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책없이 줄인 대체복무인력

  • 입력 2006년 4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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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2월 인천 옹진군 자월도 영흥파출소 자월초소에 발령받은 정상철(39) 경장은 전투경찰 1명과 둘이서 섬의 치안을 담당한다. 2004년까지는 초소에 전경 2명이 배치됐으나 지난해부터 1명으로 줄었다. 주민 420여 명이 사는 자월도는 풍경이 아름다워 주말에 500명이 넘는 낚시꾼과 관광객이 몰린다. 치안 수요가 많지만 함께 근무 중인 전경이 외박이나 휴가를 나가면 초소가 비기 때문에 순찰을 포기해야 한다. 정부가 전·의경이나 산업기능요원으로 근무하면 병역 의무를 마친 것으로 인정해 주는 대체복무인력을 2003년부터 단계적으로 줄이는 바람에 지방자치단체와 경찰, 소방서, 중소기업 등이 인력난에 허덕이고 있다. 이에 따라 일선 ‘민생’ 관련 업무에 구멍이 뚫리면서 주민들의 불편이 가중되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지자체와 경찰, 소방서 아우성=2000년과 지난해 대형 산불의 피해를 본 강원 강릉시는 올봄에 더욱 가슴을 졸여야 했다.

시청의 공익근무요원이 2004년 77명에서 지난해 48명으로 줄고 올해는 17명만 배정돼 산불 감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기 때문.

일용직 근로자를 산불감시요원으로 고용하려 했지만 예산 부족으로 포기했다. 강릉시는 대신 산불 가능성이 높은 지역의 주민을 감시 책임자로 지정해 협조를 요청했다.

전주시 완산구청은 올해 공익근무요원 120명을 신청했지만 43명만 배정받았다. 이들은 주로 교통보조 공원관리 산불감시에 투입됐다.

하지만 올해부터 인원 부족으로 차질이 생겨 매일 하던 공원의 화장실 청소를 2, 3일에 한 번으로 줄였다. 산불감시탑에도 1명을 고정 배치하기가 힘들다.

민생 치안을 담당하는 경찰은 사정이 더 심각하다. 경찰청에 따르면 2001년까지 해마다 전·의경 5만2000여 명이 근무했지만 올해는 4만 명 수준으로 줄었다.

대전 중부경찰서 방범순찰대의 경우 의경 정원이 지난해 155명에서 올해 122명으로 줄었다. 3개 소대에 총 108명이 근무 중인데 외박과 휴가 인원을 제외하면 소대별로 25명 정도 남는다. 시위 진압 등 긴급 상황이 생기면 인원이 적어 작전에 애를 먹는다.

경찰청은 전·의경 감축의 문제점을 분석한 최근 보고서에서 “집회 시위에 대한 관리 능력이 떨어져 사회적 혼란을 초래하고, 치안활동 투입 인력 부족으로 민생 치안이 악화될 우려가 크다”며 정부에 충원을 요청했다.

▽입영 대상자 감소가 근본 원인=정부는 2002년 9월 대체복무제를 단계적으로 축소하거나 폐지하기로 결정했다.

대체복무제는 1969년 도입했다. 군이 필요로 하는 인력보다 입영 대상자가 많아서였다. 하지만 1960년 6명이던 합계출산율(가임여성 1명이 평생 낳는 아이의 수)이 지난해 1.16명으로 줄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여기에다 복무 기간이 단축돼 2007년에는 병역자원이 7만 명 모자랄 것으로 예상돼 대체복무인력을 줄이기로 한 것.

이런 결정은 공공 분야뿐 아니라 중소기업에도 영향을 미쳤다. 지난해까지 7개 분야의 대체복무인력을 감축하면서 산업기능요원을 51%나 줄였다.

중소기업협동중앙회가 1월 산업기능요원을 채용한 727개 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업체당 평균 복무 인원이 2003년 3.4명에서 지난해 1.4명까지 줄어 인력난이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산업기능요원을 지난해부터 없애려다가 중소기업이 강하게 반발하자 2012년까지 유지하기로 방침을 바꿨다.

중앙회 관계자는 “산업계의 심각한 인력난을 고려하지 않고 별다른 대책도 없이 산업지원 인력을 폐지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보충 방안 마련” 정부 약속 공염불=대체복무 인력을 축소하기로 결정하면서 정부는 감축 인원 보충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했으나 지금까지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

지자체와 경찰 역시 인력 축소가 예상되는데도 그동안 적극적인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 예산 문제가 가장 큰 걸림돌이다.

경찰 관계자는 “전·의경 1명을 대체하려면 교대 인원을 감안해 경찰관 2, 3명이 필요하다”며 “재정 여건상 대체인력 확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정부가 즉흥적으로 만든 제도도 문제다.

2001년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에서 일어난 대형 화재로 소방관 6명이 숨지자 정부는 2002년부터 현역 입영 대상자 가운데 의무소방원을 선발했다.

소방공무원의 근무 여건을 개선하기 위해 소방서에서 장비 준비와 점검 등의 업무를 돕도록 했다. 그러나 병역자원 감소로 올해 선발 인원은 지난해 절반인 400명으로 줄었다. 내년에는 선발할지조차 불투명하다.

부산소방본부의 경우 2004년 196명, 지난해 152명의 의무소방원이 근무하다가 올해는 69명만 배정받았다. 의무소방원 정원(209명)에 한참 못 미친다.

소방방재청 관계자는 “적은 인원이지만 의무소방원이 업무 부담을 줄이는 데 큰 도움을 줬다”며 “4, 5년 만에 폐지할 제도를 왜 도입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국방부는 “치안과 직결되는 의무경찰과 산업기능요원의 경우 탄력적으로 배치할 계획이지만 병역자원 수급 상황을 고려할 때 의무소방원 추가 지원은 어렵다”고 밝혔다.

인천=황금천 기자 kchwang@donga.com

강릉=최창순 기자 cschoi@donga.com

부산=조용휘 기자 silent@donga.com

::대체복무제도::

병역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군(軍) 인원 충원에 문제가 없는 범위 안에서 국방의무 대신 관공서나 산업체에서 일정 기간 근무하는 제도. 1969년 2월 도입한 방위소집제도가 대표적이다. 이듬해 전투경찰을 뽑기 시작했고 1973년 특례보충역이란 이름으로 한국과학기술원생, 군수업체 직원, 연구기관 연구원이 포함됐다. 올림픽과 아시아경기대회, 국제예술경연대회 입상자도 예술 및 체육 분야 공익근무요원으로 대체복무제도에 편입됐다. 이 밖에 공익근무요원 산업기능요원 공중보건의 국제협력의사 징병전담의사 공익법무관 등 다양한 형태로 운영한다.

■ 대체복무 축소 대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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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이미지 클릭후 새창으로 뜨는 이미지에 마우스를 올려보세요. 우측하단에 나타나는 를 클릭하시면 크게볼 수 있습니다.)


국방부는 5일 ‘대체복무제도연구위원회’를 만들었다. 학계, 법조계, 언론계, 종교계, 시민단체 전문가와 국방부 병무청 국장 등 17명이 참여한다.

위원회는 종교와 양심을 내세우는 병역 거부자의 대체복무 허용 여부를 포함해 대체복무제도의 원칙과 기준을 전반적으로 손질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출산율 저하로 인한 인구 감소로 병역자원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대체복무인력을 늘리기는 힘들다는 의견이 많다.

국가 핵심 사업을 지원하거나 국민의 생활과 직결되는 분야를 제외하고는 감축된 인원을 보충하거나 늘리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2002년 대체복무인력 감축 결정 당시 공익근무요원으로 근무하는 보충역을 경찰 등에 투입하겠다고 했지만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도 이런 사정을 반영한다.

결국 지자체는 인력을 재배치하거나 대체복무인력에 의존하던 업무 중 일부를 주민의 자원봉사 등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대형 산불이 자주 발생하는 강원도에서는 산불감시에 투입할 공익근무요원이 줄어들자 공무원과 주민이 지역별로 예방 활동을 벌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특히 현 정부 들어 공무원이 늘어난 만큼 기구와 업무 체계를 개편하고 인력을 효율적으로 재배치하는 방안을 적극 모색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병역제도 개선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 온 서울대 법대 안경환(安京煥) 교수는 “정부가 대체복무인력 수요를 정확하게 다시 파악해 효율적으로 배분해야 한다”며 “병역자원이 계속 감소한다면 모병제를 포함해 장기적인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논의를 시작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인천=황금천 기자 kc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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