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에게 전화하니 정상곤 잘안다고 해”

  • 입력 2007년 9월 8일 02시 59분


코멘트
정윤재 전 대통령의전비서관이 2003년 3월 부산의 건설업자 김상진 씨에게서 2000만 원의 후원금을 받고 같은 해 12월 발급한 영수증. 정 비서관은 당시 100만 원짜리 영수증 20장을 김 씨에게 끊어 줬다. 검찰은 이 사실을 미리 알았지만 정치자금법 공소시효가 지난 사안이어서 정 전 비서관을 조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정윤재 전 대통령의전비서관이 2003년 3월 부산의 건설업자 김상진 씨에게서 2000만 원의 후원금을 받고 같은 해 12월 발급한 영수증. 정 비서관은 당시 100만 원짜리 영수증 20장을 김 씨에게 끊어 줬다. 검찰은 이 사실을 미리 알았지만 정치자금법 공소시효가 지난 사안이어서 정 전 비서관을 조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건설업자 김상진 씨가 정윤재 전 대통령의전비서관에게 정치후원금 2000만 원을 건넨 직후 기술보증기금(기보)으로부터 44억2000만 원의 대출보증을 집중적으로 받아낸 것이 드러남에 따라 정치자금과 대출 보증의 연관 여부에 의혹이 쏠리고 있다. 또 김 씨가 “(정 전 비서관보다) 더 많은 돈을 준 사람이 있다”고 말해 파문은 증폭되고 있다.

▽“더 많은 돈을 준 사람이 있다”= 김 씨는 7일 방송된 SBS와의 인터뷰에서 “열린우리당이 갈라질 때 윤재가 사무실을 구해야 되는데 돈이 없다고 해 2000만 원을 2003년 초에 송금해 줬다”면서 “통장으로 송금했으며 영수증 처리했고 정상적으로 했다”고 말했다.

그는 “사업하는 사람이 돈 줬다고 도와달라고 하는 그런 짓은 하지 않는다”면서 “그보다 더한 돈을 제3자에게 준 적이 있지만, 먹고 입 닦아도 두말 안 했다. 몇 년 지나니까 그 양반이 미안해서 전화를 하더라”고 말했다.

세무조사 무마 청탁에 대해서는 “지난해 7월 세무조사가 진행되자 (정 전 비서관에게) 전화를 했고, 마침 정상곤(전 부산지방국세청장)을 안다고 하더라. 그 친구는 잘 모르면 이야기를 잘 안 해준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며 청탁을 한 사실을 인정했다.

이어 김 씨는 “전화를 했다는데 연락은 없고 (국세청 직원이) 더 파더라. 두 번 전화하고 나서 3일 있으니까 담당 과장에게서 전화가 와서 다음 날 (정 전 청장을) 만나러 갔다”고 정상곤 전 부산지방국세청장을 만나게 된 상황을 설명했다.

한편 김 씨에게 1억 원을 받은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로 지난달 16일 구속 기소된 정 전 청장은 이날 부산지법에서 열린 첫 공판에서 “(지난해 8월 26일) 김 씨를 만나서 식사한 뒤 돈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부탁받은 것은 없다”고 주장했다.

▽왜 하필 그때였을까=부산의 건설 및 금융업계에서는 김 씨의 다른 대출 과정보다 기보 등에서 수십억 원을 대출받은 과정에 더 많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3건의 대출보증은 모두 김 씨가 정 전 비서관에게 정치자금을 건넨 지 두 달 만에 이뤄졌다.

실적이 전혀 없는 업체를 내세워 받아낸 3건의 대출보증은 향후 김 씨의 고속 성장에 버팀목이 됐다.

실제 재향군인회가 김 씨에게 225억 원을 대출해 준 데에는 기보 등에서 받은 대출보증이 발판이 됐다. P사 보증으로 2650억 원의 프로젝트 파이낸싱 대출을 받아낼 수 있었던 것도 마찬가지다.

▽검찰 재검토 시사=정동민 부산지검 2차장은 “김 씨가 지난달 24일 기소되기 직전 정 전 비서관에게 정치자금을 건넸다는 진술을 처음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김 씨는 “정치자금 제공 사실과 기보 대출 신청 사이에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검찰은 정치자금 제공 사실의 범죄 성립 여부만을 검토한 뒤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정 전 비서관을 조사하지 않았다

정 차장은 “기보 관계자들에 대한 추가 조사를 계속하고 있다”며 “이들에게서 정치자금 제공과 대출보증 신청 사이의 관련성에 대한 추가 단서가 포착될 경우 (청탁 대가 관계에 대해) 다시 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다.

여기에는 김 씨의 태도 변화도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6일 검찰에 자진 출두한 김 씨는 7일 사기 및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됐다. 검찰이 둔 혐의를 대부분 그대로 시인한 것이다.

정 차장이 7일 정례기자간담회에서 정 전 비서관 소환 필요성을 묻는 질문에 “필요하면 언제든지 소환 조사가 가능하다”고 자신감을 드러낸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정 차장은 6일까지 정 전 비서관 소환조사 전망에 대해 “아직 말씀드릴 수 없다” 등의 형식적인 대답을 반복했다.

▽주목되는 김 씨의 ‘입’=검찰은 계좌추적 결과 현재까지 김 씨 지인 등의 명의로 된 차명 비자금 계좌 5개를 찾아낸 것으로 알려졌다.

계좌추적을 통해 파악해 가는 김 씨 비자금의 실체는 각종 특혜 대출 및 로비 의혹의 핵심인 김 씨의 자백을 받아내야 할 검찰에는 가장 효과적인 압박 수단이다.

막대한 수익을 거둘 것으로 기대되던 부산 연제구 연산8동과 수영구 민락동 개발 사업이 모두 수포로 돌아가게 된 상황에서 김 씨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돈’일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부산=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

윤희각 기자 toto@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