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부수 많은 신문사 규제는 언론자유 침해”

  • 입력 2006년 6월 29일 19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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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을 내린 신문법 제17조 ‘시장지배적 사업자’ 조항은 신문법의 핵심을 이루는 내용이다.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2004년 10월 20일과 12월 31일 신문법 제정을 제안하면서 ‘여론 독과점 심화 해소’를 주요 이유로 내세웠다. 특정 신문의 시장점유율이 높을 경우 여론의 다양성 확보가 어려우므로 정부가 개입해 점유율을 인위적으로 조절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이는 여론 다양성을 명분으로 내세워 동아 조선 중앙 등 정부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는 주류 언론을 차별하려는 정치적 의도로 해석됐다.

이번 헌재의 결정으로 정부 여당의 신문법 입법 의도 자체가 잘못됐음이 분명히 드러났다.

헌재는 오히려 신문사의 복수 소유를 금지한 조항(제15조)에 대해 헌법불합치 의견을 냄으로써 입법자가 의도한 신문시장의 다양화라는 논리를 철저히 배격했다.

신문법은 신문 산업에 한해서 시장지배적 사업자 추정 기준을 강화해 ‘1개 사업자 30%, 3개 사업자 60%’로 규정하고 있다.

헌재는 이 조항에 대해 7 대 2로 “신문의 다양성 보장이라는 입법 목적 달성을 위한 합리적이고 적정한 수단이 되지 못하고 신문사업자의 평등권과 신문의 자유를 침해하여 헌법에 위반된다”고 결정했다.

또 시장지배적 사업자를 신문발전기금 지원 대상에서 배제한 34조에 대해서는 “합리적인 이유 없이 발행부수가 많은 신문사를 차별하는 것은 평등 원칙에 위배된다”고 재판관 전원 일치 결정을 내렸다.

▽다양성 규제는 위헌=헌재는 “시장지배적 지위는 독자의 개별적 정신적 선택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므로 이를 불공정행위의 산물이라고 보거나 불공정행위를 초래할 위험성이 크다고 볼 만한 사정이 없다”고 판단 이유를 밝혔다. 신문의 시장점유율은 독자의 자연적인 선택의 결과이므로 이를 정부가 개입해 인위적으로 조정하려는 것은 헌법에 위반된다는 뜻이다.

시장지배적 사업자를 추정할 때는 시장을 어떻게 정의하며 무슨 기준으로 점유율을 계산하는가가 핵심이다. 신문법은 일반 일간신문과 함께 산업 과학 종교 교육 체육 등 특정 분야에 국한된 주제를 다루는 특수일간신문을 합쳐 전체 신문시장으로 규정하고 있다. 또 발행부수를 기준으로 점유율을 계산하도록 돼 있다.

헌재는 이에 대해 “취급 분야와 독자층이 아주 다른 일반 일간신문과 특수 일간신문 사이에 시장의 동질성을 인정하고 있고, 경향이 서로 다른 신문에 대한 개별적 선호도를 합쳐 하나의 시장으로 묶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판단했다.

또 “발행부수를 기준으로 신문시장의 점유율을 평가하고 있는 점도 불합리하다”고 지적했다. 이는 신문의 영향력이 자본력에서도 나오므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읽느냐만을 기준으로 지배력을 평가하는 것이 불합리하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한편 주선회, 이공현 재판관은 “신문 시장의 독과점은 여론의 왜곡을 초래할 수 있어 일반 상품 시장의 독과점보다 폐해가 훨씬 심각하다”며 신문 시장에 한해 점유율 규제를 강화하는 것은 신문사에 대한 차별이라고 볼 수 없다는 합헌 의견을 냈다.

▽세계에서 유례 없는 점유율 규제=여론 다양성을 명분으로 신문의 시장 점유율을 인위적으로 제한하는 나라는 없다. 미국의 경우 2개 이상 도시에서 발행되는 신문이 6종에 불과할 정도로 지역별 독점이 정착돼 있으며, 일본도 아사히신문을 포함해 3대 일간지가 전국 일간지 시장의 76.8%(2003년 발행부수 기준)를 차지한다.

시장 점유율 제한을 주장하는 쪽에서 대표적인 사례로 인용하는 프랑스도 인수합병에 한해 점유율이 30%를 넘지 못하도록 막고 있으나 실제로 규제하지는 않는다. 정부가 강제로 시장 구조를 조정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문재완(헌법학) 한국외국어대 교수는 소비자들은 신문을 포함해 다양한 매체에서 정보를 얻고 있으므로 신문 산업만 따로 떼어내 점유율을 규제하는 것은 공급자 중심의 사고라고 비판했다.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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