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이루어진다]피아니스트 소원이룬 소녀가장 우한나양

  • 입력 2006년 5월 8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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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한나 양이 2일 서울 고려대 구로병원 별관에서 열린 ‘난치병 어린이와 가족을 위한 뻔(fun) 뻔(fun)한 파티’에 초대돼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다. 사진 제공 고려대 구로병원
우한나 양이 2일 서울 고려대 구로병원 별관에서 열린 ‘난치병 어린이와 가족을 위한 뻔(fun) 뻔(fun)한 파티’에 초대돼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다. 사진 제공 고려대 구로병원
우한나(12·경기 안성시 백성초교 5학년) 양은 피아니스트가 되는 것이 꿈이다.

한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눈을 감고 상상한다. 화려한 조명과 많은 관객 앞에서 피아노 연주를 멋지게 마무리한 뒤 박수갈채를 받는 10년 뒤 자신의 모습을….

한나가 피아니스트의 꿈을 키울 수 있는 피아노를 선물로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찾아 왔다.

희귀 난치병 어린이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꿈은 이루어진다’ 행사를 열고 있는 본보와 ‘한국메이크어위시(Make-A-Wish)재단’, ㈜한국야쿠르트 ‘사랑의 손길 펴기회’ 등이 한나의 소원을 들어주기로 한 것.

하지만 한나는 피아노가 아닌 컴퓨터를 원했다.

“멋진 피아노를 선물로 받고 싶지만 동생들이 컴퓨터를 갖고 싶어 해요. 동생들은 피아노를 칠 줄 모르거든요.”

한나에게는 한주(10) 한진(7) 한정(5) 등 여동생이 3명 있다. 장녀인 한나는 동생들의 언니이자 부모 역할을 해야 한다. 엄마는 3년 전 집을 나갔다. 아빠와의 불화 때문이다. 엄마가 한나 곁을 떠난 지 한 달 만에 아빠도 “돈을 벌어 오겠다”며 집을 나갔다. 아빠는 지금까지 아무런 연락이 없다.

한나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모시고 동생들과 함께 18평짜리 연립주택에서 전세로 살고 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몸이 불편해 웬만한 일은 모두 한나의 몫이다.

피아니스트의 꿈을 이룬 날, 우한나 양이 컴퓨터와 전자 오르간을 선물받고 동생들과 함께 기뻐하고 있다.
할머니 이영자(71) 씨는 “할아버지가 지난해 폐암 진단을 받았고 나도 다리가 성하지 않아 몸을 움직이기가 불편하다”며 “빨래며 청소며 집안일은 한나가 다 알아서 한다”고 말했다.

한나도 완치되기 어려운 병으로 병원 치료를 받고 있지만 “친구들이 아는 것이 싫다”며 자신의 병에 대해 말문을 닫았다.

한국메이크어위시재단은 한나가 동생들 때문에 피아노 대신 컴퓨터를 원한다는 말을 듣고 특별한 선물을 하나 더 준비했다.

한나는 어린이날을 앞두고 2일 서울 고려대 구로병원 별관에서 열린 ‘난치병 어린이와 가족을 위한 뻔(fun) 뻔(fun)한 파티’에 초대됐다. 한나는 이 파티에서 피아니스트가 됐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란 곡을 연주한 한나에게 난치병 어린이들과 가족, 의사, 간호사 등 100여 명의 관객은 큰 박수를 보냈다.

맨 앞줄에서 한나의 연주를 지켜보던 할머니와 할아버지 우일용(79) 씨는 눈물을 글썽였다.

객석에서 ‘앙코르’란 외침이 잇따랐다. 쑥스러운 듯 머뭇거리던 한나는 가곡 ‘얼굴’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할머니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다. 할머니는 이내 눈물을 줄줄 흘렸다.

한나는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피아노를 친 건 처음”이라며 “오늘 내 모습이 매일 눈을 감고 상상하던 바로 그 피아니스트처럼 느껴져 꿈을 이룬 것 같다”고 말했다. 한나는 이날 컴퓨터뿐만 아니라 한국메이크어위시재단 측이 ‘깜짝’ 선물로 준비한 전자 오르간도 받았다.

“엄마 아빠가 빨리 우리 곁으로 돌아왔으면 좋겠어요. 동생들이 엄마 아빠를 너무 보고 싶어 해요.”

한나가 이루고 싶은 또 하나의 소원이다.

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백혈병 어린이 가족여행 뒤 병세 호전▼

“소원 성취가 난치병도 낫게 합니다.”

희귀 난치병 어린이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한국메이크어위시재단은 7일 꿈을 이룬 난치병 어린이 가운데 건강 상태가 좋아진 사례들을 소개하며 “소원 성취가 난치병 어린이들의 치료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한국메이크어위시재단에 따르면 두 살 때부터 백혈병을 앓아 병원 치료를 받던 김모(6) 군은 평소 자신이 바라던 바닷가 가족여행의 꿈을 이룬 뒤부터 건강 상태가 빠르게 좋아졌다. 김 군의 가족은 2004년 제주도로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김 군은 아직 완치되진 않았지만 다른 친구들과 함께 어린이집을 다닐 정도로 상태가 나아졌다.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소아정신과 신의진(申宜眞·여) 교수는 “아이들이 자신의 꿈을 이뤄 기분이 좋아지면 세포의 활성도가 좋아지고 약의 효과도 빨리 나타나 건강이 쉽게 회복되는 경우도 있다”며 “시한부 판정을 받은 아이들도 희망을 갖고 나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생명 연장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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