를 채찍으로 활용하고 있다. 당근과 채찍에 길든 대학들도 이제 정신을 차려야 한다. 자율적 역량을 키워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하면 교육개방 시대에 외국 대학과 경쟁하여 생존하기 어렵게 된다.

대학이 살아야 국가 미래가 있다. 대학교육 혁신을 통해 인재 대국을 건설하고 선진국 반열에 오르기 위해서는 대학을 돕는 정부가 절실히 필요하다.

권대봉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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