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오명철]좋은 스승, 못난 제자

  • 입력 2006년 5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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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경기 성남시 분당신도시에 사시는 고교 은사님이 꽃다발을 들고 회사로 찾아오셨다. 해마다 거르지 않던 설날 세배를 빠뜨렸더니 수소문 끝에 이런저런 ‘마음 고생’으로 못난 제자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몸소 광화문까지 찾아오신 것이다.

제자의 ‘상태’를 확인하신 선생님은 “사람이 누구나 다 그럴 때가 있다”며 자중자애(自重自愛)할 것을 부탁하신 후 총총 분당 가는 버스에 오르셨다. 일주일여 뒤에는 “옛날의 자네로 어서 돌아가게”라는 당부의 글을 보내셨다.

한 달여 뒤 선생님은 다시 한번 꽃다발을 들고 불쑥 회사로 찾아와 제자의 상태를 점검하셨고, 다시 “겨울이 오면, 봄 또한 멀지 않으리(If winter comes, can spring be far behind?)”라는 셸리의 영시를 곁들인 장문의 격려 편지를 보내 주셨다.

선생님의 방문과 편지를 받을 때마다 고교를 졸업한 지 30년이 지나도록 스승을 걱정시켜 드리는 내 처지가 한심하고, 스승의 은혜가 감사해 눈시울이 붉어졌다.

부모님은 좋은 분들이셨으나 그 덕은 보지 못한 편이다. 아버지 어머니는 자식을 전폭 신뢰했으나 그에 걸맞은 지원을 해 주실 형편은 아니었다. 거기에다 아버지는 자식이 대학에 들어가기도 전에 세상을 떠나셨고, 어쩔 수 없이 생활 전선에 나선 마음 약한 어머니 때문에 자식은 초중고교 때는 물론이고 대학 강의실에서까지 빚쟁이들과 맞닥뜨려야 했다.

하지만 인간이 누리는 복(福)의 총량(總量)은 어느 정도 같은가 보다. 부모님 덕을 못 본 대신 학창 시절 은사들에게는 과분한 사랑과 은혜를 입었다.

중고교 시절 담임이셨던 정상실, 박주택, 이연식, 강영봉, 서성천 선생님에게서는 성실과 책임, 예술과 풍류가 인생의 소중한 덕목(德目)임을 배웠다. 학교 졸업 후 지금까지 1년에 두세 차례는 친구들과 함께 선생님들을 찾아뵙는다. 이 중 뒤의 세 분은 이미 작고하셨다. 연락이 끊긴 분도 계시지만 소식이 닿는 댁은 성묘를 가거나 대신 사모님을 찾아뵙는다. 오늘 저녁에도 동창들과 함께 중학 시절 은사 다섯 분을 모시고 조촐한 식사를 대접한다.

담임은 아니었지만 중학 시절 보이스카우트에 들게 해 산(山)을 가르쳐 주신 최익주 선생님과 졸업 후 지금까지 큰형님처럼 돌봐 주신 황수일 선생님의 은혜는 잊혀지지도 않고, 잊을 수도 없다. 또 고3 때 국어를 담당하셨던 김태환 선생님은 ‘책’과 ‘글’에 대한 소양과 관심을 키워 준 분이다. 지금도 글을 쓸 때 선생님을 의식하며 맞춤법과 토씨 등을 고민한다. 이분들이 나를 인정해 주시지 않았더라면 가난과 고생에 치여 과격 사회주의자가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도 가끔 있다.

대학 은사이신 서정우 교수님은 학비 걱정 없이 공부할 수 있도록 3년이나 장학금을 마련해 주셨고 신문기자직에 대한 열정도 키워 주셨다. 졸업논문을 지도해 주신 최정호 교수님은 ‘지성’의 소중함과 ‘문화’의 위대함을 깨우쳐 주신 분이다. 두 분 교수님이 아니었다면 언론인으로서의 나는 결코 존재할 수 없었다.

세상에 ‘나쁜 스승’은 드물다. 오직 ‘좋은 스승’을 발견하지 못한 ‘못난 제자’가 있을 뿐이다. 석가모니 공자 예수 마호메트 등 인류의 역사를 빛낸 정신적 스승들도 ‘괜찮은 자식’이 아니라 ‘훌륭한 제자’들 덕분에 그들의 사상과 업적을 면면히 전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그런 점에서 좋은 스승을 만나는 것은 훌륭한 부모를 만나는 것 못지않게 귀중한 축복이며, 세상의 모든 제자들은 훌륭한 스승을 ‘발견’하는 일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

초중고교를 마친 사람이라면 보통 열두 분의 담임선생님과 교과 담당 선생님을 합쳐 100분에 가까운 은사들을 만났을 것이다. 그 많은 은사 중에서 오늘 스승의 날, 찾아뵙거나 전화 한 통 드릴 은사를 떠올리지 못하다면 이는 전적으로 제자인 당신의 잘못이다.

오명철 편집국부국장 osc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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