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경기]서울 가는길 숨막힌다<상>

  • 입력 2007년 4월 25일 06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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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 시민 100명 중 46명, 성남 시민 100명 중 35명, 인천 시민 100명 중 13명…. 인천 경기 권역에서 출퇴근하는 시민 중 매일 서울로 향하는 사람들의 비율이다. 1기 신도시가 건설된 지 15년이 넘었지만 서울로 오가는 수도권 시민들의 출퇴근길은 여전히 멀고 먼 고생길이다. 서울보다 요금은 비싸도 버스가 제때 오지 않는 고질병이 여전하기 때문. 버스 이용에 대한 경기, 인천 지역 주민들의 불평은 왜 멈추지 않는지 2회에 걸쳐 원인과 현황을 진단한다.》

“앉아서 가봤으면 ”… 고달픈 ‘ 짐짝버스’

▽돈 안 드는 노선조정도 못하나?=출근 인파가 절정에 이른 17일 오전 7시 반 고양시 일산동구 마두역에서 서영봉(43) 씨는 서울시청행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서울시청까지 몇 정거장 거치지 않고 직행하는 1000번 광역버스가 정류장에 들어왔지만 그는 시선도 주지 않았다. 그는 1000번보다 많은 정류장을 거쳐 에둘러 가는 9708번을 기다린다고 했다.

서 씨는 “1000번 버스가 마두역에 닿을 때면 이미 앞선 정류장에서 승객이 많이 타서 서서 간다”며 “4년 출퇴근하면서 (평균 20분 정도는 더 걸려도) 다른 버스를 타는 게 덜 피곤하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말했다.

마두역 이후의 정거장을 이용하는 시민들은 출근시간대만이라도 1000번이 몇몇 정거장을 번갈아 건너뛰고 정차하는 방식으로 운영되면 앉아서 출근하기가 힘든 경우는 줄어들지 않겠느냐며 수년째 고양시에 민원을 제기하고 있다.

강남으로 향하는 유일한 노선 9700번이 들어오자 시민들이 우르르 몰려갔다. 하나뿐인 강남행 노선인 데다 한번 놓치면 20∼30분은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장모 씨는 이 장면을 냉소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여의도로 출근하는 그는 “강남 노선은 한 개라도 있지만 일산의 중심인 이곳에 여의도 노선은 아예 없어 영등포 쪽으로 나가서 갈아타고 다닌다”며 “다섯 개나 되는 영등포 노선 중 하나를 여의도로 돌리면 왜 안 되느냐”고 반문했다.

이에 대해 고양시는 “건너뛰기 운행은 기다리는 시민들의 불만이 더 커지는 부작용이 우려되고 영등포 노선을 여의도행으로 돌리면 기존 운행 지역 주민들의 반발 때문에 어렵다”고 말했다.

▽꼬부랑 노선은 언제 펴지나?=인천 연수구청∼서울 강남역을 오가는 9200번 광역버스를 타고 서울로 출퇴근하는 인천시민 장철홍(37·회사원) 씨는 요즘 출퇴근길이 더 짜증스럽다.

1일부터 버스 요금이 2200원으로 10% 올랐지만 배차간격은 여전히 들쭉날쭉하고 서비스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기 때문.

양재역 부근에 있는 회사에 오전 9시까지 출근하려면 장 씨는 매일 오전 6시 반 이전에 이 버스를 타야 한다.

오전 6시 반이 넘으면 20분인 버스 배차간격이 지연되고 이용객이 몰려 줄을 서서 기다리는 데다 운행시간도 20분 이상 더 걸린다.

운행구간도 문제. 연수구청에서 출발한 버스는 5분 거리에 있는 제2경인고속도로로 곧바로 진입하지 않는다.

남구 용현동과 학익동을 경유하는 등 시내를 20분 이상 돌면서 좌석을 다 채우고 서서 가는 승객 10∼15명을 태우고서야 위험천만하게 고속도로로 들어선다. 퇴근길에 이 버스는 ‘콩나물시루’로 바뀐다.

지난해부터 퇴근길 운행구간이 변경됐기 때문. 강남역에서 곧바로 양재역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예술의 전당과 법원 앞, 교대역을 거치기 때문에 양재역에서는 좌석이 없어 인천의 집까지 거의 매일 서서 귀가한다.

장 씨는 “승객을 더 태우려고 인천과 서울의 시내구간을 거치지 않는다면 운행시간이 30분 이상 단축될 것”이라며 “광역버스가 빠르게 오갈 수 있는 노선을 많이 신설하면 좋겠다”고 한숨을 쉬었다.

▽결론은 핑퐁=2000년 이후 경기지역에서는 버스 이용객이 연평균 5.2% 늘어 연간 8억5000만여 명에 이른다. 인천은 매년 12.4%가 늘어 연평균 이용객이 2억8000여만 명이다. 이처럼 버스 이용객은 계속 늘지만 이용객이 선호하는 광역버스 노선은 좀처럼 늘지 않는다.

경기도 관계자는 “서울 진입이 빠르고 자가용 수요를 줄이는 광역버스의 노선 증설을 서울시에 요구해도 서울시가 동의하지 않는 경우가 훨씬 많다”며 서울시를 탓했다. 실제로 1998년 이후 경기도가 서울시의 노선증설 요구에 응해 준 것은 평균 46%지만 서울시가 경기도의 요구를 받아 준 것은 절반인 23.2%에 불과했다.

인천시 관계자는 “인천의 광역버스 증차 요구에 경기도 역시 반대하는 경우가 많아 불편을 겪는다”고 말했다.

지자체마다 광역버스 노선 증설의 필요성을 절감하면서도 실제로는 서로 상대의 노선 증설에 반대하는 모순이 발생하는 이유는 지역 버스업체의 이해관계를 고려하기 때문이다. 타 지역 버스가 운행하면서 자기 지역 버스의 수익률이 낮아지면 민원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서울시는 준공영제를 도입해 경기, 인천과는 달리 세금으로 버스업체의 손실을 보전해 주다 보니 경기, 인천 지역 버스가 대거 유입되면 서울시 차원의 버스정책이 제대로 먹혀들지 않고 혼선을 빚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버스 노선 하나 만드는 데도 이처럼 각 자치단체의 주장이 엇갈리고 통합적인 운영방식이 개발되지 않아 서울, 경기, 인천을 넘나들며 고난의 삶을 살아가는 서민들의 ‘짐짝버스 인생’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고양=이동영 기자 argus@donga.com

인천=황금천 기자 kchwang@donga.com

이현두 기자 ruchi@donga.com

▼버스 준공영제, 서울시는 효과봤지만…▼

서울 시민들은 경기, 인천 사람들이 겪고 있는 출퇴근 교통난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시가 버스 준공영제를 도입해 회사들의 원가, 운행거리 등을 고려해서 보전해 준 후의 변화다. 서울시는 준공영제를 바탕으로 승객이 적은 구간에도 버스노선을 만들고 출퇴근 시간대에는 집중적으로 배차하며 굴곡 노선은 직선화하는 작업에 성공을 거뒀다.

버스 회사는 시에서 손실을 보전받기 때문에 버스운전사가 손님을 더 싣기 위해 과속이나 난폭운전을 하는 일은 현저히 줄었다. 시민에 대한 서비스로서 버스 준공영제의 위력이 발휘되는 대목이다.

준공영제 시행을 위해 서울시가 지난해 업체에 지불한 보전 금액은 2267억 원에 이른다. 서울시는 서비스가 향상되는 데 따라 승객들의 주머니에서 나와야 할 요금을 사실상 세금으로 대신 내 주는 이 제도를 통해 이용객과 업체를 만족시키는 준공영제를 계속 추진할 계획이다.

그러나 경기도는 이와 다른 생각이다.

조응래 경기도 버스개선추진단장은 “경기도는 서울보다 면적이 훨씬 넓어 버스 운행에 따른 손실을 보전해 주려면 서울보다 몇 배 많은 세금을 들여야 한다”며 준공영제 도입에 반대했다.

조 단장은 “결국 시민의 주머닛돈을 갹출하게 되는 준공영제보다는 그 예산을 광역 철도 건설에 투입해 더욱 효율적인 교통수단 개발에 힘쓰는 게 지역 여건에 맞다”고 말했다.

문제는 돈이다. ‘광역철도건설’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경기도와 달리 준공영제 도입을 결정하고 시범 추진을 해 왔던 인천시는 결국 막대한 예산을 버스회사에 주는 게 타당한지를 검토하는 단계에서 사실상 준공영제를 포기한 상태다.

결국 자치단체장이 교통문제를 어떤 방식으로 풀어나갈지, 어떻게 결정하느냐에 따라 수도권 도시에서 버스를 이용해 출퇴근하는 시민들이 겪어야 하는 불편의 종류와 부담 정도는 달라진다.

수천억 원의 예산을 개인기업인 버스업체에 지원해서라도 시민의 편의에 맞게 노선을 늘리고 배차시간을 줄이는 게 현실적인 방법인지, 그 돈으로 대체 교통수단을 만들어 장기적인 편리를 추구하는 게 더 나은 선택인지 경기도와 인천시의 행정적인 판단이 남았다.

이동영 기자 arg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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