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사법 사상 최초로 성전환자 호적상 성 변경 허가

  • 입력 2006년 6월 22일 14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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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환자의 호적상 성별 정정을 허가하는 대법원의 판단이 사법 사상 처음으로 나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지형 대법관)는 22일 여성에서 남성으로 성전환 수술을 한 A 씨가 호적상 성을 ‘남성’으로 변경해달라며 낸 호적정정신청 재항고 사건과 관련해 성별 정정을 불허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청주지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1993년 1월 성전환자의 성별을 묻는 예비군 중대장의 질의에 ‘호적상 성별정정 불가’라는 회신을 했고 1996년 6월에는 성전환자를 성폭행한 피고인들에게 강간치상죄가 아닌 강제추행죄를 적용하는 등 그동안 성별 정정을 인정하지 않았다.

하급 법원의 판단 잣대로 작용될 대법원의 이번 결정으로 약 3만 명으로 추산되는 국내 성전환증자의 성별정정 청구가 잇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재판부는 "성별을 정정하는 절차를 다루는 법이 따로 마련돼 있지 않지만 성전환 수술을 받아 본래의 성이 아닌 반대 성의 외관을 갖추고 있고 개인·사회적 영역에서 바뀐 성으로 인식되는 사람이라는 것이 명백하다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가 있으며 이것이 공공복리나 질서에 반하지 않다면 전환된 성을 인정해 줌이 상당하다"고 밝혔다.

특히 반대의 성에 대한 귀속감을 느끼며 반대의 성으로 행동하고 성전환증 진단을 받고 정신과 치료를 받아도 증세가 호전되지 않으며 성전환 수술을 받은 뒤 바뀐 성에 따라 활동하며 주위 사람들도 바뀐 성을 허용하고 있다면 사회통념상 성전환이 이뤄진 것으로 봐야 한다고 기준을 제시했다.

재판부는 또 "성전환자에게 호적상 성별란의 기재사항을 바꿔줘도 기존의 신분관계 및 권리의무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며 사회통념상 이름이 성별 구분의 기초가 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성전환자에 대한 호적 정정을 허가하는 경우에는 개명 역시 허가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그러나 손지열·박재윤 대법관은 반대의견에서 "성 변경은 기존의 헌법과 법률이 고려하지 않은 새로운 문제이기 때문에 일반 국민의 의견 수렴, 신중한 토론과 심사숙고 과정을 거쳐 국회가 입법적 결단을 통하여 결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손·박 대법관은 또 "성 변경 요건·절차·효과를 정하는 입법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법원이 성전환 수술을 받은 사람의 호적 정정 허가 신청을 선별적으로 인용한다면 법적 안정성을 크게 해치게 된다"고 덧붙였다.

성하운기자 hawoon@donga.com

사회통념상 성 전환을 평가하는 대법원의 판단 기준

어느 한쪽의 성염색체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 출생 후 성장 과정에서 아래와 같은 조건을 모두 충족하면 법률적으로 성이 바뀌었다는 판단을 할 수 있음.

① 태어나면서 가진 성을 부정하고 반대의 성이 되기를 간절히 바람. 실제 생활에서 반대의 성을 가진 사람으로 행동하고 자신의 신체(성기 포함)도 반대의 성으로 만들기를 원함.

② 정신과에서 성전환증이라는 진단에 따라 치료를 받아도 증세가 호전되지 않음.

③ 의학적 기준에 따른 성전환 수술로 반대 성기 등을 갖춤.

④ 수술 뒤 자신을 바뀐 성을 가진 사람으로 인식하고 외모와 성관계, 직업 등도 그 바뀐 성에 따라 활동함.

⑤ 주위사람들도 그 사람을 성 전환을 인정하고 이해함.

전지성기자 vers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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