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하지스 할머니 “내 심장의 반은 한국 아이들 몫”

  • 입력 2006년 10월 25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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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심장병 어린이 3057명에게 새 생명을 선물해 준 미국인 해리엇 하지스 씨가 24일 서울 마포구 홀리데이인서울호텔에서 심장병 어린이 돕기에 나선 과정을 회고하고 있다. 김미옥 기자
한국의 심장병 어린이 3057명에게 새 생명을 선물해 준 미국인 해리엇 하지스 씨가 24일 서울 마포구 홀리데이인서울호텔에서 심장병 어린이 돕기에 나선 과정을 회고하고 있다. 김미옥 기자
“한국을 떠난 10년 동안 내 마음(my heart)의 절반은 항상 한국 아이들에게 있었어요.”

35년간 한국의 심장병 어린이 3057명을 미국에 데려가 수술받게 해 준 ‘천사 할머니’ 미국인 해리엇 하지스(92·여) 씨는 24일 오후 6시 반 한국국제문화교류협회(회장 김봉식)가 주최한 환영만찬에서 8세 때 수술을 받았던 박지연(28) 씨의 손을 꼭 붙들었다.

“아이들을 볼 때마다 내 일부, 내 아이 같아요. 다들 자식이 있을 정도로 커버렸지만 수술 전 내 손을 붙잡으며 떨던 그 얼굴이 보여요.”

박 씨는 “검사가 끝날 때마다 할머니가 나를 안고 눈물을 글썽이며 ‘괜찮아. 지금은 아프지만 곧 나을 거야’라고 다독거려줘 외로움을 견딜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스 씨는 이런 공로로 9월 ‘일가상’을 받았다. 일가상은 농촌 발전을 위해 헌신한 일가(一家) 김용기 선생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1992년 제정돼 사회 공헌의 업적이 많은 내외국인에게 주는 상이다.

그가 한국에서 심장병 어린이를 돕기 시작한 것은 1972년부터.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기구 초대 사무총장으로 부임한 남편(캐롤 하지스·2003년 작고)을 따라왔다.

남편이 유엔군으로 처음 한국에 왔던 6·25전쟁 당시와는 많은 것이 달라졌다.

“전쟁의 폐허는 사라졌지만 입술이 창백한 아이들이 눈에 많이 띄었어요.”

서울 용산구 미8군기지 식당에서 자주 점심을 먹었던 남편의 귀띔에 그는 식당 요리사의 딸 이선옥(당시 13세) 양이 선천성심장병에 걸린 것을 알게 됐다.

그는 곧장 이 양을 미군부대 내 병원에서 진단을 받게 했다. 그리고 사비를 털어 이 양을 미국으로 데려가 병원과 복지단체를 주선해 무사히 수술을 마치게 했다.

하지스 씨는 이후 아이들이 파란 입술을 하고 창백하게 앉아있는 모습이 잊혀지지 않아 아이들을 돕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그는 1972년 11월 국제민간협력기구의 지원을 받아 ‘한국심장회’를 발족시켰다. 병원비와 여비 등은 서울과 뉴욕의 로터리클럽과 주한미군부인회의 모금, 뉴욕 교포들의 ‘새생명회’ 기금 등으로 충당했다.

하지스 씨는 “내가 한 일은 수술이 필요한 전국의 심장병 어린이들의 신청을 받아 미국에서 수술받을 수 있도록 주선하는 일뿐이었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그렇게 시작한 사업은 미국으로 다시 건너간 1995년 이후에도 계속됐다. 그는 2003년 마지막 한 명의 어린이까지 총 3057명의 어린이에게 ‘심장’을 선물했다.

그러나 ‘천사’도 나이가 들었다. 9월 일가상 수상식에는 무릎 수술 때문에 한국을 방문하지 못하다가 18일 뒤늦게 입국했다. 이번 방한도 마지막으로 한국을 돌아보고 싶다는 그의 강한 의지로 실현됐다.

2003년 이후 건강 때문에 사실상 은퇴한 상태지만 하지스 씨는 “아직도 아이 세 명이 미국에 와 수술을 기다리고 있다”라며 주름진 손을 움켜쥐었다.

하지스 씨는 심장병 수술을 받았던 ‘어린이’들을 두루 만나본 뒤 31일 미국으로 돌아간다.

최우열 기자 dns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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