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이슈&이슈]기독교계의 아랍권 봉사

  • 입력 2007년 9월 10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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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마을, 부족은 아랍세계의 주요 코드다. 그네들은 수천 년 동안 부족 중심으로 살아왔다. 어떤 권력자도 부족장들을 무시하고는 힘을 쓰지 못한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우리 국민이 납치됐을 때도 그랬다. 탈레반, 아프간 정부, 우리 군대가 얽힌 문제였지만 정작 협상 테이블을 이끈 건 지역의 부족장들이었다.

아랍에서 부족의 이해는 도덕윤리보다 앞서곤 한다. 부족 간의 숱한 다툼은 치안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았다. 몸값을 노린 납치가 아랍 뒷골목 세력들의 ‘주요 비즈니스’가 될 정도다.

이슬람은 이런 아랍 세계에 화해의 실마리를 안겨주었다. 이슬람은 사랑과 자비, 평화의 종교다. 누구도 맞서지 못하는 권위는 사소한 다툼을 잠재운다. 그리고 ‘게임의 룰’을 지키게 한다. 설사 싸우더라도 절대 넘지 못할 선을 정해 주는 까닭이다. 이슬람 교리를 짓밟는 짓을 했다가는 아무리 강한 권력자라도 살아남기 어렵다.

이번 아프간 피랍 사태도 그랬다. ‘여성은 보호한다’는 이슬람 교리는 향후 예상되는 잔혹한 행위를 막는 브레이크 역할을 했다. 이슬람은 1000년이 넘는 세월을 거치면서 ‘아랍의 정체성’으로 굳어졌다. 동북아시아에서 유교 윤리가 질서를 잡는 ‘무게 추’ 구실을 한다. 아랍에서는 이슬람이 그렇다.

아랍권에 대한 우리 기독교계의 ‘선교’가 도마에 올랐다. 100여 년 전, 차별과 비리가 판치던 조선 사회에서 기독교는 평등과 개화(改化) 그 자체로 다가왔다. 하지만 아랍 세계에서 기독교는 어떤가? 십자군 전쟁(11세기 말∼13세기 말 서유럽 그리스도교도들이 이슬람교도들로부터 성지 팔레스티나와 성도 예루살렘을 탈환하기 위해 벌인 원정) 이후 기독교는 줄곧 아랍 세계의 침략자였을 뿐이다.

한 사회에 종교가 뿌리 내리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이슬람의 금식 기간인 ‘라마단’과 유별난 절제 및 금욕 생활은 사막의 척박함과도 맞닿는다. 한 남자가 부인을 여럿 두어도 되는 데는 숱한 전쟁 과부들을 돌보려는 목적이 있다. 이슬람은 오랜 세월 동안 아랍 세계의 필요와 정서에 맞는 문화로 자리 잡았다. 한국의 기독교 신앙이 과연 아랍에서 이슬람을 대신할 수 있을까?

물론 기독교계는 대부분 자신들은 순수하게 ‘봉사’할 뿐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아랍인들을 보듬고 마음을 풀어주어야 할 기독교인들은 우리가 아니다. 역사를 통해 약탈과 침략을 일삼았던 서구의 기독교인들이 할 몫이다. 진정한 봉사는 도움을 받는 이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서 시작된다. 우리 기독교계의 ‘봉사’가 안타까운 이유다.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철학박사 timas@joongdo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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