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체류-자격미달 영어강사 갈수록 활개

  • 입력 2006년 3월 21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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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의 한 영어학원. 유학 준비생을 대상으로 토플 시험 과정을 운영하고 있는 이곳에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이 나타나 자신의 신분을 밝히자 외국인 강사 C(42) 씨가 슬그머니 자리를 피했다.

2000년 입국한 캐나다 출신 C 씨는 지난해 11월 서울 S대와 K대에서 영어강사로 일하다 여대생을 성추행한 혐의로 비자를 박탈당한 불법 체류자. 그는 지난해 초 서울 D초등학교에서 영어교사로 일하면서 잦은 결근으로 물의를 빚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이 학원뿐만 아니라 서울 H대에서 영어강사로 활동하며 한 달에 400만∼500만 원을 벌고 있다.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의 한 직원은 “올 1월에만 학생 대상 영어캠프에서 불법 외국인 강사 11명을 적발했다”며 “이들은 2, 3군데에서 강의하며 고소득을 올린 것으로 조사됐다”고 말했다.

대도시 학교 주변에 우후죽순처럼 들어선 영어학원. 이곳에는 무자격 외국인 영어강사가 적지 않다. 특히 5월부터 토익과 토플 시험이 회화 능력을 평가하는 방식으로 바뀔 예정이어서 외국인 영어강사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 무자격 불법 외국인 강사가 급증하고 있다.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는 전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불법 외국인 강사를 3만여 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에 적발된 불법 외국인 강사는 서울에서만 모두 156명으로 상반기(86명)에 비해 2배 가까이 늘었다.

고졸이나 중졸 학력을 지닌 불법 외국인 강사가 한국인 외국어 강사에 비해 훨씬 많은 소득을 올리고 있는 사례도 적지 않다. 외국인 영어강사 가운데 영어 관련 전공자는 극소수다.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는 2002년 관광비자로 입국해 3년 반 동안 경기 부천시 아파트 단지에서 불법 과외로 1억5000여만 원을 번 캐나다인 M(26) 씨를 붙잡아 8일 추방했다.

고졸인 M 씨는 “캐나다 유명 대학을 졸업했다”고 속여 변호사와 의사, 한의사, 대학교수 등 부유층 자제들을 상대로 많게는 한 달에 1000만 원 이상을 번 것으로 조사됐다.

법무부와 경찰은 지난해부터 불법 외국인 강사를 집중 단속하고 있지만 이들을 적발하기가 쉽지 않다. 한 유명 외국어학원 측은 “외국인 강사의 자격 확인을 외부 업체에 일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적발된 불법 외국인 강사들에 대한 처벌은 솜방망이다. 이들을 채용한 고용주나 알선자는 각각 400만 원, 500만 원의 벌금형을 받는다. 적발된 외국인 강사는 200만 원의 벌금형 또는 추방 조치를 받는다. 지난해 초 1년 이상 국내에서 활동한 외국인 강사에 대한 벌금을 2000만 원으로 올렸지만 정부는 외교적 마찰을 우려해 이들을 대부분 추방하는 데 그치고 있다.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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