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논술비타민]논술에 대한 오해 풀기(2)

  • 입력 2006년 10월 24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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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 사교육계에서는 개종 운동이 한창입니다. 많은 사람이 ‘논술’이란 새로운 종교로 몰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기도 논술, 저기도 논술입니다. 그동안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글쓰기나 독서 토론을 가르쳤던 프로그램이나 학원이 하나같이 간판을 논술로 바꾸어 달고 있습니다. 대학입시에서 논술이 중요하게 부각되면서 불안감을 떨치기 힘든 부모들은 논술을 잘하지 않으면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기 힘들다고 생각해 미리미리 조기 교육, 선행 학습을 경쟁적으로 시키는 분위기입니다. 초등 논술 때문에 대한민국은 논술 공화국이 된 듯합니다.

그런데 냉정하게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과연 논술도 조기 교육, 선행 학습이 정말 도움이 될까요? 아쉽게도 논술에는 조기 교육, 선행 학습이 적용되기 힘듭니다. 어느 영화 제목을 패러디해 말하면 ‘초등 논술은, 미친 짓이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논술은 사고력을 평가하는 시험이기 때문에 논술을 염두에 둔다면 초등학생도 그 수준에 맞는 사고력 훈련이 꼭 필요하긴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대입 논술 대비를 미리부터 앞당겨 하는 개념의 조기 교육이나 선행 학습이어서는 곤란합니다. 조기 교육이 어학 교육에서는 통용될지 모르지만 그 논리를 그대로 논술에 적용하는 것은 무모한 짓입니다. 그리고 미리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마치 적금들 듯 선행 학습을 시키는 것은 다른 영역에서도 부작용이 심하지만 논술에서는 더 큰 부작용을 낳게 됩니다. 초등학생에게 대입 논술 개념의 논술을 가르치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논술은 보통 글쓰기가 아니고 논증적인 글쓰기입니다. 사태를 기술한다든지 원인을 설명하는 글쓰기도 부분적으로 포함되지만 주도적인 부분은 주장을 제시하고 근거를 들어 정당화하는 논증적인 글쓰기입니다. 따라서 자신의 주장을 명료하게 제시할 수 있고, 나아가 나름의 근거를 합리적으로 댈 수 있는 시기라야 의미 있는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초등학교가 그럴 만한 시기인지 의문이 듭니다. 아직 나름의 주장과 근거를 제시할 만한 때가 아닌데 무리하게 논술을 쓰게 하면, 다른 사람을 흉내 낼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오히려 나름의 사고를 하는 데 방해가 될 수 있습니다. 할 수 없는 것을 억지로 하게 하면 부작용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렇다면 초등학교 때는 어떤 교육이 필요할까요? 이 시절에는 논리적 글쓰기보다는 정서적 글쓰기가 더 중요합니다. 우선 자아 형성을 위해서 정서교육이 중요한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것을 느끼면서 감동받고, 그 감동을 타인과 나누기 위해 표현해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느낀 다음 따질 줄 아는 사람을 길러 내어야 올바른 교육일 것입니다. 그런데 자칫 논술 교육을 조기 교육이란 이름으로 잘못하게 되면 느끼지는 못하면서 따지기만 하는 괴물 같은 인간을 길러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 대입 논술을 잘하기 위해서도 정서적 글쓰기가 먼저 선행되어야 합니다. 나중에 써야 할 형태를 그대로 미리 당겨서 흉내 낸다고 해서 나중에 잘한다는 보장은 전혀 없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법대 지망생에게 법전을 직접 공부하게 하고, 혹은 의대 지망생에게 뼈의 각 부위에 대한 전문 용어를 배우게 해야만 훌륭한 법관과 의사로 성장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때그때 단계에 가장 알맞은 접근을 하는 것이 중요하고 그것이 맞춤식 교육입니다. 그런 점에서 초등학교 시절에는 감상문 쓰기가 중요합니다.

실제 대입 논술 답안에서 가장 취약한 것이 학생들이 나름의 생각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남의 생각을 빌려서 하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이기도 하지만, 나름의 생각이 있지만 잘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왜 이런 문제가 생기는 것일까요? 한마디로 표현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초등학교 시절에는 논리적 표현 이전에 표현 능력 자체를 길러야 하고 그 점에서 감상문 쓰기가 중요합니다. 느낌과 감정은 자신의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감상문을 쓰면서 자신을 표현하는 훈련이 충분히 되면, 나이 들고 경험이 쌓이면서 생각이 자리를 잡고 또 그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논리적 도구를 배울 경우,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표현하는 논술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논술 조기 교육 열풍의 부작용으로 하염없이 책만 읽게 하는 부모님도 가끔 있나 봅니다. 책 읽고 논술을 쓰게 하려니 무리임을 당장 느끼기에 일단 당분간은 이렇게만 하자고 결정한 모양입니다. 그러나 이것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읽기만 하고 끝나면 남는 것이 적습니다. 논술을 쓸 필요는 없지만 읽었으면 느낌을 서로 말해 보고 이를 바탕으로 몇 줄이라도 표현해 보는 과정이 있어야 독서의 의미가 있습니다. 저학년이라면 꼭 글이 아니라도 좋고 그림으로라도 자신의 생각을 표현해 보아야 하고, 가능하면 글로 자신이 느낀 바를 자유롭게 쓰게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논술 조기 교육은 감상문 쓰기입니다. 물론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논리적인 글도 써 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비중을 낮추어서 적절한 수준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는 성서의 교훈은 논술에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그 나이에 맞는 교육이 중요하다는 평범한 진리를 아무쪼록 무시하지 말기 바랍니다.

박정하 성균관대 학부대학 교수·EBS 논술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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