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철 추모소설 쓰고 숨진 동창생

  • 입력 2007년 1월 12일 17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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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평생 동안 중학교 친구였던 고 박종철 씨에 대한 마음의 빚을 갖고 있었어요."

책을 쓰다듬는 이금영(40·여) 씨의 표정에는 남편에 대한 그리움이 가득했다. 이 씨의 남편 김진용(작고·41) 씨는 지난해 간암으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박종철 씨 20주기 추모 소설 '상한 갈대' 출간에 매달렸다.

이 책은 대기업 회사원이 소설가로 변신해 서울대생 박종철 씨 고문치사 사건을 관련자 각각의 시각에서 재조명한다는 자전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김 씨는 숨진 박 씨의 영남제일중학교(현 영남중) 동기. 김 씨는 중학교 3학년 때 박 씨와 한반에서 공부했다.

이 씨는 "남편은 숨진 박 씨가 혼자 남아 교실에서 정태춘의 '촛불'을 부르던 일, 남편이 잃어버린 공책을 찾아줬던 일, 서로 그림을 함께 그리며 대화를 나누던 일을 이야기하곤 했다"고 말했다.

부산대 경제학과에 진학한 김 씨는 도서관에서 1987년 1월 17일 본보 기사를 보고 박 씨의 죽음을 알게 됐다.

김 씨는 소설에서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어 신문에 얼굴을 묻고 소리 죽여 울었던 잊을 수 없는 날"이라고 당시 심경을 묘사했다.

하지만 고등학교 시절 부모를 여위고 친척들의 도움을 받던 그는 심정적으로만 운동권 학생들에게 동조할 뿐, 직접 거리로 나서지 못했고 이런 대학시절은 평생 그에게 마음의 빚으로 남았다.

대기업에 다니던 김 씨는 외환위기 당시 보증을 잘못 서 회사를 그만둔 후부터 본격적으로 소설을 구상하기 시작했고 2005년 간암 판정을 받고 본격적으로 집필에 착수했다.

집필에 몰두하던 김 씨는 병세가 급격히 악화돼 지난해 11월 4일 아주대 병원에 입원했다. 부인 이 씨는 남편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기 함께 표지를 정하고 밤을 새며 교정을 봤다.

하지만 김 씨는 17일 발간된 책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떴다.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 소설이 나온 것은 3일 후.

김 씨는 책에서 "무모하게 시작했고 그만둘 수가 없어 눈물과 땀을 쏟으며 매달렸다"며 "그의 불꽃같은 삶과 죽음이 남긴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것이 사건의 끝일 것"이라고 여운을 남겼다.

장원재기자 peacechao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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