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공소장 변경 요구해도 검사가 거부 땐 바꿀 수 없어

  • 입력 2007년 1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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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항소심 선고가 연기된 에버랜드 사건의 공판조서 허위 작성 의혹은 ‘공소장 변경’을 둘러싸고 재판부와 검찰이 신경전을 벌이는 과정에서 불거졌다.

법원은 검사가 공소 제기(기소)할 때 제출한 공소장에 적힌 범죄 혐의에 대해서만 재판을 하기 때문에 재판 도중에 공소장을 고치는 문제는 유무죄 판단은 물론 선고 형량과도 직결되는 중요한 사안이다.

그래서 법원과 검찰은 과거에도 공소장 변경 문제를 놓고 종종 충돌했다.

2001년 1월 경기은행 측으로부터 1억 원을 받은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로 구속 기소된 임창열 전 경기도지사의 항소심 공판 과정에서 재판부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추가해 달라고 공소장 변경을 요구하면서 검찰과 갈등을 빚은 일은 대표적인 사례.

▶본보 2001년 1월 19일자 A1면 참조

▶ 법원 공소장 변경요구 검찰 반발

당시 검찰은 “법원이 벌금형 선고가 가능한 정치자금법 위반죄를 적용해 임 지사가 지사 직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라며 ‘법원의 임 전 지사 봐주기’ 의혹까지 제기하며 이를 거부했다.

결국 공소장 변경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재판부는 같은 해 2월 임 전 지사의 알선수재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이 사례처럼 공소장 변경은 재판부가 검사에게 요구할 수는 있지만, 검사가 법원의 요구를 따르지 않을 수 있다. 재판부의 변경 요구에 검사가 응하더라도 검사는 법원에 변경 신청을 한 뒤 허가를 받는 절차를 반드시 밟아야 한다.

이번 에버랜드 사건 항소심 공판에서도 재판부가 먼저 공소장 변경을 신청을 요구하는 비슷한 상황이 벌어진 셈.

그리고 공소장 변경은 원칙적으로 검사가 서면이나 구두로 신청하고 법원이 허가하는 절차를 거치게 돼 있다.

한편 에버랜드 사건 공소장에 새로 포함된 내용은 검찰이 결심공판 당일 재판부에 제출했던 의견서의 일부인 것으로 알려졌다. 의견서는 공소 사실을 세부적으로 설명하거나 법리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제출하는, 말 그대로 보충적인 서류일 뿐이다.

검찰이 의견서 형태로 제출한 것 자체가 굳이 공소장을 변경해 공소사실에 넣겠다는 의사를 갖고 있지 않았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

■ 삼성 에버랜드 사건은

“CB 저가발행 경영권 편법 승계 의혹” 2000년 고발돼
검찰 수사도 재판도 소걸음… 이달 항소심 선고도 연기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CB) 저가 발행 사건’은 1996년 삼성그룹의 비상장 계열사인 에버랜드가 CB 저가 발행 방식을 통해 이재용 씨 등 이건희 그룹 회장의 자녀들에게 에버랜드 지배권을 갖게 했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삼성그룹은 ‘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에버랜드’로 이어지는 이른바 순환식 지배구조를 갖고 있어 에버랜드의 대주주가 곧 그룹 전체의 지배권을 갖는다.

시민단체들은 삼성그룹 고위층이 경영권 편법 승계를 위해 CB의 발행과 대량 실권, 제3자 재배당이라는 일련의 과정을 치밀하게 실행했다는 의혹을 제기해 왔다.

2000년 6월 법학교수 43명은 이 회장 등 삼성그룹 전현직 임원 33명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주임 검사가 6번이나 바뀌는 곡절을 거쳐 검찰은 3년 가까이 지난 2003년 4월 본격 수사에 나섰고, 같은 해 12월 1일 에버랜드의 전현직 사장인 허태학, 박노빈 씨를 불구속 기소했다. 공소시효(7년) 만료를 하루 앞둔 시점이었다.

두 사람의 혐의는 이재용 씨에게 969억 원 상당의 이득을 준 반면 회사에는 그만큼의 손해를 끼쳤다는 것.

이후 법원의 재판도 ‘소걸음’이었다. 재판부가 정기 인사로 교체되거나 사표를 제출하는 과정을 거쳐 2005년 10월 1심 재판부는 허, 박 씨에게 각각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검찰은 이후 나머지 피고발인 31명에 대한 본격 조사에 착수했으며, 지난해 8월부터는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과 이학수 삼성그룹 부회장 등 고위층 소환조사에 나섰다.

이 회장을 소환조사할지, 기소할지는 허, 박 씨에 대한 항소심 재판 결과를 보고 나서 결정하기로 미뤄놓았다.

그런 와중에 18일로 예정됐던 항소심 선고가 연기됐고 검찰 수사도 지연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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