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고전여행]에리히 프롬 ‘소유냐 존재냐’

  • 입력 2007년 1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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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아내의 구박을 견디지 못해 집을 나간 조선의 선비를 알고 있나요? 그 사람은 조선 경제를 뒤흔든 장사의 달인이자, 지독한 책벌레이기도 합니다. 한때 묵적골에 살았다고 하는데요,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 있나요? 그 사람은 50만 냥은 바다에 던지고, 40만 냥은 가난한 사람을 돕는 데 쓰고, 나머지 10만 냥은 자신에게 1만 냥을 빌려준 사람에게 모두 줘버린 사람입니다. 이쯤 되면 무릎을 탁 치면서 그 사람 이름을 외치고 있을지도 모르겠는데요, 그 사람은 바로 ‘허생전’의 주인공 ‘허생’입니다. 도대체 어떤 생각을 지녔기에, 백만 냥이라는 어마어마한 돈을 쉽게 떨쳐버릴 수 있었을까요? 여기서 잠깐 허생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합시다.

“많은 재물이 나에게는 오히려 재앙과 같소이다.”

허생이 왜 그처럼 쉽게 돈에 대한 욕심에서 벗어날 수 있었는지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서양에도 허생과 비슷한 생각을 품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자유로부터 도망가지 말라고 외쳤던 독일 출신의 사상가 에리히 프롬인데요, 오늘은 여러분과 함께 그의 책, ‘소유냐 존재냐’ 속을 거닐어 볼 겁니다. 정신 바짝 차리고 읽어야만 허생과 프롬의 닮은 점을 찾을 수 있으니, 지금부터는 온 정신을 이곳에 쏟기 바랍니다.

프롬의 얘기를 한 마디로 줄이면, “우리 모두 똑바로 삽시다”입니다. 웬 뚱딴지 같은 소리냐고요? 여러분, 정말 미안합니다. 300쪽에 이르는 책 ‘소유냐 존재냐’에서 프롬이 입이 마르고 닳도록 외치고 있는 이야기는 바로 “똑바로 살자”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사는 것이 똑바로 사는 것일까요?

사람이 살아가는 방법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고 프롬은 말합니다. 그 중 하나는 바로 ‘소유하면서 살기’이고요, 다른 하나는 ‘존재하면서 살기’입니다.

‘소유’라는 말은 아마 여러분도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지금 곰곰이 생각해 보세요. 자신은 지금 몇 벌의 옷, 몇 켤레의 신발, 몇 권의 책, 어느 정도의 먹을거리, 그리고 얼마의 용돈을 가지고 살고 있는지에 대해서요. ‘가지고 있음’을 두 글자로 줄이면 ‘소유’가 되는데요, 여러분과 마찬가지로 모든 사람은 무엇인가를 소유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것을 끊임없이 소비하면서 살아가고 있기도 하지요. 먹을거리, 옷과 전자 제품, 그리고 돈을 끊임없이 소비하면서 살아가고 있지요. 이처럼 무엇인가를 소유하고, 소비하고, 다시 소유하려고 애쓰면서 살아가는 것이 바로 프롬이 말한 ‘소유하면서 살기’입니다. 어때요, 별것 아니지요? 그렇다면 ‘존재하면서 살기’는 무엇일까요?

어느 한 마을에 컴퓨터를 아주 잘 만드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 사람이 아주 멋진 컴퓨터를 만들었습니다. 컴퓨터를 만든 사람과 그 사람이 만든 컴퓨터는 서로 같을까요, 다를까요? 컴퓨터를 만든 ‘사람’과 그가 만든 아주 멋진 ‘컴퓨터’는 분명히 서로 다릅니다. 컴퓨터를 만든 사람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고, 다른 사람과 특정한 관계를 맺을 수도 있습니다. 또한 그 사람은 더 행복해지기 위해서 노력할 수 있으며, 더 가치 있는 삶을 살기 위해 다양한 활동도 펼칠 수 있습니다. 나아가 다른 사람을 돕고 배려하며, 사랑하면서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만든 컴퓨터는 그렇게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지요. 다시 말해서, 그 사람은 물건이 아니라 ‘인간’이기 때문에 자신이 지닌 훌륭한 능력을 맘껏 발휘하면서 살아갈 수 있지요. 이처럼 사람이 자신의 가치를 온전히 발휘하면서 다른 사람과 더불어 평화롭게 사는 것이 바로 ‘존재하면서 살기’입니다. 어때요, 역시 별것 아니지요?

프롬은 두 가지 삶의 방식 중에서 어느 한 가지만 가지고서는 제대로 된 삶을 살 수가 없다고 말합니다.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지닌 사람이라도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만큼의 먹을거리나 재산을 ‘소유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살 수 없고, ‘존재하면서 살려고 열심히 노력하지 않는다면’ 사람‘다운’ 삶을 살 수가 없기 때문이지요. 다시 말해, 인간이 잘 살기 위해서는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소유와 잘 살기 위한 최대한의 존재’가 필요한 셈입니다. 이처럼 꼭 필요한 만큼의 소유와 풍부한 존재를 바탕으로 사는 것이 ‘똑바로’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많은 사람이 똑바로 살지 않고 있다고 프롬은 외칩니다. 왜냐하면 현대 사회에는 다음과 같은 공식(?)이 뿌리 깊이 박혀 있기 때문입니다.

“나(사람) = 내가 가진 것 + 내가 소비하는 것”

위 공식에는 ‘존재’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습니다. 위 공식에 나타난 ‘나(사람)’는 온통 소유로 채워져 있으니까요. ‘나’가 오직 소유만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은 정말 커다란 재앙입니다. 왜냐하면 ‘나’가 지구를 파괴하고도 남을 정도의 욕심을 지닌 이기적인 동물로 변해 버리고 말았으니까요. 그리고 ‘나’가 사람다운 삶을 살지 못하고 물질의 노예가 되어 버렸으니까요. 여러분은 현대 사회에 깊이 박혀 있는 공식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겠습니까, 아니면 능동적으로 새로운 공식을 만들겠습니까? 여러분은 더 많이 소유하고 싶습니까, 아니면 풍부하게 존재하고 싶습니까?

혹시 허생과 프롬의 닮은 점은 찾았습니까?

황성규 학림 필로소피 논술 전문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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