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논술하이킥]온라인 글쓰기 지도가 창의력 키우는 대안

  • 입력 2007년 10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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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할머니 얼굴에 낙서하지 마세요.”

칠판에 그림을 그리던 교사는 초등학교 2학년 학생의 말에 깜짝 놀랐다. 교사는 이제 막 할머니의 얼굴에 주름을 그려 넣던 참이었다. 학생은 주름을 낙서라고 표현한 것이다. ‘아,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구나.’ 어른들이 생각지 못한 엉뚱한 상상력이 재미있었다.

초등학교에서 방과 후 수업으로 논술을 가르치는 양인숙(52) 씨는 동시·동화 작가다. 양 씨는 학생의 표현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낙서’라는 시를 썼다. ‘우리 할머니 얼굴엔 낙서가 많아요/시간이 그려 놓고 간 갈매기 모양의 낙서/아무도 지울 수 없대요’로 시작하는 시다. 신선한 아이디어를 제공한 학생의 반에는 피자 한 판을 선물했다.

“아직 언어감각이 말랑말랑한 초등학교 저학년한테서 톡톡 튀는 해답이 훨씬 많이 나와요. 동시 쓸 때도 아이들 도움을 많이 받죠. 상상력이 풍부하거든요.”

그녀는 무료로 글쓰기를 가르쳐 주는 인터넷 사이트 ‘송알송알’(www.koreakidnews.org)의 공동대표. 자원봉사자로만 운영되는 이 사이트는 회원이 1만 명에 이르고,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청소년 권장 사이트로도 선정됐다.

회원은 대부분 초등학생이나 중학생이다. 이들은 게시판에 글을 올려서 토론을 하고 일기, 독후감, 생활문 등 다양한 형태의 글을 쓴다. 양 씨와 같은 자원봉사자(편집위원)들의 일은 학생들이 올린 글을 읽고 답글을 달아 주는 것이다. 2000년 가을 처음 사이트를 열 때 3명이던 편집위원은 현재 15명이다. 독서논술 지도사, 신문활용교육(NIE) 강사, 동화·동시 작가, 수필가, 전직 기자까지, 글쓰기라는 공통의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 알음알음 모여들었다.

양 씨와 함께 사이트를 운영하는 전직 기자 겸 수필가 심양섭(46) 씨, 수필가 남궁은희(47) 씨, NIE 전문강사 박점희(38) 씨가 1일 한자리에 모였다.

“요즘 아이들은 자기표현을 잘해요. 그래서 글도 잘 쓰죠. 아쉬운 점은 글 쓰는 것도 자꾸 수학처럼 ‘정답’을 찾으려 한다는 거예요. 모범답안처럼 쓰니 독후감을 봐도 모두 똑같아요. 우리 교육의 한계죠.”

남궁 씨의 말에 세 사람이 공감했다. 할머니의 얼굴 주름을 ‘낙서’라고 표현하듯 살아 숨쉬는 감성을 가졌던 학생들이 초등학교 고학년만 되어도 틀에 박힌 대답을 하는 게 안타깝다고 했다. 너무 어린 나이부터 일기와 독후감을 강제적으로 쓰고 어른의 ‘검사’를 받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온라인 글쓰기 지도가 아이들의 창의성을 키워 줄 대안이라고 말했다.

“온라인에서는 완벽한 글을 요구하지 않아요. 글의 형식 구조 문법보다는 나만의 생각을 중요하게 보거든요.”(심 씨)

또 다른 장점은 키보드를 두드려 글을 쓰는 건 손으로 쓰는 것보다 빨라 생각나는 그대로 글을 쓸 수 있다는 것. 요즘 학생들의 ‘머리 돌아가는 속도’를 손이 못 따라갈 때가 많기 때문이다. 내가 쓴 글을 몇 번이고 수정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 어떤 학생의 글에는 며칠 동안 계속 ‘새 글’이란 꼬리표가 붙어 있곤 하는데, 매일같이 자기 글을 수정해서 매끄럽게 가다듬는 작업을 스스로 반복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환경’을 주제로 한 토론방을 맡고 있는 박 씨는 학생들의 글에 첨삭을 하거나 모범답안을 달지 않는 대신 ‘이렇게 다른 관점도 있다’는 사실을 학생들에게 보여 준다. 영화 ‘해리 포터’에 관한 토론에서 학생들이 한결같이 영화에 대해 좋은 평가만 내렸다면, ‘소설과 영화의 지나친 상업화가 어린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우려도 있다’는 답 글을 다는 식. 어린 학생에게는 오류를 지적하기보단 잘된 점을 짚어 주는 쪽이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주로 칭찬을 하려 한다. 박 씨는 “첨삭은 자칫 학생들로 하여금 글쓰기에 대한 자신감을 잃게 만들고 또 글 쓰는 기술만 가르쳐 주는 데 그칠 수 있다”고 말했다.

온라인에서는 끈기 있게 참여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 만큼 답글을 꼼꼼히 달아 주는 게 중요하다. 며칠만 소홀히 해도 “왜 답글 안 달아 줘요?”라는 원망 섞인 글이 올라올 수 있다.

정기적으로 대회를 열어서 시상을 하거나 참여도에 따라 상을 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송알송알 사이트는 포인트제로 운영되어 글을 쓰거나 남의 글에 의견을 달 때마다 10점을 준다. 일정 점수가 되면 상을 준다.

“다른 곳에선 절대로 글쓰기 상을 못 받을 아이들도 ‘송알송알’에서는 상을 받아요.(웃음) 겨우 문화상품권 한두 장을 받고도 자신감이 생겨 진짜로 글을 잘 쓰게 되더라고요.”(심 씨)

‘송알송알’ 운영진이 말하는 좋은 글쓰기 지도법
1. 학생이 읽어야 할 책은 학부모나 교사도 꼭 읽으세요. 그래야 대화를 할 수 있어요.
2. 듣기, 읽기, 말하기(독서와 토론, 발표)를 먼저 하고 쓰기는 맨 나중에 하세요.
3. 학생들과 대화(질문)를 많이 하세요.
4. 책에 나오는 사물이나 장소를 직접 체험하고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
5. 글쓰기 주제는 생활 속 문제로 쉽게 잡으세요.
6. 수시로 칭찬해 주세요.
7. 나만의 문집을 만들어 주세요.

최세미 기자 luckyse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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