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속에 미래가 있다]신문에 푹 빠진 아이들

  • 입력 2006년 4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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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6세 때부터 써 온 신문일기를 펼쳐 보고 있는 박민지 양(왼쪽). 한글을 막 깨친 동생 예지(오른쪽)에게도 언니의 일기장에 ‘예지 생각’을 적어 넣는 것은 즐거운 놀이가 됐다. 안철민  기자
만 6세 때부터 써 온 신문일기를 펼쳐 보고 있는 박민지 양(왼쪽). 한글을 막 깨친 동생 예지(오른쪽)에게도 언니의 일기장에 ‘예지 생각’을 적어 넣는 것은 즐거운 놀이가 됐다. 안철민 기자
‘3월 9일. 어린이동아에 공병호 박사의 인터뷰 기사가 났다. 부자는 남의 것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가치를 제공하고 부를 얻는 사람이라고 했다. 가치와 제공을 사전에서 찾아보니….’

‘3월 10일. 얼짱 선생님이 쓴 글을 읽었다. 선생님과 학생들이 꼭짓점댄스를 추어 울상이 된 기준이를 웃게 했다. 새 학기가 시작돼 나도 서먹서먹한데 선생님 말씀대로 (친구들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야겠다. 그런데 꼭짓점댄스가 뭘까?’

박민지(10·인천 경인교대부설 초등학교 4년) 양은 매일 저녁 잠자리에 들기 전 이렇게 일기를 쓴다. 신문에서 읽은 기사를 소재로 자신의 느낌을 정리하는 ‘신문 일기’다. 초등학생이 되기 전부터 쓰기 시작한 수십 권의 신문 일기는 민지의 보물 1호다.

○“신문으로 일기 써요”

세 돌이 지날 즈음 한글을 깨치고 엄마가 냉장고에 오려 붙여 둔 신문 기사를 까치발을 디뎌 가며 읽었다는 민지. 엄마 공미라(36) 씨는 민지가 다섯 살이 되자 ‘어린이동아’ 구독을 신청했고 그 후 지금까지 민지의 하루 일과는 아침에 현관에 배달된 신문을 주워 오는 것으로 시작된다. 신문을 읽으며 자기가 좋아하는 그림을 오려 붙이고 노는 민지에게 엄마는 6세가 되던 해 ‘신문 일기’를 쓰게 했다.

‘어린이동아’나 부모가 보는 ‘동아일보’에서 재미있게 읽은 기사를 오려 붙인 뒤 내용을 요약하고, 모르는 단어의 뜻을 찾아 적고, ‘내 생각’을 써 넣는 형식이다. 유치원생인 동생 예지(6)도 한글을 깨치자마자 서툰 글씨로 언니의 일기장에 자기 생각을 적어 넣는다.

과자 속에 든 식품첨가물이 아토피를 앓고 있는 어린이들의 증세를 악화시킨다는 내용의 기사를 보고 자매는 이렇게 연필로 꾹꾹 눌러 써 가며 자기 생각을 표현했다.

“신문 기사 보고 깜짝 놀랐다. 나도 사탕 아이스크림 과자 껌을 안 먹고 야채만 먹고 건강에 해를 끼치지 않는 것을 먹을 것이다.”(민지)

“나도 아토피야. 손이 간지러 사탕 초콜래(초콜릿) 이제는 암머거(안 먹어).”(예지)

황사철 식생활을 안내하는 기사를 읽은 자매.

“황사 바람은 왜 우리를 공격할까. 중국이 힘이 없을 때 우리가 괴롭혔기 때문일까.”(민지)

“황사 너무 시를(싫을) 거야. 나는 햇볕이 조아(좋아).”(예지)

엄마는 민지가 폭넓게 사고하도록 자매가 쓴 일기에 ‘엄마 생각’이라는 ‘댓글’을 달아 놓기도 한다.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 안현수, 진선유 선수가 한국의 첫 올림픽 3관왕이 됐다는 기사에 민지는 “금메달을 3개씩이나 따냈다…. 일본이 막 괴롭혔는데 난 이제 안 부끄럽다”며 흥분했고 엄마는 차분하게 댓글을 달아 놓았다.

“민지야. 1등을 하는 것도 좋지만 정정당당한 방법으로 우승을 하면 더욱 값진 결과가 되겠지. 엄마는 최고가 되는 것보다는 민지가 지금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생각거리와 해결 능력을 동시에 주는 신문

민지는 신문으로 놀고, 신문으로 글쓰기 공부를 하고, 신문으로 한자 공부를 한다. 기사의 문장을 요약하고, 신문에 난 한자를 따라 쓰고 예문을 적는다. 덕분에 전국한자능력검정시험에서 7급 자격증을 땄다. 초등학교 2학년 때는 독서논술경시대회에서 ‘비판력 우수상’을 받았다.

“학교에서 가르쳐 주지 않는 것을 배울 수 있어서 좋다”는 것이 민지가 꼽는 신문의 장점이다.

그러나 ‘신문 일기’는 사실 배움의 시작인 경우가 많다. ‘무마’ ‘비즈니스’ ‘공공영역’ 등 기사에는 이해하기 힘든 단어로 가득 차 있다. 때로는 사전으로도 해결하지 못할 문제들과 맞닥뜨린다. 굶주림에 허덕이는 아프리카 어린이들의 기사를 읽고는 생각 끝에 “밥을 남기지 말자”는 해답을 찾아냈다.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지구온난화 탓이라는 기사를 놓고 민지는 엄마와 상의 끝에 에너지대안센터라는 시민단체를 찾아 체험학습을 하고 매월 용돈의 10%인 3000원을 이 단체에 기증하고 있다.

“세상을 살다 보면 여러 문제와 마주치게 되지요. 민지가 어떤 문제에 직면하더라도 자기 식으로 이해하고 해결하는 능력을 가졌으면 해요. 신문은 언제나 문제점을 많이 던져 주니까 해결 능력을 키울 수 있겠지요.”(엄마)

신문을 좋아하고 글쓰기를 좋아하는 민지에게 기사를 직접 쓰고 싶지는 않으냐고 물었다.

“훌륭한 사람이 돼서 신문에 나오고 싶어요.”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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