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문맹 갈수록 심각

  • 입력 2007년 3월 12일 18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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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대 인문계열 07학번인 김모(19) 양은 6일 1학년 교양 필수과목인 '교양국어' 수업에 들어갔다가 수업시간 내내 고개를 들지 못했다.

담당교수인 이명학(사범대학장) 한문교육학과 교수가 한자능력을 시험하겠다며 내준 18개 문항 가운데 단 2개 문항만 답을 제대로 적었기 때문.

자신의 이름을 한자로 쓰는 1번 문항에선 다행히 이름이 순한글인 덕분에 성(姓)인 '김(金)'자만 적으면 됐다. 부모의 성함을 한자로 쓰라는 2번 문항에선 비교적 쉬운 한자로 된 아버지 성함은 적었지만, 어머니 성함은 성인 '고(高)자'만 적고 이름은 비워둘 수밖에 없었다.

'신입생'을 한자로 쓰는 문항에선 '○○生'이라 썼다. '대학교(정답·大學校)'는 '大字利(대자리)'로, '지하도(정답·地下道)'는 '土下○(토하○)'이라고 답을 적어 냈다.

한자로 써 있는 5개 단어를 한글로 읽는 문항에는 아무런 답도 하지 못했다. 답답한 마음에 시험지에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나타내는 이모티콘인 'ㅜ,ㅜ'만을 적었다.

김 양은 인문계 고교에서 전교 5등 안에 들 정도로 상위권이었으며 수학능력시험에서 500점 만점에 453점(원점수 기준)을 받았다. 언어영역과 외국어영역은 1등급, 수리영역은 2등급이었다.

이 교수가 6, 7일 이 대학 신입생 384명을 대상으로 한자능력을 시험한 결과 자기 이름을 한자로 쓰지 못한 학생이 78명으로 전체의 20%에 이르렀다.

아버지 성함을 한자로 쓰지 못한 학생은 295명으로 77%, 어머니 성함을 쓰지 못한 학생은 317명으로 83%에 달했다.

특히 이름에 있는 '은혜 은(恩)'자를 '생각 사(思)'자로 잘못 쓰거나, 자기의 성인 '송나라 송(宋)'자를 '글자 자(字)'로 쓰는 사례도 있었다.

'준걸 준(俊)'자는 '뒤 후(後)'자로, '영화 영(榮)'자는 '힘쓸 로(勞)'자로, '공훈 훈(勳)'자는 '움직일 동(動)'자로 잘못 쓴 학생이 적지 않았다.

백과사전(百科事典)을 한자로 쓰는 문제에선 무려 98%(376명)가 정답을 적지 못했다. 경제(經濟)의 오답률은 96%(369명), 시계(時計)는 92%(354명)에 달했다. 가장 많은 학생이 한자로 적은 단어는 대학교(大學校)지만 이 또한 40%인 155명만이 정답을 맞췄다.

한자를 한글로 읽는 독음(讀音) 문제에선 상황이 더 심각했다.

'折衷(절충)'을 올바르게 읽은 학생은 384명 중 단 3명(1%)뿐이었다. '榮譽(영예)'는 16명(4%), '抱負(포부)'는 27명(7%), '信仰(신앙)'은 48명(12%), '變速(변속)'은 57명(15%)만이 제대로 읽었다.

이 교수는 "한자를 배우지 않은 한글세대임을 감안하더라도 자기 이름조차 한자로 쓰지 못하는 학생이 20%나 된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며 "전공용어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중고교의 한문교육을 정상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혜진기자 hyej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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